스스로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지금까지 홍콩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 이었다.
홍콩에 잠시 기착한 적은 있었다.
첵랍콕 국제공항을 착륙하고 이륙할 때 비행기 창밖으로 드러난 전경을 보면서 도시본색 특유의 좋은 느낌을 받았다.
좋은 느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에 가길 망설였던 이유를 딱 집어내 말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아마도 홍콩이라는 여행지가 풍기는 진부한 이미지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로 치면 007 영화 비슷해서,
왠지 보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고,
평론해보고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들지 않는 그런거..
그 '진부한 도시'에 가는 '루틴한 여행자'는 얼마나 되는지 검색해 보았다.
여행자를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통계가 조금씩 다른 것 같긴 하지만
1 년에 6 천 만 명 가량이 이 도시로 여행을 간다는 통계를 발견했다.
이 숫자에는 중국 내지에서 오는 여행자 1 천 9 백 만 명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어쨌든 홍콩은 나라도 아니고 일개 도시에 불과한데,
한 도시 방문객 수가 관광대국 태국에 오는 외국인 전체 여행자 수의 두 배.
한국에 오는 외국인 전체 여행자수의 세 배,
방문객 수 2, 3, 4 위 도시 라스베이거스, 런던, 파리를 멀찌감치 뒤로 제끼고 부동의 1 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통계들을 보면서 홍콩에 대한 내 생각에 뭔가 잘못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며칠 전 서양인 친구와 이야기 도중 그가 1 백 개 국 이상 돌아다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가 다녀왔던 여행지 중 홍콩이 그에게 가장 인상깊은 여행지로 남아있는 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홍콩이 '의외로' 인상깊은 여행지였다는 말을 들은 적은 몇 번 더 있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이 도시에 다녀 온 사람들은 '내가 홍콩에 다녀왔노라'고 먼저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물어보면 그제서야 홍콩에 가 본 적 있다고 대답을 하곤하는데
마치 못갈 데 다녀오기라도 한 것 처럼 쭈뼛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여행 다녀오실때마다 자상하게 여행기 올려주시는 여행자들도
홍콩 이야기만큼은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홍콩에 가서 지루했다거나 실망을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엉터리 선입견 때문에 매력적인 대도시 여행지 한 군데를 놓치고 있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또 변덕이 나기 전에 미리 쐐기를 박아놓기 위해서였다.
홍콩 직항은 초장거리에 속하는 13 시간 비행이라
마지막 클릭하기 전 스탑오버로 변경해서 비행기표를 구입할까 하고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그냥 직항으로 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울에서 열흘 정도 머문다)
밴쿠버 홍콩 (에어캐나다) 홍콩 인천 (캐세이퍼시픽) 인천 밴쿠버 (에어캐나다)
홍콩 가는 항공료는 인천 가는 항공료보다 저렴하고,
대부분의 경우 한국에 가는 길에 며칠 머물렀다 가는 다구간 여정을 선택해도 여전히 인천직항왕복보다 저렴하다.
비행시간은 길어도
비행기 편명 (flight number) 은 그 도시의 '진부한 이미지'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홍콩으로 가는 에어캐나다의 플라잇넘버는 007 편이다.
007 편을 발권한 기념으로, 007 영화를 한 편 봤다.
고등학생 때 본 적이 있는 the spy who loved me (나를 사랑한 스파이) 였는데,
어렸을 때 봐서 그런지 007 시리즈 중에서 가장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