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Victor Cha) 가 차기 주한미국대사에 내정됐다는 보도를 읽었다.
상원의 인준을 받는대로 서울에 부임하면 한미수교 역사상 두 번 째 한국계 미국대사가 되는 셈이다.
빅터 차는 소문난 대북강경파다.
미국과 중국의 안정적 관계라는 절대상수를 토대로 대북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입장을 미국 국내에서는 현실론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가 대북강경파일 뿐 아니라, 한국의 자유주의 또는 진보진영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이념형 보수주의자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화모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박근혜 정부의 중국접근정책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서울에 부임하게되면 주한미국대사관과 청와대 간에 마찰과 격돌이 벌어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일단 그가 주한미국대사에 임명되는 날이면 그 마찰과 격돌은 보나마나 주한미국대사관의 완승으로 끝날 것이다.
그는 한국계이면서도 한국에 대해 별로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이 많다.
같은 한국계 미국대사였던 김성 (Kim, Sung) 과는 이 점에서부터 많이 다르다.
김성 전 대사는 그래도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한국말도 곧잘 하고 한국 음식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울 은석초등학교 3 학년 때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김성의 아버지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 이유는 그가 1973 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및 살해미수사건의 일본 현지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주일공사였던 그는 박정희-이후락 일당이 저지른 범죄사건의 전모를 당시 도쿄 주재 CIA 책임자 도널드 그레그에게 폭로하고 미국망명의 길을 택했다.
열 한 살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김성은 고국의 아픈 역사의 한 자락을 그 자신의 가족사로 기억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빅터 차는 한국에 대해 이렇다 할 기억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잠시 영국에 머물렀던 기간을 제외하곤 줄곧 미국에서만 살았다.
그가 뉴욕에서 태어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컬럼비아 대학교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줄리어드 음대 유학생이었다.
그의 부모는 한국전쟁직후 미국으로 건너 간 유학이민 1 세대에 속한다.
1950 년대에 유힉생으로 미국에 가서 정착을 한 이 세대는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최고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의 정계와 경제계의 주류로 진입했고, 그들의 자녀들 대부분이 미국사회 여러가지 방면에서 성공한 계층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 인맥이 한국국내에 휘두르는 영향력 또한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점이다.
이들 인맥은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의 대학에서 유학하고 한국의 보수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국내 엘리트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미국인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며, 북코리아 지배엘리트와 한국의 진보진영을 모조리 말살시켜야 할 원수나 짖밟아 없애버려야 할 벌레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엘리트로 분류되는 한국계 자국민들'과 '자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의 정재계에 진출한 미국인맥'을 통해 어떻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지배해오고 있는가는 위킬릭스에 의해 폭로된 1 만 여 건에 달하는 주한미국대사관-국무부 비밀문건의 내용 중 극히 일부만 대충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폭로문서들이 참여정부 시절에 벌어진 일들을 많이 다루고 있으므로, 비교적 자주적 성격이 강한 정치세력이 제도권의 중앙과 외곽을 장악하고 있었던 이 시기 조차 적어도 한미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얼마나 참담한 굴종의 길을 밟았는가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 중 사소해 보이면서도 뼈아픈 사건은 2006 년 7 월 발생했던 독도해양조사선 해양2000호 독도통과 사건이다. 당시 독도 인근 해역에 해양조사선을 파견했던 노무현 정부는 주일미국대사관의 요청을 받은 미국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독도 인근해역 해양조사를 사실상 비밀리에 포기했다. 당시 버쉬바우 주한미국대사와 반기문 당시 한국 외교부 장관 사이에 오고 간 외교문서와 주일미국대사와 국무부간에 오간 이 사건 관련 비밀통지문이 사후에라도 공개되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뻔 한 사건이다. 미국과 일본이 공모하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 대 정권 시기에 어떻게 한국의 해양주권을 유린해 왔는가가 적나라하게 폭로된 문건에서는 특히 초기반발이 강했던 노무현 정부에게 미일양국이 어떤 공작을 벌였는지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진보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내 한국계 보수 엘리트집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그 내막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빅터 차는 미국의 코리아반도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며, 미국의 반북보수세력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지난 해 말 CICS 가 주최한 토론회 Asia Forecast 2017 에 출연해서 '다음 해에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되면 한미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전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이런 대답을 했다.
"트럼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관계는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재판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마찰이 있겠지만 결국 한국정부가 굴복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를 고강도로 압박하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가지 굴복을 이끌어 낸 배후의 주인공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코리아반도 정책을 사실상 입안하고 제안하고 주도한 미국내의 한국계 극우 엘리트 집단이다. 그 중심에는 대부분 빅터 차가 있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코리아 패싱 (Korea Passing = ignoring Korea 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엉터리 영어표현)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적인 한국 무시를 부추키는 배후에는 북코리아 유화정책을 지지하는 한국의 자유주의 정부를 고립시켜 전복하려는 미국내 한국계 극우엘리트집단의 조직적인 공작이 개입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문재인 정부 고립 및 전복 작전의 중심에도 역시 빅터 차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부시 정부 시절 참여정부의 평화적 대북노선과 자주국방계획을 무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장본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가 이제와서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처럼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게 되고야 말 것이라는 소리를 한미양국의 현정부들이 출범하기도 전에 공공연하게 장담했었다.
한국 진보정권 킬러로 의심받는 인물이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될 것이라는 소식은 불길하고도 놀라우며,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조금 재수없이 말한다면, 빅터 차가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날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이 위협받는 위기의 초입에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되고 상원에서 인준절차를 통과한다면 미국 국무부는 한국 외교부에 아그레망을 신청하게 될 것이다.
이 때 문재인 정부는 한국국민들을 대신해서 입장과 의지를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빅터 차에 대한 주한미국대사 아그레망 신청을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의도적 무시행위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경고해야 한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잃지 않고 지켜지는 평화나 명예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