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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결 역사상 북코리아가 벌인 가장 대담한 도전이 지난 주 5 일 간격으로 두 차례 일어났다. 지난 주 토요일 감행했던 소형수소탄기폭시험과, 역시 지난 주 화요일 감행했던 화성 12 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그것이었다. (지난 번 글에서 싸르니아는 미국 지질조사국 (USGS)과 중국 기상청이 발표한 지진진도를 6.2, 폭발강도 1 백 킬로톤이라고 썼었는데, 지진진도 6.3, 폭발강도 400 킬로톤으로 수정한다. 400 킬로톤은 단위를 바꾸면 0.4 메가톤 이다. 북코리아 당국과 미국 국방부가 공히 발표한대로 명백한 수소폭탄 시험이다.)
8 월 29 일에 발사됐던 화성 12 호는 알려진대로 자국의 수도인 평양특별시 인근 순안국제비행장을 출발하여 고도 550 Km 의 우주공간으로 솟아오른 후 일본열도를 통과하여 북태평양 수면에 탄착했다.
일본에 대한 전쟁행위나 다름없는 이 날 사태에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왜 북이 하필 8 월 29 일이라는 날짜를 선택하여 일본 영공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날려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 매체도 정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했었다.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발사지점이었다. 전략군 기지도 아니고 이동식 차량발사대도 아닌 순안국제비행장에서 발사했다는 것은 마치 전투복이 아닌 정복을 입고, 훈장까지 달고 비장한 표정으로 전선에 나가는 느낌을 주는 특이한 행동이었다.
북코리아 역시 왜 이 날 굳이 장거리도 아닌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순안국제비행장에서 일본을 향해 쏘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두 차례에 걸친 화성 14 형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이 성공했기 때문에 그보다 사거리가 짧은 중거리 미사일을 새삼스럽게 발사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코리아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역사를 구체적인 날짜 단위로 금방 떠 올리지 못하는 일반 매체들은 그저 단지 사거리가 약 4 천 킬로미터급인 8.29 중거리 미사일 발사를 두고 괌을 향해 쏘는 대신 비슷한 거리의 동쪽 탄착지점으로 날려보낸 것이라는 엉터리 추측보도를 내 놓았다.
과연 그럴까? 괌을 향해 쏘는 대신 동쪽으로 쏘다보니 일본영공을 통과하게 되었을까?
8 월 29 일은 남북코리아를 막론하고 5 천 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다. 107 년 전 이 날 대한제국은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가져다 바쳤다. 전쟁을 하다가 패배해서 점령을 당한 것도 아니고, 대한제국의 황제와 각료(대신)라는 작자들이 끽소리도 하지 않고 한 나라를 다른 나라에 양도하는 협정서에 서명을 했다. 1910 년 8 월 22 일 서명하고 정확히 일주일 후인 8 월 29 일 발효된 이 날의 사건을 가리켜 '일한병합조약'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이 날의 사건을 가리켜 '경술국치'라고도 부른다. 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스런 사건이라는 의미다.
툭하면 실속없이 비분강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날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나라를 강탈당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싸르니아는 이런 감정적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제 3 국의 관찰자들이나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병탄당한 당사자가 강탈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적어도 그 나라 정부 단위에서 지휘하는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어야 했다. 하다못해 황제를 비롯한 각료(대신)들만이라도 자결을 하던가, 최소한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항복이라도 했을 때 가능한 표현이다. 황제라는 작자가 앞장서서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서명하듯 자신을 일본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신분을 유지시켜주는 조건을 댓가로 나라를 양도했으니 강탈이라는 말을 하기가 낯뜨거운 일이다. 전쟁을 하다가 패배해서, 또는 더 이상의 희생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항복을 했다면 이 날이 비탄스런 날이 되었을지언정 치욕스런 날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북코리아는 미국과의 지겨운 대결을 올해 안으로 끝내고 미국을 화해와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고야 말겠다는 플랜 아래 핵융합탄두를 장착한 ICBM 을 완성시키기 일보 직전, 그들 나름의 예식행위를 치룬 것으로 보인다.
그들 나름의 예식행위란, 일본의 침략과 만 35 년에 달하는 식민지배에 대해 107 년 만에 상징적으로나마 설욕한다는 의미와 함께, 지금의 아베정부를 향해서는 "형님들 (북과 미국) 싸우시는데 옆에서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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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에 30 년 동안 걸려있던 전투복 야전점퍼를 꺼내 보았다.
제대할 때 1 계단급 전투복 상의와 바지, 야상내피, 전투화도 모두 가지고 나왔는데 찾지 못했다. 아마 한국에 두고 온 것 같다.
야전점퍼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30 년이 지났는데도 날이 서있어야 할 줄에 여전히 칼같이 날이 서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국에 있었다 해도 이제는 예비군, 민방위 등 모든 전시동원대상에서 은퇴했겠지만, 정전 후 세 번째 코리아반도 긴장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비군 마크가 달린 내 군복을 보니 씁쓸하고도 정겨운 느낌이 든다.
전쟁일보직전까지 갔던 첫번째 긴장상황은 1976 년 8 월에 있었다.
이때는 북코리아가 미국에 사과하고 물러섰다.
역시 전쟁일보직전까지 갔던 두 번 째 긴장상황은 1994 년 6 월에 있었다.
이때는 미국군 전략폭격기들이 기지에서 발진하기 한 시간 전에 북코리아측 외교부 부부장 강석주가 백악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영변원자로 가동 중지 의사를 전달함으로써 가까스로 전쟁위기를 모면했다.
지금이 세 번 째 긴장상황이다.
이전 두 차례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쟁위험은 거의 없는 저강도 긴장상황이다.
전쟁위험이 거의 없어진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북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무기 때문이다.
북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무기와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강력한 위상변화가 코리아반도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는,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역설적인 국면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