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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년 전 코리아반도가 제국일본에 병탄된 8 월 29 일을 상기하는 의미에서 북코리아가 그 날을 선택해 일본 하늘을 향해 미사일을 날려보냈다면, 9 월 15 일에는 67 년 전 북코리아가 미국에게 기습 역공격을 당한 날을 기념하여 미국의 앞마당인 북태평양을 향해 설욕의 미사일을 날려보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1950 년 9 월 15 일, 이 날이야말로 당시 북코리아 전쟁지휘부에게는 지옥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는 속담이 이 날처럼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같은 해 7 월 12 일 북미전쟁 발발이후 승승장구하던 북코리아군이 이 날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6.25 라든가 한국전쟁이라는 용어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북미전쟁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북미전쟁은 이 해 7 월 12 일 시작됐다. 이 날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통제권을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군 사령관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바람에 이 날부터 코리아전선에서 미국군 사령관이 지휘봉을 휘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군통수권자로부터 작전지휘권을 넘겨받은 더글러스 A 맥아더가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와 계급장이 달린 새 모자를 쓰고 최초로 벌인 작전은 어처구니없는 실패로 귀결됐다. 미국군 제 8 군 산하의 제 24 사단 병력을 무작정 전선으로 투입해서 병력의 절반이 전사하거나 실종, 도주하는 최악의 패전을 당한 것이었다. 한국전선에 최초로 투입된 미국군 제 24 사단에게 섬멸에 가까운 패전을 안긴 북코리아군 부대는 인민군 제 105 전차여단과 인민군 보병 제 3 사단이었다.
금강교두보를 돌파하고 대전을 함락시키는 전투에서 공을 세운 제 105 전차여단장 류경수는 아직도 생존해 있는 저 유명한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장의 남편이다. 김정은도 깍듯이 예우를 다해 모시는 것으로 잘 알려진 황순희는 김정은의 할머니 김정숙의 절친이었다. 항일유격부대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일 뿐 아니라, 친구 김정숙이 죽고나서 그의 아들인 어린 김정일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황순희의 친구이자 김정은의 할머니 김정숙은 김일성 주석의 첫번째 부인으로 지금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과는 이름만 같은 뿐 다른 사람이니 혼동하면 안된다. 코리아에는 김정숙이라는 이름이 유난히 많은데, 그러고보니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모친 성함도 김정숙이다.
미국전쟁사상 유래가 없는 막대한 병력손실에 사단장을 비롯한 연대장 대대장급 고급지휘관들이 줄줄이 포로가 된 치욕적인 패전사태의 책임자는 물론 맥아더다. 이 무모한 투입명령을 하달하기 전 날인 6 월 29 일에 그는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전용기를 집어타고 한강전선 남쪽 경기도 수원으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전세를 대강 살펴보고서는 무슨 망조가 들었는지 공군전력과 기갑부대의 엄호도 없는 상태에서 보병부대부터 투입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것이다. 나중에 작전실패에 대한 비난이 일어났을때도, 역시 무모해 보이는 인천상륙작전을 고집했을때도 맥아더는 똑같은 이상한 말을 변명처럼 둘러댔다. "한강방어선의 참호에서 만난 한 한국군 소년병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무모해 보이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럴듯하게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전쟁을 총지휘하는 최고사령관에게 어울리는 대답은 아니다.
어쨌든 아무도 성공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유엔군의 9.15 인천상륙작전이 기적적인 성공을 거둠에 따라 북코리아군은 주요 보급로가 차단되고 낙동강 전선에 몰려있던 조선인민군 주력이 고립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경인지역의 경비를 담당했던 조선인민군 제 18 사단이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우고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유엔군을 맞아 결사적인 항전을 벌였지만 13 일만인 9 월 28 일 수도 서울을 도로 내어주고 북쪽으로 퇴각했다.
9 월 15 일 인천방어 실패는 북코리아에게 천추의 한을 남기는 역전패의 계기가 되었다. 이 날의 사건을 기화로 북미전쟁이 국제전쟁으로 다시 성격이 변화하게 됐다. 중국 정규군이 아닌 인민의용군이 참전했으므로 국제전쟁이라고 하는데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으나, 어쨌든 이 전쟁은 북위 38 도선 근방에서 사선을 이루며 유엔군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중국 인민의용군 사령부간의 군사정치적 협상으로 1953 년 7 월 27 일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분단이 반영구적으로 고착화되었다.
1950 년 9 월 15 일 오전 7 시에는 유엔군 복장을 한 미국군 상륙부대가 인천 월미도를 향해 무지막지한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67 년이 지난 올해 9 월 15 일 오전 7 시 (6 시 57 분)에는 북코리아가 미국군의 동북아시아 거점인 괌의 거리와 일치하는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의 코앞인 북태평양 수면 위에 안착시켰다. 67 년 전 이 날의 상륙작전은 북코리아 자신들의 코리아반도 통일계획을 무산시켰다. 67 년 후 같은 날 북코리아는 미국의 기선을 제압하고 미국이 자신들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사상 최초로 미국의 앞마당인 븍태평양을 향하는 역사상 최초의 미사일을 날려보냈다. 북의 지도부는 현재의 미국 백악관이 전쟁결정과 운용 매뉴얼을 제대로 managing 할 수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음을 잘 알고 이런 대담한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사시 미국의 전쟁지도부는 당연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된다. 전쟁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최고통수권자, 즉 대통령의 결단력과 판단력이 결정적으로 중대한 역할을 한다. 군사적 공격에 참모들은 파편적인 조언을 할 뿐 결정적인 제안은 잘 하지 않는다. 전쟁의사결정라인에 있는 참모와 각료들은 전쟁도발의 마지막 결단은 대통령에게 미루는 경향이 있다. 지휘계통상의 책임이 없는 강경파 정치인들이나 학자들만이 옆에서 무책임하고 무질서한 말들을 내뱉을 뿐이다. 대통령은 혼자 외롭게 결정해야 한다. 군통수권자의 종합지력, 즉 판단력과 결단력은 이래서 중요하다.
전쟁을 망설이는 유형의 지도자는 의외로 군인 출신이 많다는 게 정설이다. 기업가 출신이 그 다음으로 전쟁을 망설이는 유형그룹에 속한다. 전쟁을 쉽게 결단하고 운용도 잘하는 유형의 지도자는 평소에 착한 척 잘하고 학구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념형 리더들이다. 존 볼튼이라든가 니키 헤일리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면 북코리아는 결코 탄도미사일을 북태평양으로 날려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미국 최고의 엘리트 관료들이 가는 자리인 유엔대사를 역임했거나 현재 유엔대사로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북코리아에게는 천만다행이게도 지금 미국의 국군 통수권자는 그 지능이나 판단력이 평균 정도에 불과한 평범한 인물일 뿐 아니라, 종합적 사고력의 바탕이 되는 지력면에서는 무식하다는 평가밖에는 내릴 게 없는 뚱딴지 같은 인물이다. 2016 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보편적 민주주의 보통선거제도에서 발생가능한 치명적 결점이 노정된 결과라는 평가는 대북코리아 긴장 및 위기관리 국면에서 현실감있게 증명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의 강국들도 미국이 여러가지 면에서 허약한 상태임을 잘 알고 미국을 가지고 놀고 있는 형국이다. 여러 강국들이 미국을 가지고 노는 플레이그라운드에 북코리아가 가담해서 함께 노는 바람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North Korea Crisis 2017' 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누구나 예상했던대로, 북코리아와의 기싸움에서 미국은 backing off 하고 있는 중이다. 북코리아의 탄도미사일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들 앞마당인 북태평양에 떨어진 그 날 도널드 트럼프는 쇄도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미국이 지금보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있었고, 전쟁결단력이 월등하게 우수한 이념형 리더가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1994 년 에도 북 외교부 부부장 강석주의 전화 한 통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격개시명령을 취소했는데, 세금을 떼어먹는 기술 이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는 인물이 결정권자로 앉아있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고도로 조직된 전쟁운용플랜이 함축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미국이 아무리 막대한 양의 우수한 전략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중구난방으로 질서가 잡혀있지 않은 지도부 아래 있는 부대들은 갈가마귀때나 다름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북코리아가 무슨 일을 벌여도 현재로서는 미국이 먼저 도발하는 전쟁은 일어나는게 거의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에는 미국이 총 한 방 쏘는 전투도 벌이지 않고 북과의 전쟁에서 패전하게 생겼다. 이 사건은 1776 년 미국이 탄생한 이래 241 년 만에 처음 맞는 치욕적인 일로 기록될 것이다.
수도서울을 유엔군에게 다시 내 준 날인 9 월 28 일과, 백악관의 지침을 무시하고 맥아더의 독단적인 재가아래 한국군 보병 제 3 사단 병력이 당시 자기들 영토 안으로 역침공해 들어 간 기념일인 10 월 1 일에는 북코리아가 무슨 일을 벌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