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은 비싼 편일까?
홍콩, 뉴욕, 런던은 물론이고, 인구가 서울의 4 분의 1 정도인 밴쿠버와 비교해도 비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서초중앙로-이런 무미건조한 길에서 무슨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까?
가끔 구경거리가 가까이에 있기는 하다
홍콩섬 동쪽 변두리에 가면 1960 년대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단지가 있다.
마치 1970 년대 서대문 어디 산동네에 있었던 금화아파트를 백 채 쯤 위로 올리고 옆으로 이어놓은 듯한 이 흉흉한 몰골의 아파트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촬영지로 선정되어 영화에 등장하면서부터 일약 유명해 졌다.
이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대학생인듯한 웬 한국 청년 하나를 만났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만난 게 아니라,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저, 한국분 이시죠?" 하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길래 찍어 줬다.
근데 이 사람이 자기도 나를 찍어주겠다면서 한사코 나를 창고지붕 같은 구조물 위로 밀어 올렸다.
그 창고지붕은 여행자들이 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통과의례처럼 기념사진을 찍고 가는 장소 같았다.
온 세상이 다 알다시피 나는 사진빨이 잘 안 받는 편이어서 내 모습이 담긴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더구나 이런데 올리는 거 질색팔색하는 성격이지만 (seriously??),
사진 찍어준 사람 성의도 있고 하니 우선 금화아파트 방문 기념사진 부터 올려보겠다.
돌아오는 길에 이 아파트 값이 얼마일까 하는 뚱딴지 같은 궁금함이 생겼다.
부동산 사무실에 들러보았다. 홍콩도 한국처럼 동네에 부동산 사무실이 많았다.
옛날 한국 길거리에는 교회가 제일 많았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약국이었는데, 요즘은 교회들이 망했는지 별로 보이지 않는 대신 부동산 사무실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 같다. 부동산 사무실을 옛날에는 복덕방이라고 불렀다.
어쨌든 이 아파트 근처에 있는 복덕방에서 알아보니, 열 평이 조금 넘는 아파트가 홍콩달러로 4 ~ 500 만 달러 쯤 하는 것 같았다.
한국식으로 환산하면 평당 5 천 만 원이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혹시 저 금화아파트가 아니고 옆에 있는 신축 아파트 가격인가 싶어 재차 확인했지만, 부동산업자는 '올드 아파트먼트'라는 말을 강조했다.
거짓말을 하나 의심해서 Yick Cheong Building Information and Deal Data 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직접 매물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층과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부동산 업자의 말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안에는 안 들어가봐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1960 년대에 지은 열 평 짜리 아파트라면 아무리 리노베이션을 광나게 했다한들 보나마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야에는 생래적으로 무관심한 나는 저 50 년된 금화아파트가 왜 그렇게 비싼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저 아파트는 홍콩의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인데도 몇 년 전에 누군가를 방문했을 때 그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라는 곳보다 더 낡고 더 비쌌다.
광화문에 가면 내가 자주 가는 큰 서점이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는 문구가 같은 장소에 10 년 째 걸려있는 그 서점 안 책매장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어느 건축가가 쓴 책을 발견했다.
건축에 관한 책은 커녕 글 한 줄 조차 읽은 기억이 없는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불쑥 그 책을 샀다.
책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지만 출판사(을유문화사)가 마음에 들어 샀는지도 모르겠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그다지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는데,
그 책을 다 읽고나서 며칠이 지난 후, 어느 거리의 은행나무 밑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진동하는 똥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갑자기 팍 하고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다.
내가 홍콩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설령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 진동하는 그 이상한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졌다라도 그런 영감이 떠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시의 건축물과 그 집합이 어떤 특정한 동네의 역사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경제논리로만 측정하거나 예측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그런 동네의 부동산 가격의 터무니없음을 평준화된 공익적 사고로만 재단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잡설 비숫한 이야기니까 그저 진3 분의2 농3 분의1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렇다고 은행나무 밑에서의 나의 깨달음이 '앞으로 서울 어디 어디 일부 지역의 땅값은 한국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파상공세에도 아랑곳없이 줄기차게 더 오를 것같다' 는 예감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