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곧 학교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 분은 지금으로부터 53 년 전에도 이 학교에 6 개월 간 들어가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밥도 형편없었고 난방도 안되어 방에서 동상 환자가 생길 정도로 학교생활이 열악했다고 한다.
그런 시절을 겪은 바 있느니만큼 그 분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바닥에 열선도 깔려있고 밥도 군대수준으로 나오고 매트리스도 주고 독립 화장실도 있고,
웬만한 게스트하우스 부럽지 않은 시설이라고 하니
열심히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TV도 보면서 남은 여생 편안하고 재미나게 보내시기 바란다.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면
53 년 전에는 6 개월만 들어가 있었지만,
이번에 들어가면 살아 생전 다시 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니 그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53 년 전에는 그래도 우수반으로 입학했었는데
이번에는 돌반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그 또한 문제라면 문제일 것 같다.
귀국하시는대로 옛날 학교에 한 번 들러 자기가 살았던 방을 둘러보고
1964 년의 그 혹독했던 겨울도 떠올리면서 각오를 새로 다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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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남이 곤경에 처하는 걸 보면서 진심으로 통쾌함이나 고소함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친구를 죽인 원수라도 막상 그가 당하는 꼴을 보는 순간에는 맘이 편치않다.
정말 맘이 나쁘게 태어났거나, 맘에 병이 든 사람이 아니라면 자연스런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이 글을 쓰는 지금 명치 끝에 뭐가 걸린 듯 가슴이 몹시 아프다.
방금 여왕벌꿀 캡슐 하나를 물 없이 꿀꺽 삼켜서 그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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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년 전 쯤, 어느 개그프로의 마지막 코너에는 항상 최양락이 등장했었다.
첫 멘트는 늘 이랬다.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 카페에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때문이지"
토씨가 한 두 개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결과는 항상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그 카페에서 좋은 일은 커녕 항상 개망신만 당하고 나오곤 했다.
최양락의 그 카페처럼, 나에게는 옛 서울구치소 건물이 늘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이 건물을 자주 찾은 이유는 이 건물에 갈 때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 오르곤 해서다.
보면볼수록 이 건물은 참 잔혹하게 설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투사들을 투옥하고 괴롭힌 장소라는 점에서 '저주받은 유적'에 속하는 이 건물은, 제러미 밴덤의 panopticon 기법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Panopticon 이란 감시자가 중앙에서 방사형으로 퍼져있는 피감시자 공간 모두(pan)를 볼 수 있는(opticon)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 는 고 문익환 선생의 필체다. 선생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박물관이라든가 유적지에 가면 거기에 있는 안내문이나 설명문을 대강 읽어보는 편이다.
아래 설명은 이창복 선생에 대한 프로필을 적어놓은 것 같은데, 1989 년 1 월 22 일 출범한 시민운동단체(당시는 재야라고 부름) 전국연합의 명칭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다. 앞에 '민주통일'이라는 단어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긴 저 정도 오류는 애교다. 어느 방송사는 대통령 부인까지 바꾸어 놓은 적이 있다.
김옥숙은 김영삼의 부인이 아니라 노태우의 부인이다. 김영삼의 부인 이름은 손명순이다. 정치잡담 프로 같은데, 저런 프로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라면 제작팀이건 패널이건 저 정도 인명정보는 검색없이 자동으로 나올 수 있도록 자기 머릿속에 영구입력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한국전쟁 당시 생긴 총탄자국.
총탄자국은 이른바 좌익수들이 수감되어 있던 9사동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서울로 진공한 조선인민군 선발부대는 교전끝에 서울형무소 (당시 명칭)를 점령했다. 당시 서울형무소는 재소자의 70 퍼센트가 좌익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북코리아군이 들어오기 전 예비검속으로 대량학살당했던 남쪽 지역 형무소 좌익수들과는 달리 서울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인사들은 서울이 3 일 만에 인민군 수중에 떨어지는 바람에 상당수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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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다음 달에는 사형집행중지 20 주년 기념일을 맞게 된다.
이미 105 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고 50 개국은 사형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는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 국가다.
'국가'는, 국가보다 상위개념인 '개인'의 생명권과 기본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할 수 없다는 생각이 사형을 형벌에서 제외한 이유다.
이 생각에 비교하면 사형제도 반대에 대한 그밖의 여러가지 이유들, 이를테면 사형은 범죄억제효과가 없다든가, 사형은 국가에 의한 보복살인에 불과하다든가, 사형은 집행 관계자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든가, 사형은 재판오류를 사후에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하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는 형벌이라는 등등,,,은 그야말로 자질구레한 군더더기 이유들에 불과하다.
사형제폐지 논거로 굳이 이런 이유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죄와 벌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끼리 이야기해도 된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무소불위의 압도적 당위는 '제도가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명제 단 한 마디로 족하다.
국가가 개인의 생명권을 불가피하게 박탈할 수 있는 경우란 전쟁, 테러, 살인범죄현장에서 다른 생명의 안전을 지켜야 할 정당방위적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해서다.
사형장 입구에 있는 저 미류나무는 사형수들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생명체다.
넥타이공장으로 불리웠던 저 목조건물에 들어가는 사형수마다 저 나무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 미류나무를 '통곡의 미류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형장 건물 담장 안은 담장 밖과 기온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담장 안, 특히 아래에서 네 번 째 사진에 나오는 (포인트가 설치된) 구역에서 뚜렷한 한기가 흐르고 있다.
찬 공기는 나무로 된 마루바닥 틈새를 통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마루바닥 아래 지하는 수 많은 사형수들이 목뼈가 부러진 채 몸부림치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던 그 장소다.
노년의 서양인 부부는 무엇을 보기라도 했는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손을 잡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일본인 중년커플 중 남자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여자가 손을 저으며 막았다. "여기서는 사진 찍지마요"
다음에 들를 때는 꼭 온도계를 가지고 가서 담장 내부온도와 외부온도를 측정해 볼 작정이다.
분명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