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년 5 월 19 일은 한국인들이 특별하게 기억하는 날이다. 그 날 박근혜 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어떤 팟캐스트는 김광석의 이 노래를 틀어가며 박근혜 씨가 세월호 사건으로 폭발하고 있는 국민분노를 누그려뜨릴 목적으로 기획한 가짜눈물이라는 방송을 내 보냈다.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정권이 기획한 가짜눈물이었다는 점은 맞았지만 그 목적이 세월호 사건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려뜨릴 목적이라는 추정은 틀렸다.
눈물의 기자회견을 한 목적은 세월호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바로 그 날 예정되어 있는 어느 나라 방문에 대한 관심을 분산-희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 면밀하게 준비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는 것이 폭로되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씨의 눈물에 한국인들의 정신이 팔려있었던 그 날 그 시간,
슬픈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을 총총히 빠져나간 박근혜 씨를 태운 검은 색 에쿠스 승용차는 붉은 색과 파란 색 경광등을 교대로 번쩍이며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서울공항 활주로에는 보잉 747-200 한 대가 두 날개에 달린 네 개의 엔진에 차례로 시동을 걸고 있었다. 박근혜 씨 일행을 태우고 아부다비로 날아갈 공군 1 호기였다.
박근혜 씨의 2014 년 5 월 19 일 UAE 방문일정 은 1 박 3 일이었다. 2017 년 12 월 9 일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 씨의 UAE 방문일정은 2 박 4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에 발표한 방문목적은 아크부대 장병들을 위문한다는 것이었다. 아크부대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 파견하고 있는 특전사 소속 준전투부대다. 아크는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한국어가 아니라 형제라는 의미의 아랍어다.
아크부대 연병장에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도 아닌데, 전 정부의 대통령과 현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쉬쉬해 가며 이상하리만큼 짧은 일정으로 그 먼 곳까지 날아갔을 때 외교문제 이상의 특대형 사고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짐작했어야 했다. 그 두 사람의 급거방문 직접이유는 비록 제각각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라는 사실과 함께, 지금 UAE 원전사태와 관련해서 대한민국의 생존권과 자존심을 양수겹장으로 송두리째 짓밟아버린 경천동지할 뒷거래의 흑막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경천동지할 뒷거래에 휘말려 든 한국측 마당쇠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지만, 한국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혹한 부담을 떠안긴 주범은 미국이라는 사실 또한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원전게이트를 조사하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은 사건의 위중함이 한국정부차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나머지 이명박 정권과 UAE 왕실간에 이루어진 원전거래 이면계약에 대한 모든 조사활동을 일단 중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면계약에는 쌍방 리베이트와 한국의 입장에서는 자해적이라 할 수 있는 금융특혜 뿐 아니라, 그동안 추측성 가설로만 떠돌던 핵폐기물 한국 이전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UAE 원전에서 배출되는 폐연료봉을 포함한 모든 핵폐기물을 한국이 도로 가져간다는 상상을 초월한 자해적이고 매국적인 계약이 이루어졌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이 아무리 막돼먹은 인간망종이라고 해도 미국의 그럴듯한 유혹이나 약속없이 이런 계약서에 불쑥 서명한다는 게 말이 될까?
그렇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싸르니아의 짐작이다.
즉 이명박과 UAE 왕실간에 교환된 이면계약서와는 별도로, UAE 원전허가 조건문서를 틀어쥐고 있는 미국과 UAE 원전 시공자인 한국간에도 별도의 비밀합의가 있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미간 별도 비밀합의란 한미원자력협정개정에 대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UAE 원전건설허가와 관련해 미국이 틀어쥐고 있는 조건문서란 2009 년 1 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사 라이스와 UAE 외교장관 Abdullah bin Zayed Al Nahyan 사이에 이루어진 원전건설과 운영에 관한 협정서다. U.S.–UAE 123 Agreement for Peaceful Civilian Nuclear Energy Cooperation 이라고 부르며 통상 약칭으로 ‘123 agreement 라고 한다.
이 협정서는 UAE 가 핵폐연료봉을 보관하거나 재처리 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핵심적 조항으로 명기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핵폐연료봉을 재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이며, 비공식적으로 그 권한을 승인받은 나라는 일본 뿐이다.
UAE 는 핵폐연료봉을 보관도 못하고 재처리할 수도 없으니, UAE 에 정치적 이유로 원전을 조건부 허가해 준 미국으로서는 폐연료봉을 포함한 핵폐기물을 재처리는 할 수 없으되 보관은 할 수 있는 나라 한국에 위험한 쓰레기를 떠넘기는 방식으로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핵폐기물 보관을 허용하고 있는 이유는 주한미국군 감시자산과 한미원자력협정을 통해 한국에서의 보관감시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천하의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터무니없는 원전수주조건을 덜컥 받았을리는 없다. 몇 년 후 한국이 재처리 권한을 가지는 것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주겠다는 유혹적 밀약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몇 년 후라는 게 박근혜 정부가 들어 설 즈음일텐데, 박근혜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미국과의 비밀합의에 따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하자 미국이 태도를 돌변하여 이를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부가 사드로 굴복하기 전까지 미국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의 핵심에는 UAE 원전수주조건과 관련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사태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박근혜 씨의 뚱딴지같은 반미행보를 해석할 도리가 없다.
싸르니아가 한 때 그가 혹시 미국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추측한 적도 있지만,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으로부터 듣고나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선친의 시신이 안치된 장소대신 휴전선 (또는 집무실 금고)의 안부부터 물었다는 정황으로 볼 때 별로 복수심에 불탔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씨가 미국에 최종 굴복한 시점은 최순실 게이트 폭발로 정치적 명줄이 끊어지기 석 달 전이다.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가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4 년 10 개월 전인 2013 년 2 월 22 일에 올렸던 싸르니아의 글 ‘미국대사 박근혜를 노골적으로 협박하다’ 를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 글에서 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에게 한미원자력협정개정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풍문을 소개하면서, 한국에 부임한 당시 미국대사 김성이 어느 연찬회 연설자리를 빌어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독자적 핵개발을 추진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위협을 전달했다고 쓴 바 있다.
당시에는 박근혜 인수위의 저돌적인 ‘한미원자력협정’개정 요구를 몹시 뜬금없어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국측이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고자 했던 이유가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거기서 나온 플루토늄을 원료로 핵무기를 만들려고 했다기 보다는 UAE 에서 쏟아져들어올 어마어마한 양의 핵폐기물을 재처리하기 위한 합법적 여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글이 너무 길어졌으므로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