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연기자의 연기가 압권이었고 영화는 여러모로 수작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로드 무비를 좋아하는데 이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의 수작이라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페미니즘을 양성평등운동으로 여기면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차별의 반대는 평등이 아니라 역차별임을 알아야 한다. 자유와 평등은 차별의 현실을 덮어버리기 위한 교묘한 장치로서 작용할 때가 많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은가?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취급하고 대우하는 것이 페미니즘인가? 그래서 여자도 군대가야하나? 아니다. 틀렸다. 페미니즘은 둘사이의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다르다. 흑인과 백인도 다르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서로 다른 것이다. 동성애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 게이운동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것이며 따라서 다르게 인정해줘야하는 것이다.
다만 존엄을 짓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
존엄이다. 게이운동이나 페미니즘은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세워져야 한다.
페미니즘은 또한 권력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디제이가 평등을 외치기 보다는 등권을 말한 것에 의미가 있다.
남자는 전쟁 여자는 가사, 이런 것에 깔려있는 것은 남성이 권력을 가지는 방편으로서 남녀 차별을 이용한 것이다. 여성도 권력을 가지려 권력행동을 하는 존재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함이 페미니즘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라 여긴다. 즉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간성의 복원에 페미니즘 운동의 방점이 찍혀야한다는 것이다.
어제 이곳 TV에서 우연히 델마와 루이스란 영화를 다시 보았다.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로 알려진 영화다. 통념적인 여성성을 벗어버리는 장면들에서 통쾌한 장면들이 많다. 일상에서 흔히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역겨운 차별과 성적 대상으로서의 인식 등에 두 주인공은 호쾌하게 맞서며 응징한다.
또한 여러 영화적 장치를 활용하여 차별과 부당한 취급에 대한 폭로와 강력한 응징을 하는 것으로, 또는 그간 남성의 상징, 전유물이었던 것에 대한 적극적인 차용등으로 페미니즘의 화두를 계속하여 던진다.
강간을 모면한 델마가 잘 생긴미남(브래드 핏)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한계가 아니라 그간 성적 대상이었던 것을 여성 또한 성적결정의 주체임을 밝히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분의 메시지일 뿐, 영화가 남겨놓는 숙제는 페미니즘의 귀결점이 무엇인가이다. 단순히 차별을 반대하는 것과 그로인해 평등을 이루는 것이 그 목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가 마지막까지 그를 도와주려는 경관의 배려를 뒤로한 채 절벽으로 자유의 낙하를 선택한 것은 어떤 멋지고 훌륭한 남자, 또는 그들의 선한 배려 속에서 그동안 잃어왔던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세상과 인류 사회의 한 '주체'로서의 결정권을, 권력의지를 스스로 행사한다는 상징을 지녔다.
영화를 보는 마지막 부분에 같이 합류한 아내가 ' 저게 둘이가 아니고 혼자였더라도 가능했을까' ... 정확한 문제제기다. 델마는 루이스에게서 루이스는 델마에게서 서로 영감을 주고 받으며 순종과 길들여진 여성성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통념의 페미니즘 운동은 혼자서 가능한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 이전에 존엄한 존재로서의 자각이 앞서야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은 평등과 자유의 주제를 훨씬 뛰어넘는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담고 있는 인간 사회 전역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