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서열 매기는 방식될 수는 없어
서로 존중하고 반말 삼가는 풍토 필요
미국도 한국도 아닌 '고립된 섬' vs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교두보'.
한인 이민자라면 한인사회에 대해 한 번쯤 논쟁을 벌여본 이슈다. 한인사회에 담긴 우리네 모습은 어떨까. '부끄럼을 모르는 한인사회'라는 다소 삐딱한 질문으로 개개인 일상과 단체, 사회 조직을 들여다봤다.
이민생활 50년, 베벌리힐스에 거주하는 김영자(76)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든 깍듯이 존대한다. 이민 1세대인 김씨가 장유유서를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서로 다 어른이잖아요. 성인이 돼서 나이 많다고 다른 사람을 하대하거나 깔보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편하지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되물었다.
한인업체 고위 간부인 김서훈(52)씨는 "나이든 사람은 바나나 껍질을 밟고 있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면서 "나이를 내세우며 무게(권위)를 주는 순간, 미끄러져 나동그라지는 시대다"라고 말했다.
창피한 '나이 따지기'
장유유서, 백과사전에 따르면 유교 도덕사상의 다섯 가지 덕목 중 하나로 '상하의 질서와 순서가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유지되도록 돕는 자세'를 의미한다. 한국 사람은 중국보다 더 심할 정도로 '나이'를 따진다. 나이가 같아도 '빠른 생년월일'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든지, 하대의 대상이 아니라는 심리를 표출한다. 나이가 벼슬이라는 생각이 전 연령대에 두루 퍼져있는 이유다.
크리스틴 이(37)씨는 나이 집착을 '한인병'이라고 꼬집었다. 타인을 만날 때 나이 먼저 묻는 태도가 불편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친분을 가장해 은근슬쩍 반말이 앞선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하대하는 모습도 흔하다. 이씨는 "한인사회에 서열 잡는 문화가 너무 심하다"면서 "나이가 서열을 매겨주지 않는데 우리는 따진다.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우월하다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식한 '나이 내세우기'
조선환(79)씨는 "나이를 내세우면 무식하다"고 단언했다. 조씨는 "한국에 살 때 연장자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하대해도 된다는 습관이 들었다"며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보니 겉으로라도 상대방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 나이를 들이대는 모습은 솔직히 무식해 보인다. 골프모임에 나보다 3~4세 많은 분들이 있지만 서로 존중하지 하대나 반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나이로 상하관계, 갑을관계를 규정하려는 틀은 깨질 수 있을까. 이민생활을 오래한 한인과 미국 문화가 몸에 밴 이들은 인식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식 예의범절을 실천하면 된다는 소리다.
이수영(33)씨는 "한인 2세나 현지 친구는 내 나이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며 "유독 우리만 나이에 집착한다. 정해 놓은 틀이 있는 것처럼 나이를 말한 순간부터 '결혼해라, 철들어라, 주책이다'며 평가한다"고 꼬집었다.
인품과 경험 중요
LA와 오렌지카운티를 오가는 한의사 최인수(42·가명)씨는 "OC지역 한인 환자는 연령을 떠나 모두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려는 습관이 들어 있다. 상대적으로 한인사회가 큰 LA지역 한인 환자는 초면에 반말하고 거북한 사생활까지 묻는다"며 생활 환경의 중요성도 꼽았다. '상호존중 매너'는 실생활 거주환경과 주변 본보기 사례에 비례해 갖춰진다는 말이다. 나이를 무기로 위계질서를 세우고 대인관계에서 보상심리를 요구하는 자세의 핵심은 '인품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순희(50대)씨는 "나이는 핑계다. 결국 사람의 인품을 반영한다"라며 "미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나이와 사회생활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유독 나이 따지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자기를 내세우려는 천박한 심리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