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의 교육과정에서 하느님이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대학교 수준에서 다루는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 생물학, 천체학, 유전자공학, 생명학, 지질학에서도 하느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습적인 종교인들은 우주세계가 출현하기 전에 이미 어떤 초자연적인 힘 또는 하느님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이 우주 전체를 미리 설계한대로 창조하고 지금도 통제하고 있다고 맹신한다. 또한 이것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고 믿는 것을 종교 또는 신앙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더욱 위험한 일은 과학과 교육을 자신들의 종교적 신앙의 맞춤형으로 변질시키려고 한다. 학교와 학문세계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비전과 희망과 지혜와 철학과 신학과 종교는 하느님 보다 훨씬 이전에 출현했다는 사실에 추호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종교가 과학과 분리하고 교육과 정치를 조정하고 통제하려는 망상은 인류의 밝은 미래에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고 경고한다.
하느님(god)이란 말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목표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일뿐이며, 반드시 믿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즉 하느님은 존재론적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론적 삶의 방식이며 인간이 창조한 언어의 표현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했다. 다시 말해, 우주는 초자연적인 힘이 어떤 의미와 목적을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우주는 미래의 목적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자연적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우주세계는 빅뱅 이전에 초자연적인 힘이 미리 계획하고 설계한대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이 과학적인 발견은 오늘날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는 기본적인 사실이며, 모든 학문과 예술과 종교와 철학의 기초가 된다. 우주는 무에서 시작되었다. 21세기의 종교와 신앙은 과학을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와 신앙을 과학의 기초 위에 세워야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항상 생기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과학적이고 공개적인 계시에 대해 무지했던 3천5백 년 전의 고대인들은 상층의 하늘세계와 중간층의 땅과 하층의 지옥으로 분리하는 삼층 세계관을 상상했다. 따라서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경전들은 이 삼층 세계관에 기초하여 기록되었다. 다시 말해, 고대인들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인간과 다른 생명들의 시작을 삼층 세계관을 상상하면서 기록했다. 여기에 덧붙여 창조주를 만들었고, 이 창조주가 세상과 만물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기록했으며,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절대적인 진리로 규정했다.
오늘날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은 우주세계가 출현하기 전에 하느님의 말씀이 먼저 있었다고 무작정 믿으려고 한다. 비단 과학자들과 전문 지식인들 조차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는 가장 큰 원인은 주일학교에서 배운대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반드시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성서근본주의에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우주와 인간의 출현이 하느님 보다 먼저 있었고, 하느님은 우주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인간의 체험과 깨달음에서 생겨났다. 다시 말해, 이성적인 인간은 자신의 깨달음에서 터득한 궁극적인 진리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했다. 중근동 지역과 유럽에서는 삼층 세계의 신화로, 인도에서는 신비적인 표현으로, 동북아 지역에서는 현자들의 철학적인 사상으로 궁극적인 진리에 대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를 하느님, 야훼, 브라만, 부다, 도(道), 무극과 태극, 한울님이라고 했다. 물론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우주적인 통합을 뜻한다. 또한 이 말들은 변함이 없지만 그 말들의 의미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되고 성숙해져야 한다.
인류의 진화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20만 년 전 태초의 이성적인 인간 즉 원시 호모싸피엔스가 출현했고, 진화는 계속되어 7만 년 전 현대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처음으로 원시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만8천 년 전, 아직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인간은 그림과 상징으로 자신들의 느낌과 체험과 깨달음을 표현했다. 기원전 3500년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이 시작되면서 최초로 설형문자가 발명되었다. 고전 문명의 시작과 함께 기원전 1800년에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가 기록되었으며, 고대인들은 신화에서 우주세계를 상중하 삼층 즉 상층에는 신들이 살고, 중간층에는 인간이 살고, 하층에는 징벌받은 죄인들이 사는 것으로 상상했으며, 이때 신화들에서 신(god)이란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서양의 종교적인 경전들은 신화들이 등장한 이후에 등장했다: 기원전 10세기경 힌두교 경전, 기원전 4세기경 유대교 경전, 기원전 2세기경 불교 경전, 서기 1세기경 기독교 경전이 기록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체험과 깨달음이 먼저 있었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체험과 깨달음에서 하느님의 말씀 즉 궁극적인 진리를 은유적으로 기록했다.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의 하느님이 출현하게 된 배경으로 구약성서의 형성을 살펴보면, 기원전 1000년에 유대인들은 인간의 삶에 대해 당시의 보편적인 신화들을 인용하여 구약성서 일부를 기록했으며, 기원전 400년에 하느님의 의미를 새롭게 하기 위해 구약성서 전체의 편집을 완성했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읽으면 마치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는듯하다. 물론 창세기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신화를 배제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성서는 신화들의 모음집이다. 또한 신약성서의 형성을 살펴보면, 서기 100년-200년 사이에 예수의 전승에 대한 수많은 사본들이 기록되었으며, 이것들도 당시의 보편적인 신화들을 인용했다. 지금까지 신약성서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구약성서도 마찬가지), 오늘의 성서는 수많은 사본들중 극히 일부를 수집하여 편집한 사본들의 모음집이다. 특히 그 당시 수많은 사본들이 베껴질 때, 어떤 필사가는 자신의 사본의 권위를 보호하고 혼잡스런 변개를 막기 위해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다는 개인적인 경고를 삽입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인간의 출현과 인류 문명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뒤늦게 출현한 인간의 작품이다. 인간의 언어가 세계와 하느님을 만들었다. 즉 하느님은 7만 년 전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인식혁명 이래, 인간의 체험과 깨달음의 은유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진리로써의 하느님은 인간의 온전한 삶에 대한 요청이며, 삶의 방식이며 표현이다.
18세기 유대교 신비주의운동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한 학생이 스승에게 물었다. ‘인간이 사는 의미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이 지구 상에 살고 있습니까?’ 스승이 대답 대신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숲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면 그 소리가 들립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학생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있은 후에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나무가 쓰러지는 진동을 인식할 수 있는 귀가 없이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단지 소리라는 것은 두 존재 사이의 교감일 뿐입니다. 소리가 들리느냐 안들리느냐는 것은 쓰러지는 나무가 있으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습니까? 우리는 상호교감을 위해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듣기 위해서 여기에 있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다. ‘다른 동물들도 듣지 않습니까? 개들은 인간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들이 우리 보다 더 훌륭하지 않습니까?’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개들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개들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마음의 고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심없는 마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침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살고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것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성적인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동료 인간들과 다른 생명체들과 삼라만상으로부터 궁극적인 진리 즉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하고 깨달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호모싸피엔스 인간이 출현한 20만 년의 인류사에서 가장 최근 약 3천 년 전에 기록된 성서를 신중하게 읽으면 고대인들이 표현한 하느님은 이름도 없을 뿐만아니라 외형적인 형상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헐리웃영화가 표현하는대로 외부에서 안개처럼 공중을 떠다니는 혼(魂)도 아니다. 고대 성서가 밝히는 하느님의 형상이란 말의 의미는 인간이 지닌 하느님의 특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이란 물질적이고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삼라만상을 통해서 내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이고 현실적인 실제(實際 Reality)이다. 하느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창세기 기록은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교리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성과 천지만물의 아름다움과 황홀함과 신비스러움에 대한 체험과 생명의 성스러움과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은유적이고 시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창세기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강조한 책이다.
태초로부터 하느님은 인간보다 먼저 외부에 타자로써 존재하지 않았다. 하느님이란 저 멀리 하늘 밖에 있는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다. 고대 성서가 밝히는 하느님의 의미는 존재론적인 믿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관계론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인간들과 세상 만물을 통해서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깨닫는 정신적인 실제(實際)이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믿어야 하는 존재론적 교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관계론적인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우리들은 사심과 욕심과 편견과 두려움을 담대하게 내려놓고 마음을 활짝 열면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하느님이 살아있다는 고백은 하느님의 의미를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궁극적인 진리, 우주적인 통합, 전체적인 통합으로서의 하느님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자율성과 창조성이다. 가슴으로부터 하느님의 의미를 깨닫고 살아내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고 책임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한다고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 아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을 자율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면 개인적인 삶의 모습과 의미가 달라지고, 세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한다. 하느님을 느끼고 깨닫고 살아내면 인종과 종교를 넘어 설 수 있으며, 생존과 죽음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과 편견이 사라지고, 용기와 비전과 희망과 기쁨과 사랑과 생명이 넘치는 자유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더 읽을 책>
돈 큐핏, 떠나보낸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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