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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연재칼럼 20] 이 세계 이외에 (죽은 후 가는) 또다른 세계는 없다!
작성자 prosperity     게시물번호 10983 작성일 2018-06-17 08:16 조회수 2267
늘봄님의 깊이 있는 일련의 글들을 감사히 읽고 성경의 일부는 "신화적" 요소가 있다고 저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시시는 성도님들이나 교회를 비방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각자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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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억 년의 우주 이야기가 공개적인 계시로 인식되면서 죽음 후의 다른 세계와 하늘 위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에 대한 삼층 세계관적 믿음은 비현실적인 망상이 되었다. 또한 그런 믿음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이 없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상실했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오직 하나의 세계라는 우주진화 세계관이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종교와 교육의 기초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근본주의자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의 노예생활을 벗어나지 못한체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하고 생기를 잃은 관념적인 내세론과 구원론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생존의 두려움과 이기적 욕심때문에 참된 인간의 본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답지 못하게 타율적으로 살고 있다. 이 세상의 일에 개입하고, 자신을 계시하고 통제하는 초자연적인 힘 또는 하느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안믿으면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이분법적 축복론과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존재론도 상업적인 거짓말에 불과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감각 대상의 세계뿐만 아니라, 물질 세계와 구분되는 영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플라톤주의는 21세기에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착각이며, 인류의 밝은 미래에 장애물이 될뿐이다.

 

21세기의 주류 과학계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팽창하는 우주의 불확실성(Uncertainty)에 대해 이의가 없다. 불확실성이란, 우주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미래는 초자연적인 힘(또는 하느님)이 멋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구도 우주의 내일 또는 100년 후 또는 수십억 년 후에 대하여 미리 결정할 수 없으며 다만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상상할 뿐이다.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으며 또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과 우주 전체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다만 종교체계의 일부에서 죽음 후 다른 세계 또는 영적 세계를 믿는 것은 삼층 세계관에서 유래한 고대 부족적인 믿음이며, 오늘 70억 인류에게 이성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인간은 우주먼지로부터 단세포에서 다세포, 바다의 물고기에서 파충류, 하늘을 날으는 새에서 포유류로 진화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인간이 되기까지 이렇게 수많은 역할들을 감당해왔다. 오늘의 우리는 20만 년 전 이성적인 인간 호모싸피엔스로 출현한 이래, 장구한 세월동안 인류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했다. 특히 최근 1-2세기 동안 진화생물학, 지질학,  우주천체학, 분자생물학, 유전자공학, 생명공학, 뇌의학, 양자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현대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속화되고 있으며, 더불어 인간의 의식수준은 기존 종교와 사상과 철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21세기의 뇌의학과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과거 어느 시점(6천 년 전)에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완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인간이 출현한 이래 끊임없이 진화해왔으며, 미래에 인간 생물종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우주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다에서 인간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척추동물(물고기)이 출현한 이래, 지난 수억 년 동안 신경계통을 통해 인체부위들과 연결된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진화했다. 이것이 기독교 성서에서 창조주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은유적인 창조 이야기의 새로운 의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뇌과학이 밝혀주는 인간의 뇌와 본성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영적 세계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물론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죽음 후 다른 세계에서 영원히 사는 꿈을 키웠다. 이것은 개인적인 꿈은 될 수 있어도, 온 인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궁극적인 진리는 못된다. 21세기에 종교의 의미와 목적은 삼층 세계관의 내세에 대한 꿈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세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위한 것이다.   

 

인간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무엇보다 긍정적인 발전은 육체와 영혼, 현세와 내세, 물질세계와 영적세계, 천당과 지옥, 생명과 죽음, 개체와 전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경계선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세계가 오직 하나의 세계 즉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제적인 현실이 유일한 세계라는 사실이 공개적 계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우리 주변에 눈에 보이며 존재하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이 광활한 우주에 태양계와 지구처럼 생명이 살고 있는 별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아직 모른다. 주류 과학계는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약 10억 년에서 15억 년 후 폭발해서 없어진다고 한다. 또한 우리의 세계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더 많은 우주들이 있다. 인간의 삶과 생태계와 우주를 통제하는 어떤 초자연적인 힘, 지능, 또는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주에는 상중하 층이 없고 중심도 없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고 궁극적이고 또한 최종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계의 현실 그 자체이다.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한다는 우주진화적 인식은, (1) 어떤 형태의 죽음 이후의 삶은 없다; (2) 어느 때든지 이 세계의 일에 개입하여 그 자신을 인간들에게 계시하거나 조정하면서 모든 것들을 통제하는 숨겨진 초자연적 힘(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육체와 영혼은 이원론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감각대상의 세계뿐만 아니라 구별되고 변하지 않는 사고대상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 플라톤주의자들의 시대는 끝났다. 죽은 후 다른 세계에 가서 이미 죽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개인적인 꿈은 순진하고 아름다운 생각일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을 제도적인 종교의 이분법적 교리로 만들어 필수조건을 완수해야 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얄팍한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술책이다.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내세에 대한 꿈은 개인적인 계시로 머물러야 하며, 공개적인 계시로 강요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인류의 밝은 미래에 장애물이 된다.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신봉하는 현대 플라톤주의자들 즉 유신론적 과학자들에 의하면, 하느님은 이미 세계 밖에 태초로부터 존재했으며,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독립된 어떤 세계질서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주진화 세계관은 확증하기를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존재는 인간뇌의 작용과 상상이며 실재적 (實在的)이지 않다. 또한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망과 같아 모든 것은 내재적이며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우연적이다. 7만 년 전 인간뇌의 활동으로 원시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인식혁명이 일어난 이래, 인간의 언어는 우리의 세계에 대한 최선의 이미지이다.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의 세계를 우리의 것으로 삼으며 구조화했고, 우리의 세계 즉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로 만들어 왔다. 무엇보다 5천 년 전 인간은 삼층 세계관을 만들었고, 자신의 육체와 분리된 영혼을 독립적인 실체로 만들었다. 만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통해서 전달된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보다 더 큰, 다른 어떤 세계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으며, 인간의 언어 외에 어떤 다른 매개체를 이용할 수도 없다. 우리 인간을 통하여 이 세계가 우리의 세계로 구축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조그맣고 수다스런 자아를 만물의 중심에 두는 인간중심주의를 주장하는 모순을 저질렀다. 우리 인간은 뇌의 언어작용을 통하여 이 세계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며, 이 세계를 제도화하고, 이 세계를 우리들 공동의 공식적인 세계,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로 만든다. 결론적으로, 이 세계가 인식되고 온전히 그 자체가 된 것은 바로 인간을 통해서다. 이 세계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언어적 대화소통을 통해 조직화되었고, 선명하게 되었으며, 세계로서 알려졌다. 이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만듦으로써, 우리는 이 세계를 완성했다. 결국 인간의 언어가 이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 최초의 근대 철학자였다. 이 세계는 초자연적인 창조자가 필요하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의 형이상학적인 신앙은 우주진화 세계관의 급진적인 인도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앙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세계는 실제적인 현실이며 삶의 현장이며, 하나의 세계이다. 인간은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가 필요없다. 

     

현대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와 영혼(마음, , 정신)은 분리되지 않으며, 육체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 아니며, 육체가 없는 영혼은 존재할 수 없다. 물질세계와 영적세계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이란 말이 필요하다면, 21세기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이 필요하다. 현대인간은 뇌의 진화와 작용으로 우주를 인식했고, 138억 년의 우주진화를 발견했다. 장구한 우주역사에서 인간이 하느님보다 훨씬 먼저 출현했고, 하느님은 이성적인 인간이 출현한지 수십만 년 후에 인간뇌의 활동과 인간의 언어로 만들어졌다. 원초적으로 인간이 만든 하느님이란 말의 의미는 인간이 보다 성숙하고 자유하고 너그럽고 정의로운 존재가 되는 길()이고, 삶의 표현이고 방식으로서의 실제(實際 Reality)이다. 호모싸피엔스 인류의 20만 년 역사에서 물질적이고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탄생한 것은 약 5천 년 전이다.     

 

세계-언어-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린 20세기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도 오직 하나의 큰 세계,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만 존재한다고 천명했다. 만물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통해 전달된다. 인간은 이 세계의 한 개체로서 전체인 세계를 이룬다.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은 하나의 망처럼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우연적이며, 영원하지 않다. 만물은 전적으로 이 현세적인 세계의 것이며, 지금 여기에 속해 있다. 또한 만물은 최종적이다. 만물은 지나가며, 지나감 속에 있는 만물은 최종적으로 사라진다. 만물은 우연이며, 모든 우연은 어느덧 지나가는 마지막 기회다. 이처럼 흘러가는 순간순간은 종교적으로 최종적인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은 종교의 역사에서 잘 알려진 주제로서, 동양의 용수로부터 도겐에 이르는 불교 저술 속에 많이 등장하여 잘 알려졌으며, 또 서구에서는 예수로부터 에크하르트와 블레이크와 키에르케고르를 통해 잘 알려진 주제이다.  원초적인 기독교 성서와 불교 경전의 핵심사상에 따르면 영원함은 지금 여기 순간순간에 있으며, 이 순간은 무엇보다도 선택과 결단의 순간이다. 인간의 삶의 목적과 의미는 이 세계 너머의 또 다른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현대인들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연구 덕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정직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육체()와 영혼(마음, 정신, )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 철학과 사상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하나이며, 완성품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화과정 중에 있는 인간의 측면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편, 이원론적 종교인들은 물질이란 소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결하고 오직 영혼만이 진실하며 불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실제적인 현실 세계와 분리되어 지나치게 고립되어있다. 인류학에 따르면 원시인들은 육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일체임을 인정하였다. 영혼은 육체()를 통해 발견되고, 육체는 영혼을 통해 발견된다. 육체와 영혼은 모델로서는 인정될 수 있으나, 독립적인 실체는 될 수 없다. 육체()가 영혼이고, 인간이 우주다. 다시 말해, 육체() 자체가 이른바 영혼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육체 속에서 영혼을 발견할 별도의 공간은 없다. 육체는 영혼의 세계 즉 영적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영혼은 육체와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육체의 근원적인 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뇌의 현상이다. 또한 우리의 세계는 바깥이 없으며, 우주세계의 출현 전 아무 것도 없었으며, 세계는 무에서 생겼으며, 세계는 위아래가 없다. 지금 여기는 미완성의 세계이고, 세계의 완성을 위해 죽은 후 다른 세계로 간다는 믿음은 거짓이다.

 

현대과학에서 입증하듯이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뇌의 신경체계의 작용이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 즉 인간뇌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사라진다. 영혼불멸, 내세, 천당지옥, 최후의 심판, 세상의 종말 등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은 인간뇌의 창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영적세계는 외부에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뇌에서 꿈꾸는 내면의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적세계가 꼭 필요하다면 그 세계는 오직 지금 여기 현세에서 의미있고 행복하고 통합적인 삶의 현실이며 표현이고 방식이다. 현대인들은 과학이 발견한 공개적인 계시를 인식하는 것이 생존의 두려움과 욕심없이 행복하게 자유롭게 의미있게 사는 구원의 길이다.

 

고대의 현자들, 부다, 노자, 장자, 예수는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영원함과 영생과 열반을 경험할 때를 놓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현대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를 꿈꾸는 내세지향적인 삼층 세계관적 종교는 사람들에게 천당지옥의 최후심판을 통해 다른 세계로 이주하는 이원론적인 길을 강압적으로 믿게 했다. 그러나 이 길은 허구이며 또한 더 이상 설득력이 없으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참된 길을 찾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상중하 층으로 구분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세계뿐이라는 현세지향적인 우주진화 세계관적 신앙이 절실히 필요하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우리의 삶은 마치 포도송이와 같다고 했다. 우리는 포도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먹는다. 다음 번에 먹게 되는 것은 남아 있는 것 중의 최선이다. 우리에게는 단지 제한된 수량만이 남아 있으며,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질질 끌지 말아야 한다. 죽음 후의 세상을 꿈꾸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더 읽을 책>

 

*** (본 칼럼의 생각들은 이 책들에서 나왔다. 책 제목들을 통해 세계의 과학 철학 종교 사상에 대한 미래의 물결을

       이해할 수 있다.) ***

 

돈 큐핏. 떠나보낸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_________. 예수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토마스 베리, 위대한 과업, 대화문화아카데미, 2009

토마스 베리 & 브라이언 스윙, 우주 이야기, 대화문화아카데미, 2010

로이드 기링, 기로에 선 그리스도교 신앙, 한국기독교연구소, 2005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사회평론, 2004

에크하르트 톨레, NOW: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조화로운 삶, 2008

틱낫한, 거시거 그것과 하나 되시게, 나무심는사람,2003

_______,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나무심는사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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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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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 The Revelation of Being, SCM Pres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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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ering, Lloyd, Tomorrow’s God: How We Create Our Worlds, Polebridge Pres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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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8-06-1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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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 그리고 여기 북미와 유럽에 한국인을 포함해 다양한 인종들의 친구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종교는 다르며, 무신론자 유신론자 불가지론자 등으로 서로다른 사상과 신앙을 유지합니다.

나는 나의 신학과 사상이 다른 친구들을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늘 하는 말이 나의 이웃들과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더 넓게 지구촌이 평등하게 공정하게 평화롭게 자유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저의 20년 목회에서 일요일마다 설교와 교육에서 변함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나의 신학과 신앙과 믿음으로 다른 사람의 인간의 존엄성을 변질시키거나 무시하거나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종교)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분리하거나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되고 지켜질 때에 참된 자유가 됩니다.

번영님의 다원주의적 사상에 감사드립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8-06-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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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타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타자의 의견을 동의하지는 않을 지라도 그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아무리 내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타자를 고정된 객체로 본다면 그것은 결국 나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위를 타자에게 강요하거나 투사하는 배타적 또는 독단론적 태도입니다. 종교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이라는 경험과학은 구체적 자료를 통해서 타자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인류학자는 필드웤을 필수로 하고 역사학자들도 연구대상의 현장을 방문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심리학자나 신경학자들도 기존의 종교사에 대한 이해력을 넓히려는 것이죠.

우리가 종교라는 현상을 일컬을 때 그것은 나의 사상의 빌딩을 지어서 그것에 각 종교 현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타자의 빌딩속으로 들어가서 그 곳의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객관적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지나친 신학적 진술과 주장들은 그것이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간에 지나치게 타자를 일반화시키며 “나”의 사상을 극대화시키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공부하는 모든 학도들이 예외없이 늘봄님과 같은 종교라는 구체적 “현상”을 무시한 신학적 구성(theological construction)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죠. 우리는 님께서 진보적이건 보수적이건 그것은 별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와 아울러 옛 종교학자들 중에서 자기들이 이상화한 종교를 추구하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이것 역시 이른바 서구 개신교적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휴스턴 스미쓰, 로돌프 오토, 요아킴 바흐, 윌프레드 캔트윌 스미쓰 등의 본질주의를 제대로 비판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히 서구 개신교적 자유주의적 신학적 본질주의에 경도되어 있죠.

종교와 과학의 compatibility에 대한 노력은 그것이 신학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일입니다. 늘봄님께서 하는 그런 노력이 꼭 헛된 일은 아닙니다만, 늘봄님같은 신학저 투사(projection)이 종교에 대한 이해의 주류라고 하면서 통용하시는 것이 참 흥미로울 따름입니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늘봄님이 인용하는 융, 키엘케골, 하이데거 등의 인물들이 늘봄님의 생각대로 쉽게 가위질 당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번 글의 키엘케골을 늘봄님께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키엘케골의 저작을 거의 다 읽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이런 인물들이 쉽게 인용되는지 그리고 늘봄님의 일반화와 단순화의 단칼에 잘려나가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아직도 우주에서 열심히 항해하시는 것은 좋은데 구체적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경험자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138억년간의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체적 종교적 현상 그리고 기독교적으로는 기독교라는 구체적 현상에서 출발할 때 타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늘봄님의 생각들에 대해서 제대로 비평을 할 수 있고 또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늘봄님께서 인용하셨던 Philip Heftner의 책이 있는 데 이것과 함께 그의 자서전을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진화론적 신학적 이해에 깊이 경도되어 있으면서도 신학과 과학의 균형을 맞추려고 매우 노력했습니다. 늘봄님께서 무시하셨거나 빼먹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신학과 과학/사회/문화의 상관성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폴 틸리히의 제자였으며 보편신학을 향한 열정을 평생 잃지 않은 분입니다.

켄 윌버를 위시한 늘봄님의 뉴 에이지 신학적 상상력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종교적인 담론의 영역이라면 그런 사상은 의례와 상징과 그리고 공동체적 공유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님의 사상은 뉴 에이지 사상의 산물로 머물 것입니다. 혹시 저의 비평이 불쾌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늘봄님은 이 게시판에 신학적 담론을 유일하게 독점하시는 분이라 가끔 이렇게 끼어들게 되는군요.

내사랑아프리카  |  2018-06-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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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소개했던 레이코프와 존슨의 [삶으로서의 은유]를 인용하신 것은 좋지만 그들의 은유용법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신 것 같구요. 위/아래 등의 은유는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경험된 즉 삶으로 체험된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매낄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가 말하는 다문화/다원성은 종교, 인종, 언어,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동등한 인정”(equal recognition)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에서 이른바 과학적 종교 이해를 한답시고 자행한 종교탄압의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교조주의적 공산주의는 현재의 과학과 다르다! 그런가요? 그럼, 인종주의의 이론화 노예제의 당연화는 사실 계몽주의와 사회진화론이 결합된 산물입니다. 늘봄님의 기존종교 이해는 소련의 교조주의적 종교이해와 사회진화론적 이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인류학자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인종주의적 편견을 자행한 역사를 아시나요?

캐나다에서 캐나다연합교회, 성공회, 가톨릭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자행한 residential schooling도 바로 이른바 서구적 진보와 문명의 이름으로 한 것입니다. 아! 그건 당시에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덜 깨달아서 그런가요? 그럼, 아인슈타인이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인종주의적 생각을 저널로 적은 것은 어떤까요? 과학적 세계관과 아울러 역사와 문화에 대한 sensitivity와 교육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그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도 다문화적 이해가 부족하면 그들의 대 사회적 발언은 언제든지 부족주의적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늘봄님께서 아무리 138억년의 광대한 시간과 진화의 광대한 과정을 설파하신다고 하더라도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면 사회진화론의 어두운 과거의 답습을 할 수 있습니다. 열린 대화란 나의 이념과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념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사회주의에서 자행했던 잘못이었습니다. 적어도 문재인 “선생”은 다문화/다원적 인식을 갖고 그렇게 했고 김정일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대화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 근본주의든 이슬람 근본주의건 우리는 타자이해의 노력의 끈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다문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보시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어설픈 과학이해는사회진화론의 전철을 또 밟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봄님께서 전문가적으로 설파하신 종교의 진화론적 이해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었는데 아직도 답변이 없군요. 이제 현실로 내려 오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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