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양식> 부담이 은혜입니다.
부담없이 교회 다니고 싶은데
작은 교회는 부담이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압력과 은근한 기대
숨거나 감추기 어려운 투명함
뭐라도 해야할거 같은 부담, 하지 않아서 부담.
이래저래...
누구라도 부담에서 벗어나고 피하고 싶어한다.
책임에서 벗어나 그저 자유롭게 즐기며 누리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부담과 책임이 없으면
그에 따르는 열매도 보람도 없다.
그저 한 순간 지나는 즐거움 뿐이다.
여기부턴 성경 말씀이라 모든 분들이 동의하진 않을거라 싶지만,
성경을 믿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예수님은 세상의 짐을 내려놓게 하시고
평안과 안식을 주신다.
아픈 상처를 싸매 주시고, 괜찮다고 위로 하시며,
걱정 말라고 잘될거라고 격려해 주신다.
그런데 어떻게 쉼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그 방법을 29절 다음 절에 계속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28절 거기에서 만족하기에 그 쉼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는 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울 때 누릴 수 있는 쉼이다.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신다더니
다시금 당신의 멍에를 메어야 쉼을 얻을거라 하신다.
그렇다면 어짜피 멍에를 메는 것은 똑같은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의 멍에는 그저 근심 걱정 염려 불안의 무거운 짐일 뿐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짐이 아닌, 더욱 잘 하게 하기위한 도구이다.
소는 멍에를 멜 때 그에게 맡겨진 일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칭찬과 격려, 인정과 상을 받게 된다.
어쩌면 불로소득으로 무위도식 하는 인생이 부러울지 모르지만,
그는 행복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쾌락은 누릴지언정 참된 기쁨은 알지 못하기에.
평강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누리는 따분함이 아니라
즐겁게 일하고 누리는 보람과 기쁨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인생의 목적, 사명을 주신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것이 사명이다》이라 했다.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혹시 여러분이 예배나 말씀에서 은혜를 받았다면
무엇을 받으셨는가?
물론 기쁨과 감동, 평안과 위로가 은혜이다.
그럼 부담과 책망, 가책과 찔림도 은혜일까?
결국은 그 은혜를 주시는 목적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것인데,
변화는 만족과 평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찔림과 책망으로 말미암은 부담에서,
그 부담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고 거기에 굴복할 때
변화되는 삶의 진정한 은혜가 임하는 것은 아닐까.
부담은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주시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같이 반응하고 느끼진 않는다.
거룩한 부담감은 성령께서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이다.
그 문을 열든지, 열지 않든지 개인의 자유이지만,
부담스러운 문을 열면 주님과 더불어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부담이라는 포장지를 두려워하지만
그 안에 싸인 것은 참된 기쁨과 보람, 가슴 벅찬 행복이다.
부담이 부담스러운 것은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예수님의 주시는 멍에는 부담이 아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30)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기에 쉽고 가볍다.
단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시기에
우리에게 능력이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신다.
사명에 순종할 때 부담은 축복이 될 것이다.
부담을 부담스럽게 받지 마시기를, 은혜이기에...
덧붙임(postscript) *******
저는 하늘가족교회 목사입니다. 이 글은 지난 주일 하늘가족교회의 설교를 요약하거나 인용한 글입니다. 굳이 이렇게 밝히는 것은 글의 이해를 돕고 조금이라도 오해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종교적인 글을 읽으시는 분은 교인이거나, 혹은 종교에 비판적이거나, 아니면 마음이 넓으신 분입니다. 글을 읽는 대상 모든 분들이 교인이 아니기에 감안하고 쓰려고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글의 의도가 드러날 수 있고 그것이 각자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한 목사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보다’ 하시면 조금이라도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