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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염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11050 작성일 2018-07-15 16:09 조회수 2192

기염 / 정 문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라며
꺼먹꺼먹 졸음에 젖은 얼굴에 속닥여 아내의 뇌를 마비시키다가
요런 능력뿐이 없는
내 모양이 슬퍼져 돌아누웠는데
미워졌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아요,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하며 아내가
등에 붙어 김장독 같은 손 내밀어
도란도란
꿈결처럼
나의 뇌가 마비되어 가는데

아니,
마비되지 않는 반질반질한 나의 뇌이기에
또랑또랑한 눈을 가진
아내도 그렇다고 보여지기에
나란히
이불 위로 목을 길게 뺀
우리 부부는 합창하였다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 감상 & 생각>

일단, 단숨에 읽히는 시 (지루하지 않다는 의미)

- 요즘은 재미없는 시들도 너무 많은 것이어서 (내 졸시 포함하여)

기염만장氣焰萬丈이란 말도 있듯이,
불이 타 오르듯 기세가 왕성하게 혹은 호연하게 말한다 할까

반면에, 살짝 한 꺼풀 벗겨내면...

그 마음이 정靜하지 못하다란 비유比喩의 고전적古典的인 의미도 있지만
(고요하게 가라앉지 못한 마음이란 뜻에서)

하지만 여기선, 그냥 前者(氣焰萬丈)의 뜻으로 보고
시를 감상함이 타당할듯 (개인적 생각)

일체의 꾸밈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의 삶 그대로 시에 담되,
윤회輪廻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체중생고一切衆生苦의
그 어떤 안타까움도 읽히고
(여기서, 윤회 같은 걸 일체 인정하지 않는 일부 [천주. 개신교 --- 죽으면, 오로지
달랑하니 천국 아니면 지옥밖에 없다는] 독자층에겐 그 시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담도 있지만
어차피 그 정도는 감수甘受하고)

시의 은근한 背景으로,
얼핏 佛家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반야심경般若心經' 等이 떠올려지는데...

그렇다 해서, 그런 것들에게 시인이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그런 걸 뛰어넘어 無限의 우주성과 有限의 인간성이 자아내는
영원한 평행선에 마지막 종점終點을 찍는 포에지 Poesie;詩精神, 혹은 열락悅樂을
그리며 힘차게 포효咆哮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할까.

" 우리 부부는 합창하였다 "

어쨌던, 세상의 모든 시가 늘 추구하고 있는 형이상적形而上的 시의 理想은
시에서 말해지는 것처럼 生에 있어 인간적 존재의 <열렬한 구원救援의 합창>에
그 시원始原이 있는 것 아닐까..


                                                                                                  - 희선,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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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8-07-1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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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론은 제도적인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믿어야만 하는 교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상상입니다. 다시 말해, 윤회는 무엇을 믿어야, 어떤 종교에 정회원이 되어야, 초자연적인 신을 믿어야, 유신론자가 되어야, 또는 산속에 들어가 고고하게 명상을 해야만 얻을 수 있고, 갈 수 있는 또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특히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윤회는 죽음 후의 문제가 아니라, 현세의 삶에 대한 문제입니다.
윤회는 현재, 지금 여기, 순간순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새로운 깨달음과 인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율의 말처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살아서 착한 일을 해야, 죽은 후 훌륭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지금 여기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살라는 격려와 조언으로 듣는 정도가 충분합니다. 죽음과 죽음 후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윤회론은 크게 잘못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죽음 후에 대해 크게 걱정할 것이 못됩니다. 단지 오늘 하루 나의 삶을 100% 내가 책임지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만족하게 사는 것이 소중합니다.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외 회교도는 일종의 윤회론(구원론)에 사로잡혀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로 갈 준바를 하느라 거짓과 은폐와 폭력과 탄압과 착취 속에서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 무엇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 정도로 충분합니다. 가정과 사회가 윤회론에 사로잡히면 중동의 테러분자들과 기독교의 제국주의, 인종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등등의 만행들이 세상을 암흑과 절망의 늪으로 빠트립니다.

안희선  |  2018-07-1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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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원용하고 있는 윤회는 종교적 색채라기보다
시를 구성하는 하나의 제재로 이해됩니다 - 독자의 입장에서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늘봄님,

늘봄  |  2018-07-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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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저의 노파심에서 독자들이 윤회에 대해 교리 내지는 믿음으로 착각할까 걱정이 되어 저의 생각을 소개했습니다.

불교의 윤회론은 기독교의 구원론과 너무 흡사합니다. 원초적으로 부다와 예수는 죽음 후의 세계 보다는 현세의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죽은 후 세월이 많이 흘러가면서 그의 정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변질시켜 엉뚱한 길로 빠졌습니다. 제도적인 종교와 권위와 권력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순수한 가르침은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교리들로 덧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하찮은 것으로 폄하했습니다.

21세기의 윤회는 평범한 삶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삶과 사회와 국가가 옳바른 길로 나아갑니다. 내세에 집착하는 삶은 결국 죽음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해서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척하는 거짓과 은폐 속에서 불행합니다.

저는 존 레논의 노래(Imagine)처럼, 천국지옥-축복징벌의 종교없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항상 도전적이며 삶의 지혜를 담은 좋은 시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8-07-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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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선님께서 소개해 주신 위의 시는 참 흥미롭군요. 님께서 “일체의 꾸밈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의 삶 그대로 시에 담되, 윤회輪廻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체중생고一切衆生苦의 그 어떤 안타까움도 읽히고”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시적 화자가 아무리 불교의 핵심 교리인 오온 (五蘊/Five Skandhas/ the five aggregates)을 되뇌인다고 하더라도 삶이 주는 고통이나 번뇌를 막을 수는 없죠. 즉 오온은 온갖 중생의 모습을구성하는 것으로 이런 오온의 일시적 집합체는 일체 텅빈 것이고 영원히 변화는 것이며 고정된 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이 시의 핵심은 각연의 전반부라기보다는 후반부에 있다고 봅니다.

시적 화자는 마음이 착한 사람입니다. 공감능력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삶의 고통과 무상함이 어디 착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다 해결되나요? 제 1연에서 남성으로서의 시적 화자는 남편으로서의 무능함과 비애를 빗대어 오온의 사상을 “인용”하지만 그것은 말일 뿐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슬프고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제 2연에서 아내는 시적 화자인 남편이 되뇌인 말을 그대로 되뇌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등에 붙어 김장독 같은 손 내밀어” 남편을 위로 합니다. “김장독”이라는 말에 아내의 삶의 연륜이 짙게 묻어나고 “같은”의 직유에서 남편과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여성의 거친 손이 깊이 연상됩니다. 이 슬프고도 아픈 아내의 모습속에서 위로의 마음을 갖는 것은 삶의 고됨과 늙음을 경험하는 평범한 필부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제 3연에서 삶의 고통 그리고 번뇌를 잊고자 하는 것도 일종의 집착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유한함이 주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여기에 오롯이 드러납니다. “마비되지 않는 반질반질한 나의 뇌이기에/ 또랑또랑한 눈을 가진/ 아내도 그렇다고 보여지기에/ 나란히/이불 위로 목을 길게 뺀/ 우리 부부는 합창하였다.” 있는 그대로, 즉 삶의 무상함 그리고 여여함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열심히 산 부부가 보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니다. 번뇌하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미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하며 살다가 이 세상과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삶이라는 것이죠.

마지막 연은 결국 삶의 유한함, 조건지어짐, 무상함이 승회됩니다. “색수상행식이 공한 것이요 일체 우주는 마음이 그려낸 번뇌의 장이고/ 당신과 내가 안타까운 삶이었다면 윤회의 길을 또 돌아/ 후생에는 부족함 없이 만나 같이 살려니,” 설령 오온은 공한 것이고 일체의 우주는 번뇌의 장이라고 하더라도, 유한하고 조건지어진 삶이라도 언젠가 다시 재회하고 싶은 염원은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떠난 이 세상에도 태양은 언제나 빛날 것이며, 비는 하염없이 내릴 것이며, 바람은 쉬지않고 불 것입니다. 안희선님께서 “윤회는 종교적 색채라기보다 시를 구성하는 하나의 제재로 이해됩니다.”라고 하셨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언어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의 염원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존재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이 있어서 우리의 인식과 상상의 폭을 넓혀주고 삶의 의미형성의 일부가 됩니다. 언어는 인위적 제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사라지는 것입니다. 시간의 길고 긴 테스트를 지나면서도 마치 질긴 인연처럼 다시 태어나 님을 만나고 픈 열망은 인지상정입니다.

이 시를 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쓰리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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