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을 둘러 본 소감을 글로 남긴 적이 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었다.
세계관과 정치적 이념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왠지 밉지 않은 사람이 있다.
진보든 자유주의자든, 저기 앉아있는 저 사람(장제스를 말함)처럼 극우에 가까운 인물이든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념의 좌우에 관계없이 삶의 자세가 일관되고,
조무라기처럼 너절하게 행동한 적이 별로 없는 인물에 대해서는 혐오감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중정기념당 주인공 장제스처럼 극우는 아니지만,
미국 보수 본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역시 '미워할 수 없는' 보수주의자에 속한다.
그가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유명을 달리한 지금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가 떠 오른다.
2008 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온 그는 유세장에서 어느 노인 여성 지지자가 상대후보 버락 오바마를 가리켜 아랍계 무슬림이라고 말하자, 즉시 그의 발언을 중지시킨 후 "No, ma'am, Obama is a "decent family man, citizen, that I just happen to have disagreements with on fundamental issues." 라고 말했다.
"이보세요, 아주머니 그게 아닙니다. 오바마는 미국시민으로서 가족적인 사람입니다. 단지 나와는 몇 가지 기본적인 이슈에서 견해를 달리할 뿐 입니다"라고 즉석에서 정정함으로써 자신의 유세가 선동적 네거티브로 오염되는 것을 저지한 것이다.
존 매케인 후보가 이렇게 망설임없이 쿨한 정정을 하자 청중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환호했다.
존 매케인이 작고한 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미국사회 전체가 전례없이 깊은 슬픔과 회한에 잠겨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2016 년 대선 이후 나라 전체가 봉숭아학당으로 전락해버린 미국사회의 절망적 그늘에 그 해답이 있을 것이다.
Paul Manafort 의 유죄평결과 Michael Cohen 의 프리바게닝 유죄인정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중범죄 교사 및 국가반역혐의 수사대상으로 전환된 지금, 미국은 과거에 겪어 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분열과 혼란 속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졌다.
팻 뷰캐넌의 걱정대로 도널드 트럼프는 리처드 닉슨처럼 스스로 사임할 인간이 아니고,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강력한 지지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27 퍼센트 가량의 광적인 지지자들을 부추켜 미국의 기본가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폭력적인 반항과 도발을 감행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 중 하나인 어느 팍스뉴스 패널에게 이태리 이민자 출신 CNN New Day 호스트 Chris Cuomo가 일갈한 충고와 연설은 이제 미국 내에서 준동하는 모든 극우혐오주의자들에게 향해지는 단호하고도 거대한 외침의 물결이기도 하다. 그 충고와 연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if you don’t like what America is, you leave. America does not need to become great again. She will only become greater by being more of what she already is.
('이민과 다문화는 우리의 정체성이고 미국의 전부다' 라는 요지의 기나 긴 충고를 한 후)
이런 미국이 싫다면 네가 떠나라. 미국은 다시 위대해 질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미국을 더 아름답게 가꿀 일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팍스뉴스 패널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미국을 떠나는 것이 그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결국 끝까지 버티며 그 나라를 혼란의 수렁으로 몰고 갈 것이다.
작고한 존 메케인 상원의원은 유족에게 도널드 트럼프를 자기 장례식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그 유언의 집행여부는 유가족에게 달린 것이지만,
어쨌거나 보수주의 정치인으로서의 윤리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이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p.s. 이 조의표시 글을 두고 혹시 '당신이 어떻게 장제스같은 극우 정치인이나 매케인같은 전쟁광에 대해 호의적으로 쓸 수 있느냐는 아우성이 나올 법도 하지만, 사람 됨됨이에 따라, 그리고 때에 따라 느껴지는 감성의 방향은 여러가지일 수 있으니 너무 큰 소리는 내지 마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