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양식> 최후의 보루가 되라
댐은 수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공급해 주지만
댐이 붕괴되면 엄청난 재앙이 된다.
무너져서는 안되는 최후의 보루.
지난달 라오스에 우리나라 SK건설이 참여한 댐이 붕괴되어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내었다.
시공사는 어쩔 수 없는 폭우를 탓하고 있지만,
예측 가능한 일기예보와 재난을 대비한 설계 시공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폭우는 통제할 수 없지만 대비는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이 악해지고 있고, 어쩌면 그 악한 세상이
자체적인 부패든 신의 심판이든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을까?
홍수의 심판이 있을테니 방주에 올라타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굳이 신의 심판이라 하지 않더라도 지구는 병들어가고 있다.
인류는 자기가 타고 있는 배에 구멍을 내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
당장 침몰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
후손이 살아갈 지구를 지키는 일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다.
심판의 원인은 욕심이고, 그 근본은 죄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값을 치루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죄가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심판을 유예하는 그것은 용서를 구하는 회개이다.
그리고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화작용.
온갖 더러운 쓰레기들이 하천과 바다에 모여 들어도
거기에 정화 능력이 있다면 썩지 않을 것이다.
바다의 평균 염분 3.5%
그만큼만 있어도 세상은 썩지 않을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나온다.
죄악의 도성이라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고
심지어 자기 백성 이스라엘도 망해서 포로가 되게 하시고,
자기의 집인 성전도 헐어버리신다.
무시무시하게 무서운 하나님께 공포를 느끼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성은 심판과 파멸이 아니시다.
죄악이 넘실대다가 결국 댐이 붕괴되어 홍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하나님은 그 댐을 지켜낼 의인을 찾으신다.
소돔과 고모라를 지켜내려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구한다.
의인 50명에서 다섯명이 부족하면,
의인 40명, 30명, 20명, 10명을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루한 흥정에도 하나님은 기꺼이 응하신다.
아마 5명을 구해도 허락하셨을 것이다.
하나님도 그 성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서 소돔이 망했다지만,
적어도 의인 10명만 있어도 그 성은 망하지 않았다.
성을 지켜낼 최후의 보루 10명만 있었어도.
예루살렘이 망한 것은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고 한 사람이 없어서였다(렘5:1).
한 사람만 있었어도 소망이 있었을텐데...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텐데...
죄가 가득해서가 아니라
지켜낼 의인이 없어 무너지는 것이라 하신다.
바로 그 최후의 보루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낸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낸다.
소금이 있으면 더 이상 썩지 않는다. 맹맹한 곳에 맛이 난다.
빛이 있으면 더 이상 어둠이 기승을 부리지 못한다.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순 없지만
누군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딘들 부패할 수 밖에 없지만
정화시키고 청결케 하며 썩지 않게 막아서는 그 사람,
우리 시대에 그 사람이 절실하다.
덧붙임(postscript) *******
저는 하늘가족교회 목사입니다. 이 글은 지난 주일 하늘가족교회의 설교를 요약하거나 인용한 글입니다. 굳이 이렇게 밝히는 것은 글의 이해를 돕고 조금이라도 오해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종교적인 글을 읽으시는 분은 교인이거나, 혹은 종교에 비판적이거나, 아니면 마음이 넓으신 분입니다. 글을 읽는 대상 모든 분들이 교인이 아니기에 감안하고 쓰려고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글의 의도가 드러날 수 있고 그것이 각자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한 목사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보다’ 하시면 조금이라도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