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이레 캐나다 거주교포
- 승인 2018.09.18 15:58
- 댓글 0
나는 한국인 이민 희망 1위의 나라, 인구 다섯 명 중 한명은 자국 출생자가 아닌 나라, 총리가 미남에 페미니스트인 나라, 캐나다에 살고 있다.
예멘 출신의 난민들이, 아니 ‘난민신청자’들이 제주도에 무작정 도착했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가장 처음 떠오른 서늘한 생각이다. 하지만 칼럼을 쓰기 전에 고민부터 했다. 나 역시 타향살이하는 ‘외국인’이면서 예멘 난민에 대한, 아니 더 넓게는 한국의 외국인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을 쓰는 것이 정당할까 하며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의 한인 이민자, 해외거주자들을 예로 들며 이민을 찬성한다. 무슬림 이민자나 한인 이민자나 다를 것이 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반박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굉장히 불쾌하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캐나다는 오래 전부터 외국인에 굉장히 열려 있는 국가였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의 밴쿠버와 리치몬드시는 이미 비백인 인구가 백인 인구를 넘어섰다. 이 두 도시에서는 백인이 ‘소수인종’인 것이다. 내가 전에 살던 집의 관리자는 필리핀계 이민자였고 옆방 룸메이트는 나이지리아의 국제 학생, 윗방 룸메이트는 이제 캐나다로 이주한 지 6개월도 안 된 번자비계(인도계) 이민자였다. 현재 사는 집의 집주인은 중국계 이민자인데 영어를 정말 한마디도 못해서 방값을 받을 때 늘 딸을 대동한다. 내 직장 동료들 역시 캐네디언이 반, 외국계 이민자들이 반이다. 토론토에 있을 때도 비슷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라틴아메리카계 이민자였으며 룸메이트는 캐네디언 한명, 중국계 이민자 한명이었다.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는 ‘가끔 내가 캐나다에 있는지 중국이나 인도에 있는지 헷갈린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기도 했다. 이만큼 캐나다는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래서 그런지 문제도 참 많다.
PC과잉이 부른 캐나다 난민 문제
먼저 캐나다의 난민 수용 상황부터 한번 살펴보자. 캐나다의 현재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가 언제나 난민에게 열려 있으며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토론토 공항으로 직접 시리안 난민들을 맞이하러 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트뤼도가 이렇게 난민들과 사진 찍고 트위터를 하는 동안 정작 토론토 시장은 난민 지원금과 대피소가 바닥나 런던시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리고 돌아온 런던시의 대답 “미안… 여기도 난민이 꽉 찼다...” 캐나다 이민국의 한 고위인사는 “트루도 총리는 말로만 난민을 환영한다고 할뿐, 정작 예산지원이나 난민 수용 계획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인터뷰까지 했다. 토론토의 시장은 지금까지도 모자라는 난민 수용 자금을 펀딩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예상치를 뛰어넘어 멈추지 않고 몰려드는 시리안 난민의 행렬에 토론토 사람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워낙 ‘정치적 올바름’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곳이 캐나다 사회이기에 아무도 이를 공론화 시키려 하지 않았다. 와중에 주변의 중동계 이민자들은 내게 저 난민신청 행렬에 가짜도 많이 끼어 있을 것이라고 내게 귀띔해줬다.
실제로 올해 캐나다에서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오직 이민만을 목적으로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소위 ‘가짜 난민’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신청을 한 순간부터 그 사람은 캐나다 땅에서 캐나다 정부로부터 경제적 보조를 받으며 지낼 수 있다. 난민신청이 거절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는 남의 돈으로 먹고 마실 수 있다. 의료 혜택도 함께 따라온다. 문제는 그 기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이라는 것이다. ‘가짜 난민’ 때문에 안타까운 세금만 낭비되어 버린다. 그 가짜 난민은 아마 집에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좋은 휴가였어.’
난민 지위는 해당인이 심각하게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정도일 때 인정된다. 단순히 내가 국내의 상황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난민 지위를 받을 수 없다. 내 생각에도 ‘생명의 위협'이라는 기준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정부 불만, 생계의 이유로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한다면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탈출할 것이다. 내 친구 중 한명은 페르시안 난민 가정 출신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란 혁명 때 이란을 떠나왔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정부 관료여서 혁명 세력의 숙청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난민 지위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원님길 닦아놓으면 동네 잡배들이 제일 먼저 그길을 지나간다고, 거짓으로 난민 행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없다. 이 ‘가짜 난민’ 문제는 단순히 올해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여러 해 전부터 외신에서 꾸준히 다뤄오던 문제다. 얼마 전에는 난민으로 위장한 IS대원이 검거되기도 했다.
캐나다 내에서도 난민 ‘유치’에 굉장히 적극적인 주가 있다. 바로 빨간머리 앤의 고향 노바스코샤주다. 총 인구 95만 명의 사람 없는 주(도시가 아니고) 노바스코샤는 난민 유치를 통해 주 경제 발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최근 노바스코샤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했기에 젊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노바스코샤는 난민 유치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발행된 노바스코샤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노바스코샤에 체류 중인 난민 중 절반 이상이 취업에 실패해 정부 보조금을 수령하고 있다고 한다. 노바스코샤의 기대와는 달리 주에 젊은 백수들만 늘어난 것 같다.
중국의 묻지마 캐나다 이민이 만든 부동산 폭등
다음은 전 세계에서 집값 거품이 가장 큰 도시로 가보자. 호주 시드니, 영국 런던, 홍콩도 아니고 캐나다에 그런 도시가 있다구? 있다. 바로 내가 사는 밴쿠버다. 밴쿠버에서 거래되는 단독주택의 평균가는 22억이다. 참고로 이 단독주택들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부자들의 고급주택이 아니다. 캐나다 서민들이 내집 마련을 원한다면 22억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22억은 그저 평균가일 뿐, 오죽하면 ‘이제 밴쿠버에서는 두 부부가 의사여도 집을 못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시내에서 덴(Den)을 하나 얻으려면 한 달 700달러에서 800달러는 줘야 한다. 덴은 우리 식으로 하면 방에 딸린 창고 방 개념이고 크기는 한국 고시원 사이즈보다 작지만 월세는 배에 가깝다.
밴쿠버의 리서치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52퍼센트의 밴쿠버 젊은이들이 방값을 내고 나면 저축할 여유가 없다고 답변했고 내집 마련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밴쿠버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도 앞으로 밴쿠버에서의 내집 마련은 불가능할 것이라 전망했다. 어떤 이들은 방세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의 노숙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밴쿠버의 부동산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배경에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있다. 캐나다에는 투자이민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투자이민 제도는 주 정부에 80만 달러(약 7억여 원)을 5년간 무상으로 빌려줄 경우 영주권을 주는 제도였다. 대기자의 70퍼센트가 중국인이었을 정도로 수많은 부자 중국인들이 캐나다 영주권을 사들였고 이들이 밴쿠버 부동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밴쿠버는 영국의 홍콩 반환 때 수많은 홍콩인들이 이민을 온 도시이기도 하다. 이때 홍콩의 삼합회도 많이 밴쿠버로 들어왔다고 한다. 외국인이 많은 곳엔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건지 캐나다 깡패 얘기는 못 들어 봤어도 인도, 베트남, 중국 깡패들 얘기는 참 많이 들었다. 인도 깡패들(거의 번자비 계열)에 대해 들은 바로는,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들이며, 번자비 사람들이 많이 사는 써리가 본거지이므로 혹시라도 가면 조심하라는 것이다. 참고로 써리는 우리나라 대림동처럼 ‘동’의 개념이 아니다. 써리는 ‘시’다.
한때 중국 부자들의 가장 편한 영주권 획득 방법이던 투자이민은 폐지되었다. 폐지된 이유도 그들 때문이었다. 영주권은 있지만 캐나다에 들어와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나라 밖에 있다가 급한 일이 있으면 들어와서 혜택은 받아가니, 캐나다 입장에서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심지어 돈이 많아 영주권을 ‘샀으면서’ 캐나다에서는 백수라고 신고하고 실업 수령을 거짓으로 타간 경우들도 있다.
중국인들의 투자이민은 불가능해졌지만 2015년 캐나다와 중국 간의 ‘10년 비자’ 협정이 체결됐다. 그리고 지금 중국인들은 이 10년 비자를 악용해 탈세용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밴쿠버에서 활개를 치는 마약들도 중국인들이 파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검은 돈을 밴쿠버 공항 근처 카지노에서 세탁해왔다고 한다. 어쩐지, 밴쿠버 공항 카지노를 가면 중국인만 보인다더니 그래서 그랬나보다.
번자비 사람들에게 써리시가 있다면 중국인들에게는 리치몬드시가 있다. 이미 리치몬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중국계 이민자이거나 캐나다에 체류 중인 중국인들이다. 리치몬드의 집값도 어마무시하게 올랐다. 나는 리치몬드에서 태어난 캐네디언 친구를 한 명 알고 있다. 얼마 전에 만났는데 기가 잔뜩 죽어 있어 보였다. 그는 높은 집값으로 인해 그가 태어난 도시 리치몬드를 떠나 저 먼 버퀴틀람으로 간다고 했다. 굴러들어온 돌에 박힌 돌이 쫓겨나간다.
다문화 PC가 만든 ‘다문화 무질서’
이렇게 살로 직접 와 닿는 피해를 겪으면서도 캐네디언들은 이를 쉽게 공론화 할 수 없다.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는 무조건 존중해야 하고, ‘인종차별자’라고 매도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워크 비자가 없는데 일을 하고 있으며 돈도 꽤 버는 친구를 한 명 알게 됐다. 그는 멕시칸인데 멕시칸이 감독하는 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데는 워크 비자가 필요가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사업장이 또 굉장히 많아서, 많은 멕시칸들이 방문 비자만 받아 캐나다에 입국하고 캐나다에서 일을 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캐나다 정부는 세금을 잃는다. 특히 6월부터 9월까지가 가장 많은 멕시칸들이 오는 시기다. 이들은 공공장소 예절이 하나도 없다. 버스, 지하철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것은 예사고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에는 버스에서 멕시칸 국기를 두르고 노래 부르며 방방 뛰는 모습도 봤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아 시끄러워”란다. 그만큼 우리는 소음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공공장소에서 이어폰을 끼거나 조용히 대화하는 예의를 지키는 나라는 아마 한국과 일본 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안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비교도 안 된다.) 나는 왠지 난민 옹호 트윗을 날리는 트위터리안 언니들이 예민한 언니들일 것 같다. 온갖 모르는 언어로 시끄럽게 말하고, 블루투스까지 동원해 음악을 틀어대는 이민자, 외국인 가득한 지하철에서 언니들은 정말 불편을 느낄 것 같다.
멕시칸 친구에게 나도 거기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참고로 나는 워크 비자 있다.) 현장에서 스페인어만 쓰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뭐라구? 캐나다는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잖아! 백인 사업장에 백인만 가득하면 그건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가 되지만 다른 인종들이 자기들끼리만 고용하는 건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 안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유독 번자비계가 가득한 샌드위치 체인도 봤고 밴쿠버의 택시는 거의 번자비계 아니면 중동기사들이 몰더라. 이 안에 또 얼마나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있다는 말일까. 물론 문화적 특성이 있는 곳이라면 그 문화 사람들을 얼마든 데려다 써도 나는 불만이 없다. 타코집 직원이 모두 멕시칸이라거나 인도 음식점의 직원이 모두 인도인이라거나 중동 음식점의 직원이 모두 중동인인 것에는 오히려 환영한다. 더욱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은 문화적 특성이 있는 곳이 전혀 아니잖아.
밴쿠버에서는 많은 무슬림을 보기가 어렵지만 토론토에는 흔한 일이다. 토론토 길거리에서 무슬림 포교 활동도 한다. 이건 좀 우스운 이야기인데 모든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무슬림 남자들도 여자를 참 좋아한다. 토론토에 소위 ‘물 좋은 클럽’이 있었는데 무슬림 남자들이 그곳을 드나들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해선 안 될 짓들을 몇 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캐네디언들은 더 이상 그 클럽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무슬림계 유학생들이면 결혼한 상태로도 많이 오는데 아내는 집에 가둬두고 남편은 총각 행세라니. 몇 년 전 터키 사람 생각이 문득 난다. 물론 그는 아내를 가둬두지 않았지만.
무슬림 가정의 명예살인도 온타리오주를 떠들썩하게 했었다. 아버지가 이혼을 요구하던 첫째 부인, 무슬림식 생활 방식을 거부하던 세 딸들을 모두 죽인 사건이다. 조사를 더 해보니 아들과 그의 둘째 부인도 함께 했다. 둘째 부인은 최근 판결이 내려져 추방당했다.
한국은 캐나다 다문화 실패 참고해야
외국인들이 나쁜 짓을 하듯 한국인도 나쁜 짓을 한다고 물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우리끼리도 그 사람들로 골머리 아픈데 왜 그런 사람들을 더 들이자는 거냐며 반문하련다.
앞에서 말했지만 예멘 난민을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꺼려 하자 ‘무슬림 이민자나 한인 이민자나 다를 게 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봤다. 다른 것은 엄청 많다. 우리는 설날이나 추석이라고 당연히 휴가나 결근을 요구한 적 없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당인에 한해 특별 휴가, 휴일이 가능하다) 수요예배 가야 되니까 근무 빼달라고 한 적 없다. 일하다가 갑자기 기도하러 가지도 않는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딸이 남녀칠세부동석을 지키지 않았다고 명예살인 하지도 않는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외국에 처음 나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잘못된 행동으로 ‘한국인,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왔다. 내 주변 한인들도 그래왔다. 오죽하면 실수를 하면 차라리 ‘스미마셍’하고 도망치라는 농담까지 했다. 여러해 전에는 파독 간호사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간호사들은 ‘이제 우리 모두가 국가대표다’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타국에 와서도 그저 마이웨이, 자신만의 길을 간다. 그리고 오히려 이것을 불편으로 느끼지 말고 나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당신은 어디까지 양보해 줄 수 있겠는가.
정우성이 앞으로 한국에서 난민을 만날 일은 기자를 대동한 봉사활동과 그의 영화 시사회 초청 등이 전부일 것이다. ‘정우성 새 영화 시사회에 예멘 난민 초청... 함께 문화 즐기고파’ 정우성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러나 설거지 순번을 두고 칼부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가 자랑스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 문제가 어떻든, 난민 문제가 어떻든, 사실 캐나다는 괜찮다. 캐나다 산림을 전부다 팔아버리면 캐나다 인구 전체가 몇 십 년은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캐나다의 천연 자원은 캐나다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한국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