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평범해 보였습니다.
이마에 스와스티카 문신을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두 눈을 부릅 뜬 바보같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조용했습니다.
차도를 점령하고 행진했지만 교통신호는 잘 준수하는 편이었습니다.
다만 소수를 공격하는 이런 종류의 증오집회가 시골 소도시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들에게 반대하는 카운터집회가 형성되거나 주변 시민들의 야유나 항의를 받는 모습을 목격할 수 없었다는 점이 좀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대체로 조용하던 시위행렬이 SC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본점앞을 지날 무렵,
맞은 편 보신각 앞에서 집회 중이던 웬 아저씨 아줌마들과 이들은 서로에게 환호를 보내며 격려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아저씨 아줌마들은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었고,
한 귀퉁이에는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 입니다" 라고 쓴 플래카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에 대한 답변은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플래카드 옆 초상화의 주인공 60 대 올림머리 아줌마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안우파가 어느 집단과 정서적으로 연대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국민을 위한 대안' 이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보드를 들고 있는 청년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청년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내가 DSLR, 스맛폰, 태블릿 등 세 대의 카메라로 차례로 촬영하는 동안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외국인 여행자들이 보드에 무슨 신통방통한 내용이라도 적혀 있는 줄 알았는지 덩달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가 여행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집회인줄 아느냐고요.
모르겠답니다. 무슨 집회인지 오히려 내게 되 묻습니다.
"Alt-right"
"Really?? oh, god..well, we saw some children there, though.."
그러고보니 어린이들을 동반한 대안우파집회는 나도 처음 봅니다.
이 집회 참가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토론을 벌이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난민찬반 프레임 따위에 휘말리는 건 시간낭비 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일개 법률이 아니라,
헌법 위에서 헌법을 통제하는 자유인권권리헌장로서의 최상위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차별금지를 둘러싼 거의 모든 사회적 논쟁의 출발점은 결국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서열을 둘러싼 철학적 사유 논쟁으로 귀착됩니다.
국가란 현실적이고도 이기적인 공동체라는 그 특성 때문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주류 문화와 정체성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주민과 난민 문제를 다루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와 제도는 현상유지를 하려는 보수적 경향이 강하지만, 개인은 항상 정체를 거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결국 국가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갈등과 투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만큼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권에 대한 사유와 고민이 깊고 복잡하다고 간주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런 사회는 윤리척도가 높은 공동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자유주의 또는 진보진영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그 사유체계가, 적어도 난민과 이주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얼마나 빈약하고 불완전한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었는지 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초라한 자화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입니다.
특히 민족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동경과 미련이 어떻게 가치서열에 대한 합리적 내부정리를 방해하고, 자유주의 진영의 이론가들로 하여금 논리의 앞뒤가 맞지않는 횡설수설을 늘어놓게 만드는지 솔직하게 돌아 볼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입니다.
Seriously?
1. 증오는 최악의 국가파괴행위다 (싸르니아가 대한민국 대안보수에게)
2. Nationalism is betrayal of patriotism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는 애국에 대한 배신이다. 임마누엘 마크롱이 도널드 트럼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