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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문맹퇴치 3]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성서는 인류의 문제에 정직하게 답할 수 없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387 작성일 2018-11-25 06:51 조회수 2393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우주는 초자연적인 힘의 계획과 간섭 없이 우연히 자연적으로 무(Nothing)에서 출현했다. 오늘까지 장구한 세월의 우주진화 여정에서 수백억 개의 은하계와 각 은하계에 수백억 개의 별들이 등장했고, 지금도 오래된 은하계와 별들이 폭발해서 사라지고 새로운 은하계와 별들이 탄생하면서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특히 50억 년 전 우리가 속해있는 은하계에 태양계가 형성되었으며,  45억 년 전 우리의 집 지구가 출현했다. 지구상에 40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했으며 이후부터 생명체들은 동물과 식물로 진화과정을 계속했으며, 30만 년 전 태초의 이성적인 인간, 즉 원시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우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다. 즉 우주의 출현은 인간의 탄생의 기원이며, 인간은 우주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개체들 중에 하나이다. 우주는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모태인 우주는 빅뱅 이후부터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진화하고 팽창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본성은 자율성, 창조성, 가능성, 잠재력이다. 또한 우주에 속한 인간의 본성도 우주와 동일하다. 이렇게 현대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 즉 우주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소중한 존엄성이다.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은 인간이 만든 종교와 철학과 사상이 부인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다.  

 

기독교 성서가 호모싸피엔스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에 대해 무지하거나 외면하거나 왜곡하면 인간과 세상사의 모든 문제들에 정직하고 선명하게 답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면서 인간을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폄하하고 현세의 생명들과 자연 세계를 징벌받아 멸망할 세상으로 믿는 성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상식적인 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성서를 삼층 세계관에 근거하여 문자적으로 읽는 근본주의자들은 성서가 제시하는 답이 절대적이라고 억지주장을 늘어놓으며 이것을 무작정 믿으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억지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며, 인류사회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체들 하나하나에게 공통적이고 평등하고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지혜를 제공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생존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내세적인 교리와 이분법적인 믿음은 지극히 부족적 내지는 민족적이기 때문에 다원주의 사회 전체의 문제에 이성적으로 답할 수 없다.

 

더욱이 성서 근본주의자들은 인간 예수 위에 이분법적 교리를 더덕더덕 덧칠해서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초자연적인 하느님, 즉 인간들을 태어나면서부터 더러운 죄인이라고 정죄한 하느님,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만 구원하는 이분법적 하느님, 세상은 더럽고 멸망해야 하고 최후심판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징벌하는 하느님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 구원하는 옹졸한 하느님이 아니다. 처음으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참 인간을 체험했으며 이것 때문에 로마제국의 혹독한 치하에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살아내기로 결심했고 그 체험을 기록했다. 불행하게도 기록의 원본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단지 역사적 예수를 왜곡하고 변질시킨 무수한 사본들만 여기저기에 퍼져있다. 현대 신약성서는 수많은 사본들 중에 겨우 27권만 수집하고 편집한 책이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하느님 예수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떠나 보내면서 역사적 인간 예수를 찾아 나서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성상에 앉힌 예수를 맹신하는 성서 근본주의는 더 이상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능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교회기독교는 죽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교회는 얼마나 더 생존할지 시간문제이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원한다면 우주진화 세계관에 기초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서를 읽어야 하며, 성상에 앉힌 하느님 예수를 떠나 보내고, 해변가와 시장터와 들판에서 가르치던 참 사람 예수의 정신을 되살려여야 한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의 서간집에 이런 기도문이 있다. “하느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안을 주시고, 또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용기를 주시되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21세기의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삶의 여정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에 대해서 진솔하게 고민하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주후 325년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정치적인 야욕으로 니케아 신경을 만든 이후 적어도 지난 1700년 동안 기독교 교회는 역사적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았던 깨달음의 참 인간됨을 무시하고 이분법적 교리로 그의 우주적인 정신을 변질시켰다. 예수는 성직자도 교리주의자도 신학자도 아니었으며, 오직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 평범한 인도주의자였다. 인류 역사를 선도해온 사람들은 물론 오늘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예수의 기적을 문자적으로 믿는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라 예수의 참 인간성에 감동된 인도주의자들이다. 기독교 교회는 성서 근본주의에서 해방되어 잃어버린 역사적 예수의 참 인간성을 회복하고,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참 인간됨을 따라 스스로 깨닫고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성서 근본주의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참 인간이 되는 길은, (1) 호모싸피엔스 인간의 본성, (2) 참 인간이 되는 길의 걸림돌, (3)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기원, (4)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망, (5) 성서의 형성과 발전배경, (6) 구약 성서의 발전사, (7) 신약 성서의 발전사, (8) 성서의 정경화 과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종교인이 되기 전에 인간은 누구인가 즉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에 대해서 아는 것은 신앙과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을 모르면서 자신의 한계 넘어에 있는 영원함과 신비함과 거룩함을 안다는 것은 거짓과 속임수에 불과하다. 인간은 생물종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과 우주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자아의식을 갖고 있기에 호모싸피엔스라고 부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아의식을 통해서 죽음과 생존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을 느낀다. 또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 세계로부터 분리된 자신을 경험하면서 허약감, 종속감,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본향으로 되돌아가 안전한 안식처를 되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자아의식은 주전 960년경에 기록된 구약 성서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창세기 2)에서 잘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성서 근본주의에서 주장하는대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인간의 원죄(Original sin)에 대한 것도 아니고, (타락)-회개-용서-구원의 이분법적 구속론 교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원죄론은 구약의 창조 이야기가 기록된지 1500년 후에, 주후 5세기에 성어거스틴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통제하기 위해 창작한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교리이다. 구약 성서는 아담과 이브가 새로운 인간으로써 자아의식을 깨닫고 새로운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새로운 인간은 자신은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성스러운 생명이며 자신도 어떤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원복(Original Blessing)을 확신한다. 아담과 이브는 한 때 하느님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았던 에덴 동산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자아의식을 통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다시 말해, 성서는 하느님과 종교와 믿음과 교리에 대한 책이 아니라, 성서의 핵심은 인간의 참 인간됨과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한 책이다.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려고 영생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으며 종교적 내지는 영적인 사고가 발달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특이한 생물종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성(Spirituality)은 항상 인간의 삶에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영적인 생물종이다. 또한 인간은 사회화 과정에서 두려움의 부산물인 편견과 이기심과 욕심과 배타심을 자의반타의반 갖게 되었고 이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종교를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간이 스스로 만든 원초적인 종교들은 변질하기 시작했으며 이 두려움과 고통의 원인을 정직하게 밝히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두려움과 고통의 해방과 영생에 대해서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이분법적 교리들을 창작하여 사람들을 통제하고 오히려 더 많은 두려움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고통의 원인은 원죄가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이다. 역사적 예수는 종교체제가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과 고통을 악용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고 영생을 팔아먹는 것에 저항했으며, 그 대안으로 깨달음의 참 인간이 되는 구원의 길 즉 참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는 운동을 시작했다.

 

역사적 예수는 종교의 기능과 목적은 인간이 온갖 두려움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참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불교의 붓다도 인간이 두려움과 고통을 넘어서는 길을 기존 종교체제에서 찾기 보다는 명상을 통해서 깨달았다. 붓다도 예수처럼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부산물이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편견과 이기심과 욕심과 배타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수와 붓다는 내려놓고 비우는 길만이 참 인간으로 자유하게 살수 있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몸소 살았다. 그러나 후대에 추종자들은 기독교와 불교라는 종교체제를 만들고,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보상심리의 이분법적 교리와 전통과 형식을 만들었다.

 

예수의 정신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되는 목적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 즉 천당으로 가서 영원히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사는 영생(Eternal life)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천당과 지옥, 축복과 징벌의 이분법적 교리와 공식은 사람들을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보다는 더 많은 두려움과 이기심과 편견과 배타심을 조장하고 더 큰 고통을 줄 뿐이다. 기독교인이 되는 목적은 예수가 산 것처럼 인간의 본능인 생존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영원함(Eternity)을 누리며 사는 참 인간이 되기 위함이다. 예수의 영생은 죽은 후 내세의 문제가 아니라, 현세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영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깊이 깨달은 진짜 바울의 영생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어 사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참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일체가 되는 얼나(靈我)이며, 순간에서 영원함을 누리며 사는 참나이다.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은 두려움과 편견과 욕심으로 가득한 몸나를 벗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함을 누리는 참 인간이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인은 참 인간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서 하느님, 예수, 인간, 생명 그리고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하느님과 예수와 인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성서 근본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성서에 대한 과거의 패러다임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면 순간에서 영원함을 누리는 참 인간의 길 새로운 하느님, 새로운 예수, 새로운 인간 - 을 찾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현인들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은 참 인간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예수, 바울, 석가, 노자, 장자, 톨스토이, 마이스트 에카르트, 간디, 유영모, 슈바이처, 마틴 루터 킹은 죽음의 두려움과 그 부산물로 생겨난 편견과 이기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참 인간으로 살았다. 또한 이들에게 참 인간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사는 것이었다. 현인들은 모든 인간은 사는 의미를 이해하고 인식하고 깨달으면서 참 인간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죽음 앞에서 경건한 체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나 정직하지 못한 믿음 속에 죽음의 두려움을 감추는 것은 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순수하고 진실한 인간성 즉 참 인간 됨의 확장이다. 역사적 예수의 솔직한 인간성에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가 드러났다. 기독교인은 인간성을 무시한체 하느님을 찾을 수 없으며, 더욱이 하느님의 의미를 인식할 수도 없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참 인간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나타난 예수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의미와 인간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였다. 역사적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이 아니라, 참 인간의 모범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인간성에서 종교체제의 간섭과 중개없이 스스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다. 성서 근본주의는 참 인간 예수를 만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며, 초자연적이고 유신론적인 하느님의 정의는 참 인간 예수의 의미를 방해하고, 참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 거룩한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참 인간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이었으며, 이 예수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소중하게 인식하면서,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 인간과 세상, 그리고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기 보다는 통합적인 하나로 보는 것을 가능케했다. 무엇보다, 죽음이란 하느님의 징벌이나 마지막 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즉 지금 여기에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영원함으로의 시작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예수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심층적인 의미를 일깨워 주면서 자신을 낮추고 비우며 살았다. 여기에 종교체제가 만든 이분법적 교리를 믿고 안믿고의 조건이 없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예수가 산 것처럼 사심없이 사는 것이 참 인간이 되는 길이고 구원의 길이다.

 

기독교는 이 세계 외부의 신이 지구로 내려와 만든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느님 예수를 관념적으로 믿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참 인간 예수가 깨닫고 몸소 살아냈던 하느님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사는 종교이다. 예수가 깨닫은 하느님의 의미는 성전종교의 이분법적 하느님과 180도로 달랐다. 예수의 하느님은 인간과 분리되지 않았으며, 인간이 스스로 내면으로부터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진리이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삶으로부터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체험하고 자신들도 예수처럼 살겠다는 결단에서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예수의 기독교는 제도적인 교회가 만든 이분법적 교리들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예수의 기독교는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하느님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고, 이것을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는 삶의 종교이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각자의 시대의 한계 안에서 살아간다. 21세기에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요청한 것처럼 성서 근본주의의 교리적이고 이분법적인 인간에서 깨달음의 참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결론적으로, 21세기에 기독교 성서는 우주진화 세계관에 기초하여 은유적으로 읽고, 재해석하여 현대어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예수를 만나 그의 가르침과 삶을 깨달아 알 수 있으며, 또한 예수의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으고 참 인간으로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성서는 오늘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에 정직하게 상식적으로 답할 수 있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더 읽을 책>

 

*** (본 칼럼의 생각들은 이 책들에서 나왔다. 이 책들을 통해 세계의 과학 철학 종교 사상에 대한 미래의 물결을

       이해할 수 있다.) ***

 

오강남, 성해영.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북성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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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 지구의 정복자. 사이언스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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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8-11-2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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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께서 언급하신 라인홀드 니버는 "원죄"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신정통주의 니버가 왜 나왔고 왜 그의 기도문을 인용하셨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인용은 자유지만요. 이것은 맥락없는 기도문입니다. 니버는 빌리 그레이엄과는 다른 형태지만, 그는 여전히 전통적인 유신론적 신학자였구요. 그가 원죄를 강조한 것은 죄의 유전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성, 나약함 등을 재해석한 것이죠. 세계 제 1, 2 차 대전과 나찌즘을 경험한 신학자의 고뇌가 이 단어에 배어 있습니다. 시대의 자녀로서 말이죠. 왜냐하면 모든 신학은 시대의 조류에 대한 반응이니까요.

늘봄님께서 원죄를 부정하시면서 거의 원용하셨던 진화론적 신학자 Philip Hefner는 원죄를 진화론적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의 원죄개념은 로마서를 잘못해석한 것이긴 하지만, 헤프너는 원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려고 한 것이죠. 그렇다면 늘봄님은 헤프너를 완전히 오독한 것이죠. 헤프너는 그의 책에서 틸리히를 인용하면서 기본적으로 틸리히를 따른다고 했는데 틸리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구요. 헤프너의 사상적 아버지는 바로 틸리히였죠. 그러므로 글을 쓸 때 원저자의 의도와 달리 내식으로 인용/해설하는 경우도 표절에 해당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나의 생각이 텍스트 이해를 압도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원죄에 대한 성서오독은 John Toews [The Story of Original Sin] (2013)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라인홀드 니버, 빌리 그레이엄, 폴 틸리히의 원죄론에 대해서 참 정리한 책은 Andrew S. Finstuen의 [Original Sin and Everyday Protestants: The Theology of Reinhold Niebuhr, Billy Graham, and Paul Tillich in an Age of Anxiety] (2009)가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구요.

그런데 새로운 신학적 비전을 제시한 헤프너하고 고든 카우프만이 늘봄님의 참고 문헌에서 사라졌군요. 헤프너는 그렇다치고 카우프만은 두고 두고 써먹어야 할 사람인데요. 약간 전통적 신학에 있지만, 형 라이홀드 니버, 동생 리챠드 니버, 고든 카우프만, 폴 틸리히를 왜 후학들이 아직도 열광하는지 그리고 압도되는지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압니다. 제가 볼 때 늘봄님은 이들 모두 제대로 리뷰 하셨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신학은 선언이 아니라 기존의 신학적 작업에 대한 성찰 (literature review)를 통해서 발전시키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이러한 지난한 작업이 배제된 것은 신학이라기 보다는 설교나 선전선동에 가까운 것입니다. 신학의 영역은 워낙 방대해서 서로 분업을 하죠. 늘봄님이 지질학에 조예가 깊으시니까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잘 정리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입니다. 작년에 타계한 종교학자 Jonathan Z Smith는 일반 신학계나 종교학계에 개신교적 편견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조나단 스미쓰는 종교학계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늘봄님의 글을 폄훼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솔직한 평가구요. 여기에 수년 동안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늘봄님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종교에 대한 담론에 대해서 저의 감상의 글을 올렸을 것입니다. 제 글이나 제 댓글에 대해 비판하는 글은 언제든지 환영하고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신학은 “타자이해”라고 했었는데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신학의 작업은 바로 근본주의든지 아니든지 타자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할 때 건실합니다. 쌈을 걸기 전에 이런 종교의 사회적 정치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을 이해하면 더 잘 보이겠죠. 다문화 사회에서는 이런 접근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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