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출산 임신부: "내 아이에게 훗날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어서요"
원정출산 찬성자: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에요"
"원정출산을 오는 사람들은 수천 달러, 그 이상을 쓰죠. 큰 산업입니다"
원정출산 반대자: "공평하지 않아요. 다른 이민자들은 캐나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고 여러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단지 출생만으로 시민권을 얻잖아요"
"왜 세금 한 푼 안 낸 사람들이 혜택은 누리는 거죠? 무임승차라고요"
캐나다에서 선거 때면 불거져 나오는 '휘발성 강한' 이슈가 있다. 원정출산 문제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자동으로 캐나다 시민권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캐나다 시민권'만을 위해 출산 여행을 감행하는 외국인들이 있다. 이런 행태를 비꼬는 말이 'birth tourism(출산 관광)', 'anchor baby(닻을 내리듯 부모가 아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착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 들어 이 '원정출산' 문제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제 1야당인 보수당이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시민권법 개정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의 부모 중 한 명이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일 경우에만 시민권을 주도록하는 내용이다. 내년 연방정부 선거 때 주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10월엔 집권 여당 의원까지 정부의 '방치'를 지적하는 입법 청원을 냈다. 정치권의 압박과 논란이 거세지자, 연방정부가 사실 확인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연방정부 차원의 '원정출산' 관련 실태조사나 공식 통계는 없었다.
■캐나다 연방정부 '원정출산' 실태 조사 착수
아흐메드 후센 이민부 장관은 지난달 의회에 출석해 "정부가 원정출산의 범위와 영향을 더 잘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후센 장관의 발언은 조 페치솔리도 자유당 연방 하원의원의 입법 청원에 대한 연방정부의 공식 답변서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원정출산의 범위와 그 영향을 더 잘 이해할 필요성을 정부가 인지하고 있다.
캐나다 건강 정보 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information)에 비거주자에게서 태어난 자녀 수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고 관련 추가 조사도 수행할 예정이다.
캐나다 정부는 사기 혹은 비윤리적인 컨설팅 관행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캐나다 이민과 시민권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한 보다 강화된 조치를 마련하고자,
부도덕한 컨설턴트 그리고 법의 부당한 활용 사례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11월 19일
원정출산이 '산업화'되면서 부도덕한 컨설팅 등으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양산할 수도 있다고 보고 정확한 실태파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컨설턴트-병원-숙박시설-법률가 연계 ...산모 1명 8천만원 소비
캐나다 '원정출산' 실태는 어떨까? 리치몬드 시를 취재했다. '원정출산'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지역으로 입법 청원을 낸 조 페치솔리도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캐나다 서부 메트로 밴쿠버(Metro Vancouver)에 속한 지역인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어서 풍수를 따지는 중국인들이 몰린다고 했다. 거리엔 중국어 간판이 영어 간판보다 더 쉽게 눈에 띌 정도였는데 중국인들의 원정출산도 많이 이뤄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지역의 대형 병원들을 찾아가봤다. 중국어 영상을 제작해 출산센터를 홍보하고 있었다. 외국인용 요금표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캐나다인이라면 출산비용이 무료지만 외국인인 경우 병원마다 비용이 다르다. A병원의 경우 자연분만은 8천 캐나다 달러(약 7백만 원), 제왕절개 분만은 1만 3천달러(1천 1백만원)가 최소 비용이다. A병원은 '원정출산' 산모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출생아의 어머니가 외국인인 비율이 2015년 15.5%, 2016년 17.2%,2017년 29.1%로 증가세다. 대부분 중국인이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보증금을 내러 온 20대 중국인 임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임신 6개월째로,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출산을 위해 캐나다에 왔다고 했다. 원정출산을 택한 이유를 묻자 "내 아이에게 훗날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어서요, 교육이나 직업고 그렇고…"라고 말했다.
캐나다 시민권이 가지는 매력 때문에 그녀는 혼자 14시간을 날아왔다. 나홀로 '원정출산'에 나섰지만 그다지 어려운 점은 없어 보였다. 이날처럼 병원을 오갈 때는 원정출산 업체 직원이 항상 동행한다고 했다.
업체 직원에게 하는 일을 물어보니 산후 조리를 도와주는 여성과 숙소도 소개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A 병원에서 만난 또다른 중국인 임신부가 머무는 숙소를 찾아가봤다. 주택가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방마다 세를 주고 있는, 숙박업소였다. 중국인 여성이 산후조리를 돕고 있었다. 이런 형태를 산모 호텔(Maternity hotel) 혹은 산후조리원(baby house)이라고 한다.
산모 호텔은 밴쿠버 공항에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리치먼드 주택가 곳곳에서 은밀히 성업중이었다. 그 중 한 곳을 찾아갔더니 역시 일반 주택이었다. 대리석 바닥이 깔린 이층 집에 욕실 딸린 방이 5개 있었다. 세탁기도 4대나 있었다. 3개월 이상 임대 조건으로 숙박비만 1달에 900달러라고 했다. 물론 정식 허가를 받은 숙박업소는 아니었다.
리치먼드 토박이인 케리는 이웃집에 외국 임신부들이 들락거려 원정출산 문제를 주목하게 됐다. 아예 원정출산을 안내하는 서비스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케리 스타척(리치먼드 주민) : "이웃 숙박업소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모두 목격했죠. 원스톱 쇼핑같아요. 공항에서 임신부를 데려와요. 숙소에서 음식도 제공하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도우미들(aunties)도 있어요. 리치먼드에서는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시사 주간지인 매클린스 보도에 따르면 이같은 산모 호텔은 캐나다 주요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임신부들이 출산 호텔을 찾는 것은 숙박공유사이트인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시설을 검색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 주택이지만 호텔 주인은 식사 뿐아니라 가정 의사(캐나다에서는 가정에서 출산도 많이 이뤄진다), 통역, 교통편 등 수많은 서비스 제공한다.
법률사무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론토의 한 이민전문법률사무소는 아예 홈페이지에 '원정출산'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담당 변호사는 고객들에게 캐나다 비자발급 요건, 체류 비용과 출산 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답변한다고 했다. 고객 분포는 중동과 터키, 러시아 등 다양했다.
이렇게 병원과 숙박업소, 비자와 시민권 신청 등을 맡는 법률사무소, 그리고 본국에서부터 캐나다 현지까지 이를 연결해주는 컨설턴트까지 연계돼 하나의 산업이 형성된 셈이다. 원정출산에 드는 모든 비용은 8천만원 가까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0.1%도 안된다고? 통계가 틀렸다" ...증가하는 원정출산
그렇다면 원정출산은 어느 정도나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16년 캐나다 통계청이 집계한 313명(전체 출생아 수의 0.1%미만)이 그나마 최신 자료다. 그런데 최근 씽크탱크인 Policy Options 소속 앤드류 그리피스전 이민부 국장이 파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캐나다 보건정보원의 퇴원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2016년만 해도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기가 3200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통계청 발표보다 9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2017년의 경우 3600명이 태어났고 이는 전체 출생아의 1.2%로 나타났다. 그리피스 전 국장은 퀘벡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원정출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 원정출산을 둘러싼 논쟁 "시민권 가치 떨어져" vs "이민자 차별"
원정출산이 늘어나면서 불만을 드러낸 건 지역주민들이었다. 쉽게 얻은 시민권으로 교육과 의료, 사회복지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오히려 캐나다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다. 조 페치솔리도 의원이 낸 청원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청원 E-1527(캐나다 시민권)
"출산 관광(Birth Tourism)의 관행은 근본적으로 캐나다 시민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출산 관광은 캐나다의 공공 보조금을 지급받는 교육시스템에 접근하고 사회보장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매우 많은 비용을 부담시킨다. 캐나다 시민과 영주권자는 오히려 지역병원을 차지한 외국인들 때문에 다른 지역 병원을 이용해야만 한다. 출산 관광의 형성으로 규제를 받지 않는 지하 산업이 캐나다는 물론 해당 산모의 국가에서 개발되고 있다. 정부는 출산 관광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런 관행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
청원에는 리치먼드가 속한 브리티시 주에서 7800명, 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 주에서 1300명이 서명하는 등 캐나다 전역에서 만 명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치는 정책 기조에 반하고 이민자 차별이라는 것이다.
라흐마드 소비로프스 이민전문변호사 : "시민권법이 발효된 1947년 이후 캐나다는 이민자들을 적극 받아들였어요. 이것이 캐나다가 추구해오던 가치입니다. 지금 보수당에서 제안하는 정책은 실제로는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부모 중 한 명이 캐나다 시민이 아닐 경우 아기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겠다면 난민, 임시 노동자들, 캐나다 방문객,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원정출산을 둘러싼 논란은 인종차별문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리마 윌케스 브리티시 컬림비아 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이런 원정출산에 누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 던졌다. 거기에는 인종적인 요소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리마 윌케스 UBC교수 :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자들도 '원정출산' 반대 운동을 함께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합법적으로 왔고 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수용되길 원하는 거죠. 진정한 캐나다인이 되는데 인종이 중요한가, 가치가 중요한가, 여기에 견해 차이가 있는 겁니다. (원정출산논란은) 인종차별주의와 사회계층문제가 혼합돼 있다고 봐요. 사라지지 않을 주제가 될 거예요."
내년에는 캐나다 연방정부 선거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원정출산' 카드를 꺼냈을 정도로 민감한 이슈인만큼, '원정출산'이 논쟁거리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자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시민권을 주는 '출생지주의'는 전 세계에서 34개 국가만이 유지하며 영국과 호주도 이 제도를 더이상 유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논란에 불을 붙이는 한 요소다.
정부의 태도는 분명하다. 시민권법(Citizenship Act)에 따라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에 입국할 때 여성의 임신여부를 수집하지 않으며, 캐나다에서 출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자를 거부할 수도 없다. 또한 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아주 잘못되고 혼란스러운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현지에서는 '출생지주의'가 결코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인만큼, 오히려 치열한 논쟁을 통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민자 국가 캐나다 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원정출산 찬성자: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에요"
"원정출산을 오는 사람들은 수천 달러, 그 이상을 쓰죠. 큰 산업입니다"
원정출산 반대자: "공평하지 않아요. 다른 이민자들은 캐나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고 여러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단지 출생만으로 시민권을 얻잖아요"
"왜 세금 한 푼 안 낸 사람들이 혜택은 누리는 거죠? 무임승차라고요"
캐나다에서 선거 때면 불거져 나오는 '휘발성 강한' 이슈가 있다. 원정출산 문제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자동으로 캐나다 시민권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캐나다 시민권'만을 위해 출산 여행을 감행하는 외국인들이 있다. 이런 행태를 비꼬는 말이 'birth tourism(출산 관광)', 'anchor baby(닻을 내리듯 부모가 아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착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 들어 이 '원정출산' 문제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보수당은 8월 전당대회에서 시민권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제 1야당인 보수당이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시민권법 개정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의 부모 중 한 명이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일 경우에만 시민권을 주도록하는 내용이다. 내년 연방정부 선거 때 주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10월엔 집권 여당 의원까지 정부의 '방치'를 지적하는 입법 청원을 냈다. 정치권의 압박과 논란이 거세지자, 연방정부가 사실 확인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연방정부 차원의 '원정출산' 관련 실태조사나 공식 통계는 없었다.
■캐나다 연방정부 '원정출산' 실태 조사 착수
아흐메드 후센 이민부 장관은 지난달 의회에 출석해 "정부가 원정출산의 범위와 영향을 더 잘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후센 장관의 발언은 조 페치솔리도 자유당 연방 하원의원의 입법 청원에 대한 연방정부의 공식 답변서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원정출산의 범위와 그 영향을 더 잘 이해할 필요성을 정부가 인지하고 있다.
캐나다 건강 정보 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information)에 비거주자에게서 태어난 자녀 수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고 관련 추가 조사도 수행할 예정이다.
캐나다 정부는 사기 혹은 비윤리적인 컨설팅 관행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캐나다 이민과 시민권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한 보다 강화된 조치를 마련하고자,
부도덕한 컨설턴트 그리고 법의 부당한 활용 사례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11월 19일
원정출산이 '산업화'되면서 부도덕한 컨설팅 등으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양산할 수도 있다고 보고 정확한 실태파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컨설턴트-병원-숙박시설-법률가 연계 ...산모 1명 8천만원 소비
캐나다 '원정출산' 실태는 어떨까? 리치몬드 시를 취재했다. '원정출산'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지역으로 입법 청원을 낸 조 페치솔리도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캐나다 서부 메트로 밴쿠버(Metro Vancouver)에 속한 지역인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어서 풍수를 따지는 중국인들이 몰린다고 했다. 거리엔 중국어 간판이 영어 간판보다 더 쉽게 눈에 띌 정도였는데 중국인들의 원정출산도 많이 이뤄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지역의 대형 병원들을 찾아가봤다. 중국어 영상을 제작해 출산센터를 홍보하고 있었다. 외국인용 요금표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캐나다인이라면 출산비용이 무료지만 외국인인 경우 병원마다 비용이 다르다. A병원의 경우 자연분만은 8천 캐나다 달러(약 7백만 원), 제왕절개 분만은 1만 3천달러(1천 1백만원)가 최소 비용이다. A병원은 '원정출산' 산모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출생아의 어머니가 외국인인 비율이 2015년 15.5%, 2016년 17.2%,2017년 29.1%로 증가세다. 대부분 중국인이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보증금을 내러 온 20대 중국인 임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임신 6개월째로,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출산을 위해 캐나다에 왔다고 했다. 원정출산을 택한 이유를 묻자 "내 아이에게 훗날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어서요, 교육이나 직업고 그렇고…"라고 말했다.
캐나다 시민권이 가지는 매력 때문에 그녀는 혼자 14시간을 날아왔다. 나홀로 '원정출산'에 나섰지만 그다지 어려운 점은 없어 보였다. 이날처럼 병원을 오갈 때는 원정출산 업체 직원이 항상 동행한다고 했다.
업체 직원에게 하는 일을 물어보니 산후 조리를 도와주는 여성과 숙소도 소개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A 병원에서 만난 또다른 중국인 임신부가 머무는 숙소를 찾아가봤다. 주택가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방마다 세를 주고 있는, 숙박업소였다. 중국인 여성이 산후조리를 돕고 있었다. 이런 형태를 산모 호텔(Maternity hotel) 혹은 산후조리원(baby house)이라고 한다.
산모 호텔은 밴쿠버 공항에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리치먼드 주택가 곳곳에서 은밀히 성업중이었다. 그 중 한 곳을 찾아갔더니 역시 일반 주택이었다. 대리석 바닥이 깔린 이층 집에 욕실 딸린 방이 5개 있었다. 세탁기도 4대나 있었다. 3개월 이상 임대 조건으로 숙박비만 1달에 900달러라고 했다. 물론 정식 허가를 받은 숙박업소는 아니었다.
리치먼드 토박이인 케리는 이웃집에 외국 임신부들이 들락거려 원정출산 문제를 주목하게 됐다. 아예 원정출산을 안내하는 서비스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케리 스타척(리치먼드 주민) : "이웃 숙박업소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모두 목격했죠. 원스톱 쇼핑같아요. 공항에서 임신부를 데려와요. 숙소에서 음식도 제공하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도우미들(aunties)도 있어요. 리치먼드에서는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시사 주간지인 매클린스 보도에 따르면 이같은 산모 호텔은 캐나다 주요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임신부들이 출산 호텔을 찾는 것은 숙박공유사이트인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시설을 검색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 주택이지만 호텔 주인은 식사 뿐아니라 가정 의사(캐나다에서는 가정에서 출산도 많이 이뤄진다), 통역, 교통편 등 수많은 서비스 제공한다.
법률사무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론토의 한 이민전문법률사무소는 아예 홈페이지에 '원정출산'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담당 변호사는 고객들에게 캐나다 비자발급 요건, 체류 비용과 출산 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답변한다고 했다. 고객 분포는 중동과 터키, 러시아 등 다양했다.
이렇게 병원과 숙박업소, 비자와 시민권 신청 등을 맡는 법률사무소, 그리고 본국에서부터 캐나다 현지까지 이를 연결해주는 컨설턴트까지 연계돼 하나의 산업이 형성된 셈이다. 원정출산에 드는 모든 비용은 8천만원 가까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0.1%도 안된다고? 통계가 틀렸다" ...증가하는 원정출산
그렇다면 원정출산은 어느 정도나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16년 캐나다 통계청이 집계한 313명(전체 출생아 수의 0.1%미만)이 그나마 최신 자료다. 그런데 최근 씽크탱크인 Policy Options 소속 앤드류 그리피스전 이민부 국장이 파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캐나다 보건정보원의 퇴원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2016년만 해도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기가 3200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통계청 발표보다 9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2017년의 경우 3600명이 태어났고 이는 전체 출생아의 1.2%로 나타났다. 그리피스 전 국장은 퀘벡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원정출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치먼드의 한 종합병원에서 출산한 중국인 여성이 퇴원하고 있다
■ 원정출산을 둘러싼 논쟁 "시민권 가치 떨어져" vs "이민자 차별"
원정출산이 늘어나면서 불만을 드러낸 건 지역주민들이었다. 쉽게 얻은 시민권으로 교육과 의료, 사회복지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오히려 캐나다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다. 조 페치솔리도 의원이 낸 청원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청원 E-1527(캐나다 시민권)
"출산 관광(Birth Tourism)의 관행은 근본적으로 캐나다 시민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출산 관광은 캐나다의 공공 보조금을 지급받는 교육시스템에 접근하고 사회보장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매우 많은 비용을 부담시킨다. 캐나다 시민과 영주권자는 오히려 지역병원을 차지한 외국인들 때문에 다른 지역 병원을 이용해야만 한다. 출산 관광의 형성으로 규제를 받지 않는 지하 산업이 캐나다는 물론 해당 산모의 국가에서 개발되고 있다. 정부는 출산 관광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런 관행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
청원에는 리치먼드가 속한 브리티시 주에서 7800명, 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 주에서 1300명이 서명하는 등 캐나다 전역에서 만 명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치는 정책 기조에 반하고 이민자 차별이라는 것이다.
라흐마드 소비로프스 이민전문변호사 : "시민권법이 발효된 1947년 이후 캐나다는 이민자들을 적극 받아들였어요. 이것이 캐나다가 추구해오던 가치입니다. 지금 보수당에서 제안하는 정책은 실제로는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부모 중 한 명이 캐나다 시민이 아닐 경우 아기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겠다면 난민, 임시 노동자들, 캐나다 방문객,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원정출산을 둘러싼 논란은 인종차별문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리마 윌케스 브리티시 컬림비아 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이런 원정출산에 누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 던졌다. 거기에는 인종적인 요소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리마 윌케스 UBC교수 :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자들도 '원정출산' 반대 운동을 함께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합법적으로 왔고 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수용되길 원하는 거죠. 진정한 캐나다인이 되는데 인종이 중요한가, 가치가 중요한가, 여기에 견해 차이가 있는 겁니다. (원정출산논란은) 인종차별주의와 사회계층문제가 혼합돼 있다고 봐요. 사라지지 않을 주제가 될 거예요."
국민 5명 중 1명은 이민자일 정도로 캐나다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실시해왔다
내년에는 캐나다 연방정부 선거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원정출산' 카드를 꺼냈을 정도로 민감한 이슈인만큼, '원정출산'이 논쟁거리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자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시민권을 주는 '출생지주의'는 전 세계에서 34개 국가만이 유지하며 영국과 호주도 이 제도를 더이상 유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논란에 불을 붙이는 한 요소다.
정부의 태도는 분명하다. 시민권법(Citizenship Act)에 따라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에 입국할 때 여성의 임신여부를 수집하지 않으며, 캐나다에서 출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자를 거부할 수도 없다. 또한 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아주 잘못되고 혼란스러운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현지에서는 '출생지주의'가 결코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인만큼, 오히려 치열한 논쟁을 통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민자 국가 캐나다 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