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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한심하지만, 뒤늦게나마 다행입니다.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11529 작성일 2019-01-14 17:55 조회수 4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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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한민국 포털 메인을 장식한 기사 중 군계일학은 단연 '친일 넘어 친나치 안익태 애국가 이대로 둘것인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78375.html


어느 대학교수가 안익태의 나치부역에 관한 책을 출간한 모양인데, 매체들이 마치 안익태와 나치 스토리를 처음 발견한 사실이라는듯이 대서특필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론 한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 4 월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 주년을 맞는다. 


작곡가의 나치부역혐의와 함께, 불가리아 민요에서 표절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애국가를 그대로 둘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참으로 만시지탄의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싸르니아는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10 년 전 (정확하게는 9 년 2 개월 전)인 2009 년 11 월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제야 대한민국 공론장에 그 모습을 드러낸 '안익태 나치 스캔들'에 대한 논의가 이성적으로 진행되어 아무쪼록 애국가 교체를 위한 정의로운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단초역할을 하기 바란다. 


아래는 2009 년 올렸던 싸르니아 글의 링크와 전문이다. 그 아래에는 2013 년 올렸던 애국가 표절의혹에 대한 글도 함께 가져왔다.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1891&category=&searchWord=애국가&page=1


2009 년 11 월 어느 날 sarnia


안익태는 친일작곡가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내가 대한민국의 ‘애국가’를 애국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가 친일작곡가여서가 아니다. 그런 진부하고 새삼스러운 사실은 전혀 내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방 후 피치 못해 대한민국에서 살기로 작정한 당대의 지식인 거의 전부가 그 기록을 읽기도 낮 뜨거운 노골적인 부역행위를 했다는데, 그 대한민국의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인물인들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현재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다는 어느 유명한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는 국회답변에서 731 부대를 항일 독립군 부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 때, 그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은 야당의원이 밉살스러운 나머지 엿이나 먹으라는 의도에서 이런 대답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진짜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대답한 모양이다. 텔아비브 국립대학 총장 출신의 이스라엘 총리가 지금까지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지역에서 나치에 저항했던 유대인 비밀 유격부대 캠프인 줄 알았다”는 답변을 했다고 가정하면 아마 이에 필적할 만 한 답변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총리로 앉아있는 이런 나라의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이 친일 전력이 있다는 건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안익태의 친일행위는 그 개인적인 족적에 비추어 볼 때 별로 중요한 활동도 아니다. 그는 미국에서 잠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시민권의 보증을 기반으로 동맹국 나치 독일과 나치의 점령지역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하면서 틈틈이 중국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만주국 축전’을 작곡하고 직접 지휘하는 부업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이 올라간 모양이지만 그의 친일이야 말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충성스럽고 눈물겨운 훌륭한 친일로 보였을 것이다. 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잠시 쉬는 틈을 허비하지 않고 멸사봉공한 틈새 친일이기 때문이다.


안익태의 절친한 후원자이자 스승이기도 한 Richard Strauss 라는 유명한 음악가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눈물깨나 찍어내야 할 만큼 곡절이 많다. 그는 오스카 쉰들러 만큼이나 나치 상층부에 절친한 친구들이 많은 아주 사교적인 인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 학살의 정당성을 문화이론화해서 대중을 설득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괴벨스 박사와 연분이 두터웠다.


Strauss는 당시 Ministry of Propaganda라는 요상한 이름의 부서 장관을 하던 이 궤벨스 선생에 의해 나치의 국립 음악기관 총재 (President of the Reichsmusikkammer, the State Music Bureau)로 발탁되기도 한다. Strauss의 눈물겨운 스토리라는 건 나치 치하에서는 별 소리 없다가 주로 패전 이후에 그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인데, Alice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며느리가 유대인이라 그녀와 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나서서 적극적인 친 나치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다.


30 대 시절 안익태는 궤벨스 박사의 soul brother 이기도 한 눈물의 곡절 Straus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스와스티커 깃발들이 가로로 세로로 장중하게 걸려 있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키스트라와  Grosser Rundfunk-Orchester Berlin (나치의 선전용 관현악단) 에서 신 들린듯이, 미친듯이 유감없이 지휘실력을 발휘했다. 이 때가 1940 년, 이미 5 년 전 선포된 뉘른베르크 인종분리법을 근거로 유대인과 집시 동성애자들에 대한 집단 대학살의 팡파르가 울리던 바로 그 해에 있었던 일이다.


안익태는 1943 년부터 1 년 여 간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1944 년 연합군과 레지스탕스에 의해 파리가 해방되자 강제추방 당한다. 당시 해방된 프랑스의 분위기에서는 나치부역자로 체포즉시 현장에서 사살될 수도 있었는데, 잡아 놓고 보니 동양에서 온 외국인인데다가 나치 신봉자 같지는 않고, 그냥 음악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치 치하든 스탈린 치하든 지휘봉을 흔들어 댈 준비가 돼 있는 골이 빈 재주꾼 정도로 생각을 해서 그냥 석방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니까 확언할 순 없지만 세계인이 다 보는 백과사전에 나온 다음과 같은 쪽 팔린 문장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Ahn found another place to work, the Orchestre de Paris, but he was forced to leave in 1944, when Paris was liberated from the German forces. He was invited by the Spanish ambassador to conduct for the Orquestra Simfonica de Barcelona.


그러고 보니 파리에서 쫓겨나 바르셀로나로 가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운명적 사건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반려자가 될 Talavera Lolita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천재 음악가였을 뿐이다. 어떤 때는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보인 적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지성을 가진 조선인, 그리고 한국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평범한 지성이 감당하기에는 그의 재주가 너무 비범했다는 게 탈이었다. 그뿐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만 그가 그 시대에 그런 활동을 하면서 작곡한 그 곡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윤리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대표하는 ‘애국가’로 삼을 수 있느냐는 게 문제다.


석 달 후면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며칠 시간을 내서 밴쿠버에 갈 계획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역시 미리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날 어느 스케이트 링크에서는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 질 것이고 그 소녀는 또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조금이라도 역사에 관심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의아해하면서 한편으론 착잡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근 거릴지도 모른다.


“금메달을 받은 저 선수의 나라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은 옛날에 제국 일본의 황국신민으로서 서유럽에서 나치에 부역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래”

“그런데 저 선수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의 부역행위가 친일에만 한정된다면 우리끼리 쉬쉬하고 넘어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부역행위는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아주 거창한 것이다.


그는 특별히 나쁜 사람은 결코 아닌데 시대를 잘못 만나고, 그 평범한 인격에 비해 지나치게 비범한 재주를 잘못 타고 난 죄로 우리 모두가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필자 주 : 본문에 나오는 동계올림픽은 2010 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고, 금메달을 받을거라 미리 예측하고 그 모습을 미리 묘사한 소녀는 김연아 선수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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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3 년 올렸던 작곡표절의혹글 링크와 전문입니다.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6144&category=&searchWord=애국가&page=1


당신은 대한민국 애국가를 자랑스럽게 부를 수 있나요?

아마 이 질문에 자신있게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봐요.

어떤 사람들은 애국가불가리아 민요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에서 표절한 곡이기 때문에 애국가로서 자격이 없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작곡가 안익태의 적극적인 친일음악활동을 문제삼기도 해요.

언젠가도 말했지만 안익태의 문제는 표절이나 친일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질이 좋지 않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싸르니아가 2009 년 썼던 글이 있어요. 링크할께요 

도대체 안익태,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안익태는 언제 대한민국 애국가를 작곡했을까요?

두 가지 설이 있어요. 1935 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작곡했다는 설과 1936 년 베를린에서 작곡했다는 설이 그것이예요.

원래는 1936 년 설이 유력했는데 불가리아 음악가 페터 니콜리스가 1964 년 대한민국 애국가를 듣더니 다짜고짜 자기나라 민요에서 베꼈다고 항의를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알리바이를 맟추느라고 새로 만들어 낸 작곡년도가 1935 년 설이에요. 좀 구차하긴 하지만, 안익태가 불가리아를 여행하기 전이니까 불가리아 민요를 몰랐을거라고 변명을 둘러대기 위해서 였겠지요.   

안익태는 1936 년 부터 1944 년까지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 시민권자 신분으로 나치 치하에 있는 유럽 6 개국에서 작곡가와 지휘자로 활약했어요. 나치 선전장관 궤벨스의 후원아래 독일 국립 음악기관 총재 (President of the Reichsmusikkammer, the State Music Bureau)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된 그는 스승인 슈트라우스가 직접 작곡한 대일본제국 축전곡을 지휘하기도 했어요. 이어 일본의 중국침략거점인 위만주국 축전음악을 그가 직접 작곡했는데 안익태의 위만주국 축전음악작곡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축하 전문과 추천장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요.

1942 년 안익태는 일본의 위성국 위만주국 건국 제 10 주년을 맞아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스승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일본축전과 자신이 작곡한 위만주국 축전 연주를 지휘했어요. 홀 안에는 대형 욱일승천기가 걸려있었고, 음악회장 건물에는 스와스티커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어요.

영국과 일부 중립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나치의 첩보기관과 SS 조직에 의해 수 백 만 명의 민간인들이 강제수용소에 끌려들어가 잔혹하게 학살당하고 있던 바로 그 시대, 안익태는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최악의 반인륜 집단의 음악선전조직에 소속된 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던 것 이지요.

가스실에서 집단 학살당한 시체 태우는 검은 연기가 전 유럽대륙의 잿빛 하늘을 뒤덮고 있던 그 시간,,, 
핏빛으로 붉게 물든 욱일승천기와 스와스티카 깃발 아래에서 안익태가 미친듯이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던 장면이 담긴 당시의 영상자료는 독일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2006 년 독일 유학생 송병욱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때부터 안익태가 유럽에서 벌인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음악활동의 전모가 공개되기 시작했어요.

안익태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나치부역 음악활동을 전개했던 프랑스가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기  얼마전인 1944 4 월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도피했어요. 그는 도피행각 중  스페인 여성 Talavera와 열애를 벌인끝에 이 여성과 결혼을 해요.

어떤 자료에는 프랑스에서 추방됐다고 나오는데, 또 다른 자료에는 프랑스에 연합군 부대가 진주하기 전에 스페인으로 간 것으로 나오네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감행된 날짜는 1944 6 6 일이었고 연합군 제 2 기갑사단이 파리에 진주한 날짜는 그 해 8 25 일이었으니까, 4 월에 스페인으로 갔다면 아직 프랑스가 나치 괴뢰정부치하에 있을 때 운 좋게 빠져나간 셈이네요.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일 그때 말이죠..

만일 그 때 안익태가 프랑스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그는 사를르드골 해방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나치부역혐의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을 것이고 일반적인 나치협력자도 아닌 적성국 문화 스파이로 분류되어 중형을 선고받았을 가능성이 커요. 당시 프랑스 드골 정부는 비쉬 친나치정권의 관리나 군인들보다도 언론-문화-예술계통에서 부역행위를 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색출하여 중형으로 처벌하거나 추방했어요.

아마도 그렇게 됐다면 그가 작곡한 노래가 대한민국의 애국가로까지 정착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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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pelin  |  2019-01-1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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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한민국 국가로 만듭시다!!!
17년도에 제가 이곳 게시판에 올렸던 글 입니다.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10035&category=&searchWord=%EC%95%A0%EA%B5%AD%EA%B0%80&page=1

clipboard  |  2019-01-1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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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올리신 그 글에 제가 본문 중 하나를 댓글로 달았었군요.

오늘 어느 분(한국거주 한국인)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교과서에 안익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답니다.
고등학생인 아이가 그 사람 이름 자체를 모른다면서요.

애국가가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혹여 아이가 묻는다면
그냥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하라는 조언을 해 드렸습니다.

이 글을 아이에게 읽게 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그러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이 글은 얼빠진 어른들 보라고 쓴 글이지 아이들 보라고 쓴 글은 아니라고 하면서요..

임정수립 100 주년 전에 새 애국가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 같구요.
새 애국가가 만들어지기전에라도 저 노래가 애국가로 제창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철묵  |  2019-01-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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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지성인들에게는 애국가로 인정받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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