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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4] 왜 교회는 세상이 도전하는 불편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나?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566 작성일 2019-02-02 06:31 조회수 1740

교회 동창회는 과학과 종교가 통합된 우주진화 세계관을 인식하며,

자연과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우주적인 신학과 신앙에 따라 고대 성서를 재해석한다.

* * *

 

고대 사회에서 예언자들은 기존 사회의 종교와 정치에 도전하는 불편한 진리를 선포했다. 역사적 예수도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써 이분법적이고 제도적인 성전종교와 혹독한 탄압과 착취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로마제국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만인평등-만인구원을 외쳤다. 예수는 성공주의에 세뇌되어 안정만을 추구하는 부유층과 인간의 존엄성인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을 박탈당한체 사람답지 못하게 빈곤과 질병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을 향해 새롭고 불편한 진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쳤다. 예수 당시 98% 민중들은 하루에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면 천만다행이었으며, 반면에 2% 부유층들은 98%의 물자와 재산을 독점하고 사치스럽게 살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빈부차이의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예수는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 성전과 제국의 기득권자들과 민중들에게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한다는 불편한 진리를 선포했다. 물론 예수의 불편한 진리는 민중들에게 희망과 밝은 미래의 비전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것때문에 성전의 음모로 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으로 희생되었다. 예수의 생애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하는 종교개혁과 사회개혁이었다. 한마디로 예수는 불편한 진리의 예언자였다. 예수는 거짓과 은폐로 안정을 추구하는 기득권자가 아니라, 불균등과 차별과 탄압과 착취에 항거하여 공정한 분배의 정의와 만인평등이라는 불편한 진리를 선포했다. 따라서 민중들은 예수를 따랐으며, 이것이 원초적인 기독교의 탄생동기가 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불편한 진리를 살아내는 것이다.

 

예수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 (마가복음서 9:30-37)


지구가 생겨난지 45억 년이 되었다. 그 동안 지구는 적정 온도에서 바다의 흐름과 기후의 패턴이 섬세한 균형을 지켜왔다. 그런데 오늘 이 균형이 깨어지고 있다. 엄청난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으며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경고는 미국의 전 부통령 엘고어가 만든 영화 <불편한 진리>(An Inconvenient Truth) 중에 소개된 내용이다.

 

1992년 리우회의에서 보고된 바에 의하면, 20년 동안 지구 상에서 생명체 종자들이 100만 종 이상 멸종되었으며, 매년 3-5만 종 씩 멸종하고 있어, 2030년까지는 200만종이 멸종될 것으로 예상된다. 배기가스로 인한 이산화탄소량의 급속한 증가로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지구의 평균온도가 2도 내지 5도 상승할 것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생태계는 심각한 위험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고어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 인간은 한 생물 종으로써 이 지구상에서 우리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고 있다. 즉 지구와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오늘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황금만능의 가치관 즉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삼는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질문이다.

 

역사적 예수의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란, 다른 모든 인간들과 생명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내자신은 물론 나의 소중한 것들을 다른 생명들을 위해서 희생함으로 모든 생명들이 함께 잘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구 상에 인간답지 못하게 굶주리고 병들고 탄압과 박해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다.   

 

내가 건강함과 부유함을 누리고 있는 것은 축복이라기 보다는 책임이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회는 소위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더 많이 받았거나 덜 받았거나 비교하고, 또한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더 많이 받으면 더 부유하게 잘 산다는 비교급 신앙관을 가르쳐 왔다. 특히 100여 년 전에 미국남부의 보수적인 선교사들이 이 비교급 신앙관을 한국에 가져와서, 지금도 한국교회는 비교급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교회는 복채를 놓고 하느님에게 물질적인 복()을 비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또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음으로써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세상만물을 다스리고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축복했다는 착각과 오만에 빠졌다.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이분법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맹신하고 편협적이고 배타적인 부족신앙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로 인류사회의 극심한 빈부차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암흑 속에서 살고 있으며, 경제성장 최우선 정책은 빈곤율을 높일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하고 이로인한 기후변화로 온갖 질병들과 천연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류와 지구촌이 죽어가고 있다고 경고하는 <불편한 진리> 21세기의 기독교인의 신앙과 삶의 핵심이다.   

 

우리는 불편한 진리의 예언자적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 밖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하느님의 말씀도 아니고 기독교 신앙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지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느님과 나의 깊은 관계의 이야기다. 하느님은 이 광활한 우주 모든 곳에서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느끼고, 듣고, 보고, 인식할 수 있다.

 

복음서들 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서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의 부푼 꿈을 나누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특권을 누리며 하루 세끼 걱정하지 않고 매일 배불리 먹고 살 것을 소원하는 대화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원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 평범한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독점한 부유층들이 하느님이 자신들을 더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비교급 신앙관의 희생자들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란 하느님이 타자로써 외부에 존재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이란 말의 의미는 나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인식과 깨달음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며 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

 

예수는 비교급 신앙관으로 혼돈에 빠진 제자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도 생존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고통스러운 세상이 하느님이 통치하는 살기 좋은 새로운 세상으로 개혁되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도전했다. 예수는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공평하게 떳떳하게 자신있게 살아가는 세상이 하느님 나라라고 가르쳤다. 결국 예수는 높은 직위와 권력과 부귀영화를 꿈꾸는 제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 아이들처럼 연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이웃들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예수처럼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뒤짚어 엎고 평등과 자유와 정의의 하느님 나라 가치관을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오늘날 인습적인 교회에서 과거의 신앙관을 뒤짚어 엎고 새로운 신앙, 새로운 교회, 새로운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며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그러나 불편한 진리가 개인은 물론 교회와 사회와 온 인류의 밝은 미래의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외면해서는 안되는 세상의 불편한 진리들을 열거하자면,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위기, 종교와 과학의 분리, 육체와 영혼의 분리,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분리, 동성애, 성전환, 낙태, 성차별 등이다.  

 

지난 수 백년 동안에 서구사회는 자유시장 경제와 첨단기술의 발달로 물질의 번영을 누려왔다. 항상 경제가 우선이고, 경제가 힘이고, 모든 것의 해답이 경제였다. 그렇게 하다보니 경제를 위해서 자연환경과 인간의 존엄성과 다른 생명들은 어느 정도 희생되어도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해졌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 많은 기독교 교회들은 지구의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는 것과 자신들의 믿음과 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음으로써 지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최후의 심판으로 멸망할 세상이니, 우리는 죽은 후에 저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가면 되고, 이 지구가 멸망하고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잘못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하늘나라는 저 높은 하늘 위 딴 세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하느님의 의미가 살아있는 나라이다.

 

지구의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고, 이 순간에도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집 지구에 존재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리>를 외면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불편한 진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우리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해버리면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예배의식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 예배의 참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예배는 우주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만끽하고, 내면적으로 하느님의 의미를 느끼고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 생명들과 자연과 함께 사랑과 축복을 공유하는 체험을 갖는 것이다.

* 예배는 우리의 집 지구의 모든 생명의 웰빙을 위한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

* 예배는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장벽을 넘어서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이 참된 행복의 하늘나라인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 예배는 다른 인간들과 생명들과 자연을 존중하고 모두가 함께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살도록 돕고

  격려하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과 생태계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연민의 사랑으로 나와 다른 모든 생명들을 사심없이 포용해야 한다는 예수의 메세지는 경제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진심으로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 그의 불편한 진리를 거부할 수 없다. 예수의 불편한 진리를 살아가는 것이 참 신앙이다. 즉 신앙은 무엇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세상에서 들려오는 불편한 진리에 귀를 기울리고 그 진리를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관념적인 신앙과 지구가 평평하다고 고집하는 삼층 세계관의 진부한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렌즈로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삶은 더욱 의미와 보람과 기쁨이 넘치게 되며 이 세상은 모든 인류에게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된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의 꿈이었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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