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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6] 진화적인 신앙과 인성(人性)은 교회와 믿음 보다 더 소중하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598 작성일 2019-02-16 08:09 조회수 1709

교회 동창회는 과학과 종교가 통합된 우주진화 세계관을 인식하며,

자연과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우주적인 신학과 신앙에 따라 고대 성서를 재해석한다.

* * *


고대 종교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미리 설계한대로 세계와 생명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나약하고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하느님 없이 선할 수 없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138억 년 우주진화 이야기를 인식한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완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원초적으로 인간의 조상은 바다의 물고기였으며, 물고기가 진화하여 육상으로 올라와 동물이 되었고, 동물이 진화하여 원시 인간이 출현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물고기의 단순한 뇌에서 유래되어 원시적인 본능의 파충류뇌와 모성애의 본능을 지닌 고포유류와 신포유류의 뇌 그리고 가장 뒤늦게 호모싸피엔스 현생인류의 대뇌 (피질)로 진화했다.

 

인간의 뇌는 과거 어느 시점에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완성품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즉 초자연적인 신이 변하지 않는 영구한 뇌를 창조하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인간이 출현한 이래 끊임없이 진화해왔으며, 미래에 인간 생물종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원초적으로 진화하는 뇌는 인간의 본성이고 정체성이다. 즉 뇌는 인간의 마음-정신-이성-영혼과 분리할 수 없는 본성이다. 인간의 진화적인 본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이며 우주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재의 의미와 생존의 투쟁에 대해 타자의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는 능력과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신앙과 삶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자연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고 정상적이다.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 즉 인성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실제적이고 우주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종교들의 믿음체계들은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현대과학을 무시하거나 부인하고, 사람들을 종교적 권위와 초자연적인 하느님에게 절대 복종시키면서 인간의 본성을 폄하하고 벌레만도 못한 죄인으로 정죄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 덕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은 지((()를 모두 갖춘 전인(全人, Whole Person)을 뜻한다. 인성은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이며, 인간의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잠재력이다. 요즈음 종교계는 물론 사회 일각에서 상실했던 인성을 회복하는 인성교육을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인성교육은 타율적이고 교리적이고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인성교육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와 사회와 세계와 자연과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다시 말해 인성교육은 경계 넘어 우주진화 세계관의 교육이며, 우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을 따로따로 분리하지 않고 공평하게 존중하고 보호하는 통합비전을 갖추는 교육이다.

 

따라서 인성은 교회와 믿음 보다 더 소중하다. 하느님과 교회와 믿음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귀함을 조금이라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신앙과 믿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상업적인 거짓이며, 인류의 밝은 미래에 대단히 위험하고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모든 인간과 생명체와 자연은 성스럽고, 영속적으로 새롭게 진화되어 가고 있는 우주의 법칙을 어떤 종교체계의 신학과 신앙이 변질시키거나 멋대로 왜곡할 수 없다. 또한 이 우주적인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내는 것이 진화적 신앙이며, 오늘 인류사회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진화적인 신앙과 삶이 황금만능주의, 내세주의, 생태계 파괴, 인종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이라는 이분법적 교리로 혼돈과 절망에 빠진 인류사회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에 역사적 예수의 우주적인 정신 즉 우주진화 세계관적 신앙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애원하며...’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겨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내가 그렇게 해주마, 다시 깨끗해지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병은 곧 떠나고 그는 깨끗해졌다.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면서 엄하게 경계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데 대하여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사람들에게 증거를 삼으라하고 말씀하셨다. . .” (마가복음서 1:40-45)

 

한편 삼층 세계관의 종교체계를 180도로 뒤집어 엎는 진화론을 발표한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의 결론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얼클어져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강뚝은 매우 흥미롭다. 새들이 덤불 속에서 지저귀고, 온갖 곤충들과 지렁이들이 기어다니고 있으며, 서로 서로 다른 형태의 생물들이 상호 의존하면서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 주위에 어떤 법칙들이 있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법칙들이란, 새로운 탄생으로의 발전이고, 끊임없는 재창조의 유산이며; 생명들의 환경에 따른 변화이며, 생명이 생존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생명은 자연적으로 생존의 선택을 통하여 변화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거나 소멸한다. 기근과 죽음과 자연과의 투쟁을 통해서 보다 나은 동물들로 변화된다. 태초로부터 창조주의 생기로 여러가지 형태의 생명들이 탄생한 것은 장엄한 일이다. 한편 지구는 중력의 법칙을 따라 순환하면서, 생명은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하여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형태로 변화하며 진화해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윈은 성서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예정론과 창조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과 자연의 출현과 변화는 우주의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선포했다.

 

마가복음서의 나병환자 이야기와 챨스 다윈의 이야기는 일맥상통한다. 하나는 예수가 죽은 후 수 백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예수 정신에 대한 전승을 배경으로하여 1세기 무렵의 성서시대로부터 나온 기록이고, 또 다른 하나는 19세기의 자연과학시대로부터 나온 기록이다. 두 기록 모두 오늘의 많은 종교인들의 사고방식에 도전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다.

 

성서 이야기에서 말하는 문둥병은 발진, 종기, 습진, 피부염 등 다양한 증세를 나타내는 병이다. 예수 당시의 종교와 사회에서 문둥병에 걸리는 원인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징벌을 내린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문등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더로운 낙인이 찍혔다. 즉 이런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내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매우 경계해야 했다. 그리고 사람이 더러워지면 하느님의 기준을 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문둥병에 일단 걸리면 회복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모든 문등병자들은  평생동안 버림받고 살아야 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물론 오늘의 보수적인 교회에서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함과 거룩함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병에 걸리면 부정한 것이고 동시에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예수 시대에 보편적이었으며 종교와 사회를 지배했던 가치관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러한 믿음체제 내지는 가치관에 세뇌되어 잘 길들여지고 단련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도 이 과거의 패러다임은 보수적인 교회기독교의 주요한 믿음이며, 심지어 경제적인 실패와 가난도 하느님의 징벌로 맹신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죄의식에 빠져있다.

 

마가복음서 첫 부분에 예수가 부정한 영 즉 악령에 사로잡힌 소위 부정한 사람들과 대면하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 의학에 익숙하고 이것에 의존하고 사는 21세기의 현대인들은 고대인들의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악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것이 물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다. 물론 아직도 수 천년 전의 고대인들처럼 악령이나 귀신이 분리된 존재로 떠돌아 다닌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것을 믿고 있다.

 

마가복음서의 이야기와 챨스 다윈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읽으면 진화적인 신앙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

(1) 마가복음서 이야기의 초점은, 예수가 나병환자를 치유하는 초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이라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신, 이야기의 초점은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에게 있다.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서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새롭게 깨달아 알게 된 예수의 하느님은 소중한 생명을 부정한 생명으로 멋대로 정죄하여 인간사회로부터 추방하는 그런 옹졸한 하느님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과 모든 생명은 성스럽기 때문에 더러운 환경에 처해있을 때에라도 새롭게 재창조되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데 악한 죽음의 세력들이 이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예수는 못본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주류 과학계는 다윈이 발견한 진화론은 과학적인 진리임을 확신하며 그 정당성과 타당성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진화론은 수 십만 년의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깨달음 중에 하나이다. 다윈이 깨달은 진화론의 기본개념은 모든 생명은 환경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재창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생명은 탄생하면서부터 특별하고 소중하다. 무엇보다도 다윈의 진화론은 현대 유전자 공학과 분자 생물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진화론의 덕분으로 이 두 과학 분야는 인류의 건강문제에 혁신적인 공로를 세웠다. 종교와 과학을 따로 분리시키면 종교인의 신앙은 온전치 못한 반쪽짜리 신앙이 되고 만다. 과학은 종교적 신앙과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챨스 다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그저 다람쥐 채바퀴 돌듯이 현상적인 것에 메어달려서 새로운 것에 대하여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네 자신은 물론 너의 가족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다고 충고했다. 다윈은 1831년에 자연역사와 지질학을 전공으로하여 캠브리지를 졸업했다. 그리고 다윈은 동식물학 대학원 연구생으로 갈라파고스 섬으로 항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동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200년 전에 태어난 챨스 다윈은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인 <종의 기원>이란 책을 150년 전 11 24일에 출간했다. 이 책은 생물들의 진화에 대한 방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생물들은 환경에 따라서 더 나은 형태로 자연스럽게 진화의 과정을 택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세상과 우주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고, 여기에는 뜻밖의 사건들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다윈은 하느님이 이미 세상의 미래에 대하여 예정하고 계획했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뒤집어 엎고, 세상은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추어서 진화하고 있다고 선포했다. 우주 전체는 살아있고 계속해서 변화해 가고 있다. 또한 우주는 끊임없이 생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신앙과 삶도 변화되고 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다. 다만, 지금 우리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서 자연적으로 변화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변화되어서는 안된다고 거부하고 있을 따름이다.

 

변화와 재창조 즉 진화는 우주의 핵심이다. 우주적인 자연적 재창조 즉 생물학적 진화와 더불어 문화적, 사회적 진화가 우주 그 자체이다.

 

종교와 과학의 상호 영향에 대해서 카톨릭 여성해방 신학자인 엘리자베스 존슨은, “종교와 과학의 상호 영향은 종교적 신앙이 세상의 신임을 얻고, 세상의 당면한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참고: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북인더캡, 2013) 종교는 과학과 세상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종교적 생활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과학과 세속적인 세상이 반드시 함께 공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존슨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오늘의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사고가 하느님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 고대나 중세기나 뉴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따르는 하느님이 아니라, 근대의 자연과학과 생물학이 설명하는 생명력이 있고, 새롭게 변화되고, 스스로 진화하는 우주와 연관된 하느님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 . 왕과 군주로서 전지전능해서 초자연적(초능력적)으로 세상의 운명을 미리 예정해 놓고 거기에 따라서 좌지우지 하는 하느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삶은 하나의 모험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참신함과 새로움과 놀라움이 삶을 흥미롭게 한다. 끝없이 앞으로 활짝 열려진 삶을 살아가게 되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삶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삶의 의미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우리의 삶은 새로운 창조의 진화와 이 진화에 대한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득한 모험이다.

 

21세기의 진보적인 신학이 계속해서 사람들을 깨우쳐 주듯이, 하느님, 천국, 성령, 사탄, 마귀 등은 지리적으로 인간의 외부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고대인들의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21세기에 종교인의 신앙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집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즐겁게 의미있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의미있게 산다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이 재창조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나타나는 다양함과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가 깨달은 하느님의 의미는 자연의 법칙, 진화의 법칙, 우주의 법칙,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초자연적(초능력적)인 하느님이 아니다. 더욱이 기독교인들만 사랑하고 구원하는 부족적이고 옹졸한 하느님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교회와 신학과 신앙과 믿음과 예배는 인간의 온전한 삶에 대한 수단과 방식과 표현이며, 사랑과 평화와 정의가 인간과 생명과 자연에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세계의 비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개인적인 내면에서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단체와 사회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 진화하고 있다. 진화는 새로운 창조이다. 진화하고 있는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진화의 과정 중의 일부분이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새롭게 진화하며 성숙해져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것은 우주적인 하느님의 법칙이고, 하느님의 의미이다. 이것은 역행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여정이다. 기독교인들이 참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진화적인 신앙과 삶을 인식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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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9-02-1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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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자연선택과 종의 진화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게 1838년 무렵인데 종의 기원이 발표된 게 1859년11월이니 20년 이상을 동료 학자들과 토론하며 수정 보완 한건데 그 무렵 진화를 주장하는 많은 동물학자 식물학자 지질학자들과 토론을 하면서도 20년 이상 망설인건 당시 종교적 분위기 때문이라고도 하니 종교의 힘이 크기는 큰가 봅니다. 다윈의 용기에 경의를 보냅니다.

늘봄  |  2019-02-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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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세기 동안 진화론은 다윈의 발표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즉 진화는 우주의 문제입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과 종교 문화 철학 정치 경제 등등 가치관과 세계관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합니다. 어느 특정 종교의 믿음과 교리가 변화하지 않은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구린내가 나고 썩어서 죽고 맙니다. 오늘 교회들이 죽어 가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9-02-1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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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연선택으로서의 종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기독교 현황을 보면, 보수교회는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요. 진보교회는 현재 이론상 30년 정도 있으면 모두 소멸할 예정입니다.

그나마 소멸이 안되는 이유는 보수 교회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진보교회로 진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서양인 연합교회에 가서 인터뷰를 해 보면 이렇게 보수 교회에서 이동해 온 종교 이민자들이 많습니다. 만일 이런 종교이민자 또는 이주자들이 없다면 연합교회도 곧 소멸할 것입니다. 어쩌면 진보 교회는 보수교회라는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고 맙니다. 이것은 종교사회학적인 측면이구요.

아주 가까운 예를 들어 볼께요. 예수 세미나의 창시자 로버트 펑크는 근본주의자였고 부흥목사였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초기 기독교 연구가인 버튼 맥 (Burton Mack)은 아주 보수적인 나자렌 교회/교단 목사였습니다. 영지주의 문헌 나그 함마디 문헌 연구의 선구자 제임스 M 로빈슨 ([신에게 솔직이]의 저자 J A T 로빈슨 아님)의 배경은 보수 복음주의였구요. 저 유명한 존 셀비 스퐁도 자신이 철저 근본주의였다고 자서전에서 밝혔구요. 역사적 예수의 연구자 도미닉 크로산은 결혼도 안하고 헌신해야 한 가톨릭 사제 출신이고, 진보 편향적인 종교사를 서술하고 있는 캐런 암스토롱은 가톨릭 수녀 출신이구요. 본인이 자칭 무신론자라고 하는 바트 어만은 무디 성서학교 출신입니다. 지질학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도 삼층 세계관을 가져서 목회에 헌신하겠다고 지질학을 그만두고 목회에 발을 들여 놓으신 최성철 목사도 근본주의자였고, 깨달음의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도 아주 보수적인 안식일 교회 출신이고, 저 역시 아주 보수적인 장로교회 출신입니다.

전에도 밝혔지만, 종교적 스위치를 통해서 진보교회가 그나마 살고 있는 겁니다.

자연선택이란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인데요. 저는 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선택의 과정을 아무리 읽어도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지만요. 최소한 “이야기꾼” (storyteller)로서 인간이라는 species 를 두고 볼 때 , 이야기를 상실한 진보교회는 종교성장의 산실이라기보다는 보수교회의 젖을 먹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또는 숙주를 착취하는 기생충이라 볼 수 있죠. 도킨스 선생의 밈 이론으로 보자면 진보교회는 생존력이 아주 약한 바이러스라고 볼 수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진보교회는 종교라기 보다는 세속과 종교의 세계의 다리를 잇는 경계선입니다.

이런바 유신론 교회에서 자리를 지키며 무신론을 외치는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기생충인 주제에 숙주 역할을 하는 것이죠.

Honest to God 아니라 Honest to No God죠.

어쨌든 도킨스 선생 말씀처럼 바이러스로서의 종교가 소멸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야기 제작자인 인간, 허구(fiction)를 즐기며 사는 인간이 있는 이상 종교의 소멸은 없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즉 신화(myth)를 상실한 종교는 소멸되고 말 겁니다.

어쨌든, 제가 궁금해지는 것은 2050년에 이슬람과 기독교, 힌두교 퍼센트가 세계 역사상 가장 높을 것 같은데, 이런 성장이 멈추고 default 상태에 이르면 어떤 종교가 살아남는가 하는 겁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9-02-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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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비님께서 좋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즉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맥락에서 다윈의 그런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그가 이른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의 원조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다윈은 성격상 상당히 조용하고 사적인 인물이었고 글 쓰는 스타일도 메말라 대중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윈이 산 시대는 바로 대영제국의 영토확장기인 빅토리아 시대였습니다. 지식인들이 진보를 주장했고 진화를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틀로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다윈의 자연선택이나 스펜서 류의 적자생존에 대한 구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풍조를 다윈이 좌지우지 안되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보구요. 그것은 그의 조용한 성격 탓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Jacques Barzun의 [Darwin, Marx, Wagner] (Garden City, New York: Anchor Books, 1958), p. 32 참조하세요. “Likewise to Darwin’s advantage was the fact that he was not in any way a public figure. He had not takes sides on any of the great philosophical, religious, or political issues nor dealt in popular articles and popular lectures. His was consequently a fresh voice, neither academic nor journalistic, a disinterested and pleasingly hesitant, even a confused voice.”

그런데 그와 정반대 인물로서 다원의 사촌인 진화론자 프란시스 갤튼 (Francis Galton)은 다윈과 달리 열렬한 인종적 우생학을 주창한 인물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Bob Boddice의 [The Science of Sympathy: Morality, Evolution, and Victorian Civilization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16) 의 제 6장 “Sympathetic Selection : Eugenics”를 참조하세요. 다윈이 사용한 용어 “sympathy”를 갤튼이 어떻게 남용하고 있는지 보세요.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의 주적(archenemy)은 “종”(spices)이 다른 기독교 근본주의가 아니라 바로 같은 “종”에 속한 사회진화론이라고 저는 보구요.

이런 맥락에서 늘봄님은 이러한 사회진화론과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의 살얼음을 걷고 계십니다. 제가 볼 때 늘봄님은 진화론을 잘 못이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님을 오해했으면 정정해 주시구요. 진화론에 대한 바른 이해는 이론의 축에도 전혀 들지 않은 창조론과 쌈박질하기 보다는 바로 사회진화론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통해서 보석처럼 솟아나지 않을까 보구요.

여기에서 사족을 붙이면 빅토리아 제국주의 시대에 인류학자들이 자행한 인종적 연구는 바로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원죄”(original sin) 땜에 20세기 초 인류학자의 비판을 받아서 진화론적 인류학은 사양길에 접어 들었고 이후에 인류에 대한 구조주의, 기능주의, 구조기능주의가 시대를 풍미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마빈 해리스 (해리스는 최근은 아니지만)를 필두로 파스칼 보이어 (Pascal Boyer)나 스튜어트 가쓰리(Stewart Elliott Guthrie) 등이 나와서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종교사회학에서는 5년 전 작고한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로버트 벨라( Robert N. Bellah)같은 분이 종교의 진화론적 이해에 애를 썼습니다.

philby  |  2019-02-1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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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항해에서 돌아와 수집한 표본들과 자료들을 정리하며 연구와 고민들 거듭할 때 로버트 챔버스가 진화를 주장했고 사회진화론으로 유명해진 허버트 스펜서도 종이 진화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논리정연한 이론을 전개하지는 못했지만.

다윈을 놀라게 한 건 윌리스의 논문이었지요. 인도네시아에서 보내온 윌리스의 논문을 읽은 다윈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정리중인 종의 기원 자연선택과 너무 내용이 비슷했기 때문인데, 윌리스의 논문이 다윈으로 하여금 더이상 연구결과 발표를 미루지 못했던 원인이라고 합니다.
자연선택에 관해서는 윌리스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1800년대 중반에는 진화론이 시대의 트렌드였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enlightenment, 그거 뭐라고 하지요? 아... 계몽사상, 거기에 닿더라구요. 프랑스 혁명도 계몽사상 산물이고.

다른 건 잘 모르고 한국사, 다윈의 진화론, 프랑스 혁명은 끝없이 재미납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책을 읽어도 못 하겠지만 취미로 이런데 관심을 갖게 해준 신에게 감사할뿐 입니다. 하 하. 유럽을 가면 혁명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느라 자연사 박물관을 빼놓는데 꼭 한번 가봐야지요.

내사랑아프리카  |  2019-02-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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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위에 제가 인용한 글 다음에 이런 문장이 이어집니다. “Huxley said that after thirty years of reading the Origin of Species he thought it ‘one of the hardest books to understand thoroughly that I know of.'” 그러니까 헉슬리가 그 정도였으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장식용으로 사 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을 겁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저는 아직 빅토리아 시대를 잘 모르지만,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 조류는 시대에 겹치지만, 19세기는 낭만주의 시대였죠. 이 시대를 모르면, 진화론적 담론이나 기독교 선교의 역사, 낭만주의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낭만주의 시인 셀리 퍼시는 초창기 인물이지만, 그는 천재 중의 천재로서 19세 때인가 “The Necessity of Atheism”이라는 소논문을 가명으로 출판했다가 나중에 발각되어 옥스포드 대학에서 퇴학당했죠. 그는 자기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당시 16세의 소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소녀가 바로 메리 셀리(결혼 전 성은 Godwin)로서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죠. 퍼시 셀리의 부인은 나중에 물에 빠져 자살했고, 셀리 자신도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다가 물에 빠져 익사합니다. 낭만주의자 다운 죽음입니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도 원리 남편 퍼시 셀리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가 나중에 이름을 회복합니다. 셀리 부부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교차점에 있었던 인물로 보입니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낭만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군요.

이런 저런 내용을 담은 영화 “Mary Shelley”는 재밌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WGaZaojFc

이 영화 마지막 자막에 보면, 당시 바이런, 퍼시 셀리 등과 교류하던 작가로선 무명인 “뱀파이어“ 의 작가 John Polidori는 자기 이름으로 이 책이 출판하지 못하였고 나중에 빚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고 하는군요. 이 책이 바이런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거든요. 그러고 보면 선두를 빼앗긴 알프레드 월리스도 무척 씁쓸, 쓸쓸했을 것 같군요.

philby  |  2019-02-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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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어제도 보셨겠지만 교회 다니고 예수 잘 믿어야 물질의 축복 받고 건강의 축복 받고. 교회가 세속적 축복과 성공을 쏟아 붓는 기계가 되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것 같지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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