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기념식에는 약 1 만 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기념식은 11 일 오후 7 시 19 분에 시작했는데 바람이 불고 기온도 낮아 무척 쌀쌀했습니다.
주최측에서는 참석자들에게 핫팩과 담요를 지급했습니다.
저는 독립유공자 유자녀석에 앉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입장할 때 신분증을 조사하는 분에게 제가 여권을 제시하며 "저는 해외동포인데 33 인 중의 한 분인 정암 이종훈 선생의......" 라고 말하자 그 분이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제게 비표를 주시며 "아. 네 저 쪽으로 들어가시지요." 라며 내빈석 바리케이드 안 쪽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하려했던 말의 끝부분, 즉 "... 이종훈 선생의 증손주 며느리 사촌동생입니다" 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한 채 그냥 내빈석으로 들어가게 된 것 입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가 끝나고 공연이 진행될 무렵,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면서 참석자들의 관심이 불꽃놀이에 집중되었던 그 시점에 갑자기 후다다닥하며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재빠른 움직임의 주인공들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어느 VIP의 경호원들과 수행원들이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누군가가 행사가 끝나기 전에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누구일까를 알아내기 위해 저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역시 VIP 통로와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제너시스 리무진 세 대가 시동을 걸어놓은 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 째 차량은 경찰차량처럼 빨간색과 파란색이 교대로 번쩍이는 경광등을 켜고 있었고
그 차량 뒤에서는 교통경찰들이 다른 차량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기자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뜻밖에도 문희상 국회의장이었습니다.
국회의장은 국가의전서열 2 위입니다.
다시말해 대통령이 국내에 없었던 이 날,
국가를 대표하여 이 행사에서 내외빈을 영접하고 기념식을 주관해야 할 호스트인 셉입니다.
고령의 독립유공자들과 외빈을 포함한 1 만 여 명의 시민들이 추위에 덜덜 떨어대며 행사장을 지키고 있는데,
사실상의 호스트가 행사가 끝나기 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입니다.
다른 행사도 아닌 대한민국 임정수립 100 주년 기념식인데 말이죠.
그것도 '대한민국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대통령이 그 날 나라를 떠나 있어야 했던, 가뜩이나 심란한 그 날,
사실상의 호스트가 겨우 20 여 분 남은 행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미리 떠나야 할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 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신 분들
추운 날씨에 밤늦게까지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