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는 배낭여행자들이 많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에드먼튼에서 함께 출발한 그 백인 여자애들도 밴쿠버에서 서울인천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나와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 중 한 명은 옷차림이 집시여인 스타일이었는데, 나중에 나에게 재미있는 정보 하나를 알려주었다.
서울 다운타운에 2 천 원 짜리 해장국 맛집이 있다는 정보였다.
궁금해서 그가 보여주는 구글맵을 들여다보니
종로 3 가 할아버지 동네였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실망감이 일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새를 잡아 선물로 가져 온 야옹이를 바라보듯 인자한 표정을 하며 '좋은 정보를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에드먼튼에서 원래 출발하기로 했던 비행기가 카고도어가 닫히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운항이 취소됐다.
33 년 비행경험 중 비행기가 연발한 적은 간혹 있었어도, 운항이 취소되어 탑승했던 비행기에서 도로 내리기는 처음이었다.
지난 4 월 2 일 오전 7 시 45 분 에드먼튼 출발 밴쿠버로 가는 AC 237 편이었다.
에어캐나다측은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연결편 인터벌이 짧은 국제선 환승승객들에게 새 탑승권을 우선 발권해 주었다.
밴쿠버 시각 오전 10 시 50 분에 출발하는 서울인천행 63 편과 오전 11 시에 출발하는 타이베이행 17 편이 새 탑승권 우선발권 대상인 것 같았다.
밴쿠버에서 서울인천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환승 승객은 20 명이 넘었다.
내 이름이 세 번 째로 호명되었다.
내가 그렇게 빨리 호명된 이유는 서울인천이 최종목적지가 아닌 하노이가 최종목적지인 최장거리 환승승객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으로 가는 환승승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2 시간 후 출발하는 다음 비행기 AC 239 편에 좌석을 배정받아 출발할 수 있었다.
새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아있는데 복도 맞은 편에 앉아있던 집시여인 차림의 백인여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도 서울 가세요?"
"서울 가긴 가는데, 나는 거기서 다시 비행기 갈아타고 하노이로 가요"
"우리는 서울에 가요. 우리 밴쿠버 공항에서 뛰어야 해요."
"그럼 같이 뛰어요. 그런데 안 뛰어도 될 거예요. 비행기가 기다려 줄테니까"
우리 비행기는 서울인천행 비행기 출발 예정시간을 불과 40 분 앞두고 밴쿠버 공항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국제선 환승승객들이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승무원들의 부탁에 다른 승객들은 잠자코 따라주었다.
에어플레인모드를 해제하자 에어캐나다측이 탑승객들에게 보낸 텍스트가 도착했다.
서울인천행 AC 63 편 츨발시간이 15 분 늦추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탑승구 문이 열리자마자 승객들은 정말 뛰기 시작했다.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신사복 아저씨도 뛰었고, 집시여인을 비롯한 백인 여자애들도 뛰었다.
약 두 시간 후 서울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 때문에 식판들고 자리 옮겨다니다가 기내망신을 당할 예정인 그 지인도 함께 뛰었다.
결국은 나도 뛰어갔는데, 얼핏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만 타면 뭐 하냐고.. 짐이 함께 가야지'
밴쿠버 국제공항 국내선-국제선 환승통로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환승할 때 별도의 보안검색이나 출국심사는 받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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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
숙소 근처 경의선숲길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태국식당에서 볶음밥과 뜸양꿍을 먹다가
문득 그 집시여인이 나에게 주고 간 그 2 천 원 짜리 맛집정보가 떠 올랐다.
교보에 갈 일이 있어서 광화문통에 나왔을 때, 망설이다 결국 그 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그 식당은 옛날 허리우드 극장 건물 아래 악기상가 골목에 있었다.
안국동 토박이인 나는 북촌은 물론이고 교동 남쪽 낙원상가 일대까지 훤하게 꿰고 있지만 이 식당은 처음 봤다.
가격은 정말 2 천 원 이었다.
예상외로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할아버지들 동네인 줄 알았는데, 손님들의 연령대는 다양한 것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 이 식당을 나에게 소개해 준 집시여인과 백인 여자애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님 중에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비록 가격은 수상할지라도,
점심시간이 아직 아닌데도 손님이 많은 광경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맛이 없으면 대부분의 경우 손님들이 두 번 다시 찾지 않는다.
60 년 세월 내내 저렇게 손님들이 바글거렸다면, 일단 시식을 해 보아도 무방할 것 같았다.
두부가 두 조각 들어가 있었고 시래기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고기는 없었지만 적당히 간이 배고 매콤한 국물은 제법 시원했다.
가격만 저렴한 엉터리 국밥이 아니었다.
숙소와 거리만 가깝다면 다시 방문해도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기왕에 종로에 왔다면, 이 집을 빼 놓고 지나갈 수 없다.
아침일찍부터 문을 여는 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이른 아침 일곱 시에도 줄을 서야한다.
이 시간 손님들 중에는 근무교대를 하는 경찰관들이 많은 것 같았다.
자리가 많지 않아 합석하는 구조이므로 혼자가도 상관없다.
30 분 이상 줄서서 기다릴 게 아니라면 점심시간은 피하는 게 좋다.
예전에는 종로 생선구이 골목이 피맛골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대부분 동대문시장 근처로 이전했고, 그 중 일부는 관수동에 남아있다.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근처에만 가면 냄새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중심 종각 네 거리에서
반외세투쟁의 대명사 전봉준 선생과
영국계 다국적 거대금융자본 스탠다드차타드 파이낸셜 코퍼레이션이 서로 마주보며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
근데 이 좌상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다. 전에 본 기억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