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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21] 외부적 하느님이 죽었는데 누구에게 기도하나?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934 작성일 2019-05-30 17:58 조회수 1539

오늘날 현대인들은 비행기와 우주선을 타고 비신비화된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우주의 역사가 138억 년인 것과 우리의 우주는 수천억 개의 은하계와 각 은하계는 수천억 개의 별들로 구성된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집 지구는 45억 년 전에 출현했고, 인간 생물종은 260만 년 전에 출현했으며 장구한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의 이성적인 인간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하느님이 우주와 생명들을 완성품으로 창조한 초자연적인 천상적 존재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세계관은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초자연적인 경이와 기적과 주술을 상상하던 삼층 세계관으로부터 지식과 정보와 과학적인 설명이라는 우주진화 세계관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기도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하느님은 외부적 존재로서 사람들이 하느님에게 헌금과 기도를 바치면 이 신적인 존재가 인간 역사 속에 개입하여 간섭하고 바꾸는 일을 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21세기에 전통적인 하느님 개념과 신앙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과거에 알고 있었던 하느님과 계속해서 흥정을 시도하고 있으며, 또한 기도에 대해 이해하기를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목록을 보내는 정도로 생각한다.

 

하늘 위, 이 세계 밖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죽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고민에 빠져있다. 또한 이 질문은 유신론적 하느님 개념에 세뇌된 기독교인들이 더 이상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보호와 안전보장에 대한 설득력과 효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비유신론적 하느님 개념에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할 때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감독하고 통제하고 조종하던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이 세계 밖에 존재한다는 믿음에 식상하고 지쳐서 유신론적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제 교회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기도와 예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인생의 여정에서 고통과 절망과 불행한 일이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때마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기적2000년 전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불치병과의 싸움에서 승리자는 하느님이 아니었다. 오히려 승리자는 도덕과는 상관없이 선악을 모르며, 유신론자와 불신론자의 다름을 모르며, 신학적으로 중립적이며, 인종을 넘으며, 신앙과 믿음과는 상관없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암세포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자연적인 진행과정이었다. 간혹 신문지상에 희귀병이 치유됬다는 기사가 보인다. 의사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기도로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일으킨 기적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21세기의 현대의학에 따르면 질병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의 원인은 하느님이 아니라 암세포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주요 원인이다. 인간의 죽음은 하느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론적 기독교인들은 기도로 생명과 삶의 심층적인 의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태도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한다. 기독교인들이 기도 후에 모든 결과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무조건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는 지독하게 온당치 못한 후퇴의 자세는 유신론적 믿음체계의 강압적인 요구에 세뇌된 망상이다.

 

유신론이 도전을 받지 않고 하느님이 우리의 삶 외부에 있는 존재로 이해될 때, 기도는 당연히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저 세상적인 하느님에게 집중하는 행동이 된다. 예를 들자면, 하느님을 분주한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정적 속으로 물러나는 피정(quiet days), 하느님은 거룩한 곳에만 있다고 믿어서 평범한 일상생활을 떠나 소위 거룩한 장소를 찾아가는 순례(pilgrimage), 그리고 거룩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세속적인 세상을 떠나는 산기도 또는 퇴수회(수련회 retreat) 등의 유신론적 활동이 여전히 효과가 있는듯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이것들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다고 규정한다.

 

기도도피가 아니다. 기도하는 일은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호의존관계를 이루어 생명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 기도는 의식적으로 생명의 깊이와 사심없는 사랑을 확장하는 일이다.

* 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창조적이고 자율적이어서 온전한 삶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 기도는 인간의 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기도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며 기회가 균등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떠한 모양의 차별과 탄압과 착취도 허용하지 않으며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취한다.  

* 기도는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위기와 절망과 고통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런 상황들 앞에서 위축되기 보다 용기와 희망을 갖고 그 상황들을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다.  

* 기도는 나의 삶은 100% 나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기도는 인생의 연약함을 포용하는 능력이며, 심지어 우리가 그 희생자가 되더라도 인생을 새롭게 개혁하려는 능력이다.

* 기도는 인간의 존엄성인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과 가능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늘 위에 존재하는 하느님이 이 세계 일에 개입하도록 하늘 문을 두드리는 기도를 중단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는 말로 시작하는 기도를 중단할 때가 되었다. 이 세계 밖에서 이 세계를 굽어보며 소위 하느님의 뜻을 세상 일에 각인시키기 위해 개입할 기회를 엿보는 초자연적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는 이런 하느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기도의 주체는 인간이며, 기도의 시작과 끝이 인생이다. 기도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사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

 

기도마술이 아니다. 기도의 능력이란 말은 상업적인 속임수이다. 기도자의 기도로 부자가 되고 불치병이 낫는 일은 없다. 기도는 안전함의 보장도 없다. 기도가 미리 사고를 막지 않는다. 우리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우리를 받쳐줄 팔이 없다. 산불이 나면 비를 불러오지 않는다. 다만 기도는 얕은 층의 삶을 심층으로, 닫혔던 삶을 개방적으로, 도피했던 삶을 관계론적으로, 이기적이고 사심에 찬 삶을 자비롭고 조건없는 삶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비겁함에서 담대함으로, 원한에서 용서로, 차별에서 포용으로, 불의에서 정의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부르는 새로운 삶의 요청이 있을 따름이다.   

 

인간들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 즉 질병과 사고와 실패는 하느님의 징벌이 아니다. 이런 불행한 일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사고와 재해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불행한 일들은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실존의 실상들이다. 이런 일들의 원인과 결과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유신론적 하느님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깨달음을 위해 불행한 일들을 계획하고, 인간의 인내를 키우려고 불행한 일들을 계획하는 몰상식하고 괴상망측한 하느님은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하느님은 인간이 상업적으로 정치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유신론과 유신론적 하느님의 죽음과 함께 인간은 기도를 멈추어야 할 것인가? 원초적으로 기도라는 말이 유신론적 개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 유신론의 죽음으로 기도라는 말이 설득력을 잃고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유신론적 기도 없이도 참된 인간,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138억 년 동안 무신론적 우주진화의 여정에서 살아왔다. 인간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개체들 중에 하나이며, 인간 만이 홀로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은 다른 개체들과 함께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최고선(最高善)은 존재론적 생존이 아니라 관계론적 공존이다. 즉 인간의 삶은 어떤 보상을 전제로하는 이기적인 것이기 보다 서로의 존재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명을 향상시키고, 모든 사람의 내면에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확장시켜 주는 것이 된다.

 

인간이 애걸복걸하면서 좀 도와 달라고 기도해야만  이 세계 밖에서 인간 세계로 침입해 들어와 기적을 일으키는 그런 하느님은 더 이상 필요없다. 우리가 기도해야만 움직이는 외부적인 하느님은 필요없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포용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생명이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용감하게 참된 인간이 되도록 격려해주는 생명의 깊이(the depth of life)가 우리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따라서 각 사람과 공동체에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는 것이 기도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기도는 외부의 하느님을 움직여 우리의 뜻을 행하도록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은 어느 하나도 분리시킬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홀로 병들어 고통당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홀로 죽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우리 각자를 생명의 가장 깊은 의미를 서로 주고받는 사람이 되게 하는 활동이다.

 

유신론적 하느님은 죽었다. 이제 새로운 의미의 기도는 인생을 사는 일, 사랑하는 일, 나의 관계론적인 삶 즉 나의 존재와 나의 만남과 나에게 주어진 일들과 정의를 위한 투쟁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개혁자로써 살아가는 것이 기도이다. 이 기도는 외부에 있는 타자적인 하느님에게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요청이다. 기도는 더 이상 유신론적 하느님의 마음을 기도자의 뜻으로 바꾸고 조종하려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의 주체는 기도자이다. 원인과 결과도 기도자의 책임이다. 기도자는 자신이 기도제목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도는 나의 관계론적인 삶의 방식,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방식, 인간의 차별을 추방하는 방식, 경계를 넘어서는 방식이다.

 

무신론적 기도는 더 이상 하느님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과 결과라는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기도들이 산불지역의 바람의 방향을 바꾼다거나, 질병의 진행을 바꾼다거나,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기적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기도는 하느님의 개입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자가 하느님이 되는 것 즉 기도자의 삶에서 하느님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과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참된 인간성이 향상되고,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탄압받고 억눌리기 보다는 더욱 자유롭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받고 서로 나눌 수 있고, 사람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일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외부의 타자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즉 자신을 격려하고 일깨우고 새로운 생명과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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