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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34] 교회가 부정직하게 팔아먹는 구원을 얻으려고 아직도 교회를 찾아 다니세요?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2250 작성일 2019-08-29 10:01 조회수 1637

유신론적 교회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황제의 명령에 따라 심한 논쟁 속에서 니케아 신조를 만들었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역사적 예수의 현세적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저버리고, 가롯유다처럼 예수를 배반하고 권력과 부에 대한 탐욕으로 내세적인 구원을 값싸게 팔아먹었다. 즉 구원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고, 예수의 신성과 문자적인 성서를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심층적인 구원의 의미는 표층적이고 가식적인 말장난으로 전락했다.

 

전통적인 교회기독교의 이분법적이고 내세적인 구원론은 지난 1700년 동안 인류사회의 인종차별과 종교차별과 생태계 파괴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오늘도 내세적인 구원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핵심이다. 그들의 구원개념에는 멸망할 이 세계최후의 심판과 죽은 후 이주해갈 내세다른 세계를 전제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말하는 멸망할 이 세계와 내세적 다른 세계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대단히 모호하다. 다시 말해, 멸망할 세계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인지 아니면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 또는 은하계 또는 우주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그들이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멸망할 이 세계138억 년 전 우연히 자연적으로 등장한 우주세계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발견한 우주의 실태는 간단히 말해서 시작과 끝이 없으며, 위와 아래가 없으며, 또한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즉 우주세계는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는 한 몸이다. 더욱이 이 우주세계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내세적 다른 세계를 분리하는 경계선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호하다. 우리의 집 지구가 속해있는 우주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별들의 숫자는 대략 이렇다. 우주에는 최소 2000억 개에서 최대 2조 개의 은하계, 그리고 한 은하계에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우주에는 최소로 잡으면 2000억 곱하기 1000억 개, 최대로 잡으면 2조 곱하기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또한 이 우주는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 우주 이외에 또다른 우주들이 있다고 말한다. 성서를 기록한 삼층 세계관의 고대인들은 이 우주세계의 규모와 장구한 진화역사에 대해 상상도 못했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이 세계를 마치 돔모양의 실내경기장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돔 밖을 하느님이 존재하는 다른 세계로 생각하고, 현세 내세를 분리했다. 그러나 우주진화 세계관의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지식 경험으로 우주전체는 하나의 생명의 망으로 상호의존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 세계과 저 세계를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인간의 육체 안에 영원한 존재 즉 영혼이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다는 고대의 이원론을 맹신하는 것은 무지함과 무식함의 소치이다. 따라서 육체의 현세영혼의 내세로 분리하는 종교와 믿음은 망상이다. 더욱이 죽은 후 다른 세계에서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은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발상이다. 죽은 후에 육체 안에 있던 영혼이 인간의 원죄로부터 해방되어 육체를 떠나 하늘 위에 영원한 천국 즉 내세에 들어간다는 이원론적 내세의 구원에는 두 가지 통념이 관련되어 있다: (1) 첫째로, 구원을 위해서는 믿음체계가 만든 교리적인 필수조건사항들을 지켜야 한다. 아마도 최후심판 때에 양과 염소 또는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영원히 갈라놓을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한다. (2)둘째로, 죽어서 하늘 저 밖의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으로서의 구원은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고, 교회에 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대해 예수의 신성을 믿고, 교회에 나가면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죽은 후 내세가 이 광대한 우주에서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이 마음의 상상 속에서 그림을 그린 것뿐이다. 믿음체계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통제하기 위해 상업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든 구원의 교리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암송하는 믿음으로 내세에 대한 무지의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 즉 어떤 것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이 설명하는 내세를 문자적으로 읽으면서 대단히 실재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믿는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뿐만 아니라 모든 성서의 저자들은 당시의 자신들의 환경 속에서 세상과 하느님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체험들을 신앙고백 형식으로 은유적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은유적인 기록을 문자적으로 읽는다면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의 진실한 체험은 영원히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생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교회는 니케아 신조가 만들어진 이래 지난 1700년 동안 기독교인들만 천국에 올라가고 나머지 다른 비기독교인들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거짓된 이분법적 구원론을 신도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시켰다. 그러나 지난 수세기 동안 믿음체계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가족들과 이웃들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지구촌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평생동안에 교회에 가본적이 없으며, 성서를 읽어본적도 없으며, 기독교에 대해 한 번도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는데, 단순히 기독교에 대해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기독교 메시지가 제대로 잘 전달되지 않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비기독교인이 자신의 종교전통에 깊이 만족하고 있다는 것때문에, 기독교의 하느님이 그 수 많은 비기독교인들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이고 공정한 일인가? 이런 하느님은 어떤 명분에서라도 부족적이고 편협적이고 옹졸한 하느님이기 때문에 온 인류에게 적용할 수 없다. 이런 유신론적 하느님은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폭군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신뢰를 잃고 무용지물이 되었다.

 

또한 기독교 전통 안에는 내세에 대해 복잡하고 다양한 신념들이 있다. 따라서 내세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선명하고 솔직하게 답할 수 있는 표준적인 기독교 입장이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내세는 죽는 순간부터 시작되는가? 아니면 이 세계의 종말과 함께 최후의 심판 때부터인가? 기독교인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믿어왔다. 기독교 발생 후 대략 처음 천 년 동안 기독교의 지배적인 신념은 죽은 사람은 최후 심판 때까지만 죽은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중세 초기에 이 신념은, 심판은 죽음 직후 개인별로 일어난다는 신념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교회는 멋대로 하느님의 구원의 일정과 계획을 창작하고, 신도들에게 강제로 주입시켰다. 또 다른 질문은, 내세는 단지 천당과 지옥만을 포함하는가, 아니면 연옥의 가능성도 있는가? 연옥은 천국이 극소수에 제한되는 것을 막기위해, 즉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교회에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부수적인 구원의 장치이다. 교회 전통은 기독교인들이 연옥을 믿어야 하는지,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이 세계에서의 삶과 다른 세계에서의 삶 사이에는 어떠한 연속성이 있는가? 다른 세계에서 어떤 육체를 갖게 되나? 이 세계에서의 관계들은 지속되는가? 사람들은 서로를 다시 보게 될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대중적 기독교 언어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암시를 주고 있는데, 특별히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죽어가고 있거나,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위안으로서 그러한 암시를 주고 있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기록들은 양자 사이에는 연속성보다는 불연속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즉 내세를 믿지 않았던 기독교의 모체인 유대교의 관료집단 사두개파 사람들과 예수 사이의 대화에서 볼 수 있다. 내세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이들은 일곱 형제와 차례로 결혼한 한 여인에 관해 예수에게 이야기하면서, 부활을 하게 되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저 세상에서의 삶 사이에 중요한 불연속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내세에는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마가복음 12:18-27)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결혼도 성별도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보다 넓은 의미에서, 내세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이렇게 혹은 저렇게 믿기로 한다 해도 그것은 내세의 실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문제를 무작정 믿거나 적당히 믿는 것으로써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난 138억 년 우주진화 역사에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었으며, 죽음 없이 새로운 생명체와 세계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죽음은 저주도 징벌도 아니며, 죽음은 우주의 법칙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난다. 이 우주에서 별들의 죽음과 지구에서 생명체의 죽음 없이 새로운 별과 생명의 탄생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소위 믿음체계가 주장하는 죽음 후에 내세는 없다. 21세기에 내세는 무지함과 거짓된 말이다.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다. 다시 말해 현세와 분리된 다른 세계는 없다. 영원함은 지금 여기에 순간순간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사는 길은 내세지향적이기 보다 현세적인 삶을 만족스럽게 의미있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가 가르친 기독교인의 참된 신앙이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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