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의 엄마라는 막연한 죄책감에 갇혀 있던 제가 삶의 희망을 얻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이은경 씨(39)는 가족과 함께 올 3월 캐나다로 떠났다.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둘째 아이(10)의 교육을 위해서다. 아이는 특수학급(도움반)이 없는 일반학교에 다녔는데, 좀처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캐나다를 택한 건 교육 환경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7개월이 흐른 지금 이 씨는 “학교에서 늘 좌절을 겪던 둘째 아이가 달라졌어요. 우리 가족도 장애가 마냥 우울해할 일도 아니고 그 누구의 죄도 아니란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 선진국에 살아보니
이 씨는 한국 장애인 교육의 현실에 대해 “모든 학교에 도움반이 설치돼 있지 않은 데다 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개별 지도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보조 교사 수급도 현실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장애인 천국’으로 불리는 캐나다는 어땠을까. 이 씨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한 팀이 별도로 운영된다. 아이와의 면담, 설문을 통해 학습, 심리, 정서, 사회성 등 각 분야에 걸쳐 종합적인 검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수준을 파악해 맞춤형 교육 과정을 만든다. 이 씨는 “교육청 차원에서 교육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제안도 받았다”며 “경제적 부담 없이 양질의 장애 교육을 누리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도 차이가 컸다. 이 씨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하루에도 수차례 접한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테이블이 3개 있는 카페라면 그중 하나는 반드시 장애인 전용석이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따로 배정돼 있고, 장애 학생만을 위한 등하교 셔틀도 운영한다.
물론 장애 교육 선진국이라 해도 미흡한 점은 있다. 이 씨의 둘째 아이는 처음에는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언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을 학기부턴 홈 스쿨링을 하고 있다. 행정 처리가 다소 늦은 것도 단점이다. 이 씨는 “장기 유학, 이민 등의 계획이 있다면 현지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 씨 가족은 만 1년의 현지 생활을 마치면 귀국할 계획이다.
● “장애인 차별은 범죄다”
한국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인권이나 차별 금지에 대한 일반인의 의식 수준은 낮은 편이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2019년 현재 13.9%에 불과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이런 의식 수준은 그대로 나타난다. 지역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현상이 적잖게 발생한다. 사실 서울나래학교가 개교할 수 있었던 건 행운에 가까웠다. 주변 지역에 거주민이 적었기 때문에 행정예고 3년 만에 개교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다.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의 경우 2013년 건립 계획을 세웠지만 지역 주민의 민원 때문에 개교가 연기된 상태다. 건립 계획을 2012년 세운 서울 중랑구 동진학교는 이보다 더 심해 아직 학교 터도 정하지 못했다.
취재팀이 이런 국내 상황을 장애 교육 선진국의 교육 당국자들에게 들려주고 소감을 물었다. 그들은 대부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장애를 문제로 교육 시설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핀란드 국립교육연구소 교육카운슬러 리야 팜크비스트 씨는 “극히 소수의 학부모가 장애 시설을 반대하거나 장애인에게 교육투자를 너무 많이 한다고 불만을 표시할 때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장애 차별을 반대하는 공감대가 커서 장애 시설을 반대하는 부모가 머쓱해질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와 비장애 아동을 어릴 때부터 같은 공간에서 학습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프랑스 장애아동특수교육 국립연구원(INSHEA)의 자크 미쿠로빅 원장은 “프랑스는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는 ‘포용교육’을 목표로 한다. 포용교육이란 장애 아동들도 장애 정도에 맞춰 최대한 가능한 범위에서 비장애 아동과 함께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대목은 유치원에서부터 장애와 비장애 차별이 없는 교육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윤모 씨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장애인과 다른 인종에 대해 편견이 있었는데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그런 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팜크비스트 씨는 “아이들은 장애를 문제로 차별하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어른들의 편견일 뿐이다”라며 “그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일상에서부터 통합 교육 필요
어렸을 때부터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통합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선진국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국내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초중고교 일반 학교에 특수교사를 파견해 일반 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며 장애아동을 도와주는 ‘정다운 학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정다운 학교는 전국에 74곳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교실에서 배우도록 하는 통합교육 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2019년 현재 특수교육대상자 9만2958명 가운데 71.6%(6만6499명) 정도만 일반학교에 다니며 통합교육을 받을 뿐이다. 선진국에서는 극히 중증 장애인을 제외하곤 원칙적으로 통합교육만 받도록 하고 있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도 한국은 대상자의 70~80%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일상적으로 통합 노력이 이뤄진다. 프랑스 파리 장조레스 초등학교에서 일반학급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 쥘리에트 안 씨는 “정신 장애 아이들도 적응기를 거치면 어려운 프랑스어 과목 등을 제외한 체육, 미술 수업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애·비장애 학생이 함께 교육을 받는 게 필요하며 실제로 이렇게 했을 때 비장애 학생들이 장애 학생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교육청 통합트레이닝 담당자 엘리 호 씨는 “미국이라고 장애 차별 문제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장애와 비장애 통합교육은 인권 및 사회적 정의와 관련돼 있다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에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미국 교육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 장애 학생의 94.7%가 일반 학급에서 교육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