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 두 번 씩은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사실 이 영화는 볼 생각을 안 했는데,
지난 10 월 18 일 개봉한 이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집에서 불과 5 분 거리에 있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서,
싸르니아는 어젯밤 2 개월만에 극장에 행차하게 되었다.
극장은 주로 평일 이른 저녁에 가곤 했는데,
눈보라가 휘날리는 금요일 오밤중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개봉한 지 3 주가 지난 영화인데도 상영관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한국영화를 보러 가면 대개 한국사람들이 태반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달랐다.
영어권 사람들은 보통 영어로 더빙된 영화가 아니면 잘 안 보는데,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영어권 관객들이었다.
관객들 중에는 한국계 2, 3 세로 보이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온 경우도 간간히 보였다.
내 나이또래의 동포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긴 눈보라치는 오밤중에 영화보러 싸돌아다니는 어르신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안녕, 어르신 친구 o/ 나도 맥카페에서는 어르신이야 ^^
영화는 스토리전개가 빠르고 명확한 편이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근데 송강호 부인이 짜빠구리를 끓일 무렵부터 필름이 슬슬 끊어지더니 그 이후 스토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뒷자리에 앉은 어떤 여자관객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내가 놀라서 깨어나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을 다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 자막에는 초반에 pretend (~척하다) 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포스터 문구에는 act like you own the place 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the place 는 단지 그 집만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기생충 가족이 획득한 모든 가짜신분, 희망하는 가짜계급까지가 포함된다.
그래서 the property 라고 하지 않고 the place 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영화의 일부분을 조느라고 놓쳤기에 여기서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 같은 것을 늘어놓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를 꼼꼼히 다 보았다고 스스로 믿고 감상평을 딱 한 부분만 내놓자면 다음과 같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첫 개봉했을 무렵, 그러니까 약 몇 달 전,
넘을 수 없는 계급의 장벽을 주제로 하면서도 선악구분을 하지 않았다는 평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보다 했는데, 영화를 보고난 지금 내 생각이 달라졌다.
선악을 구분해 놓치 않은 게 아니라, 선악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슬쩍 거꾸로 바꾸어 놓았다는 게 내 느낌이다.
그는 주연 기생충과 지하실의 조연 기생충의 입을 통해
영화의 진심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부자는 착하다"
"Respect!!"
부자는 비윤리적 착취계급이라는 관념의 틀에만 갇혀있으면 이 말들이 부자에 대한 조롱으로만 들릴지 모르지만,
자본주의 가치가 뼈속 깊숙이 철저하게 박혀있는 대부분의 북미관객들에게는 이 말이 취중진담처럼 들릴 것이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영화에서 보여 주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동 역시 그러하다.
사기와 거짓말, 무례와 욕설, 상호 뒤통수 까기, 폭력과 살인은 모두 가난한 자들의 전유물이다.
반면 부자는 약간의 위선과 경계심만 드러내 보일 뿐이다.
트럼프에 학을 뗀 북미관객들에게는 위선도 예절의 일종인만큼 위선에 대한 거부감 별로 없다.
오히려 '위선'은 '무식'의 반대말로서 '배려'의 동의어 비슷한 말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봉준호 감독은,
예를들면, 사회경제적 상류계급 10 퍼센트와 사회경제적 하류계급 10 퍼센트를 표본집단으로 하여 종합적 인성검사(지능, 책임감, 인내심, 근면성 등등)를 하면 아마도 상류계급 표본집단 10 퍼센트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검사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이런 류의 불편하면서도 그 표현이 터부시되어왔던 진실의 가려진 이면들을 까발기는 취미를 가진 감독인 것 같다.
불편한 진실들은 새삼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폭로될 때,
개인의 인성과 능력자체가 우선시되는 문화권에서는 충격이 덜하지만,
집단과 소속의 등급이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인성과 능력을 override 하고 선규정하는 사회에서라면 심각하게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잔혹하고 위험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개연성없이 과도할 정도로 폭력적이어서도 아니고,
계급의 장벽은 재산 지위같은 물질적 장벽이든 냄새(품격)같은 문화적 장벽이든 결국 넘사벽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겨서도 아닐 것이다.
어차피 블랙코미디인데 개연성이 없다고 불편해야 할 이유가 없고
계급의 장벽은 넘사벽이라는 평균적 진실을 담은 영화는 차고도 넘칠텐데 이 영화가 새삼 불편할 이유도 없다.
자학적이어서 불편하다는 평도 있는데 위에 열거한 이유보다는 사실에 근접해 있다.
근데 진짜 이유는 이거 같다.
부자들은 대개 착하고 부지런하며 가난한 자들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비열하다고 메시지를 은연중 날리고 있으니 불편할 수 밖에.
간혹,, 물질적 계급의 장벽은 어쩌다 재수가 좋거나 사다리를 잘 타서 넘을 수 있다 하더라도,
냄새, 즉 품격의 장벽만큼은 죽을때까지 부술 수 없다는 염장질은 많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을지도 모른다.
내가 비록 상영도중에 코까지 골며 자다가 깨어나긴 했지만, 영화를 잘못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암튼 나는 그렇게 봤다.
이 영화에 대해 황금종려상인지를 받게 한 그 심사위원들도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무모할 정도의 솔직함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열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감상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관점과 문화권에 따라 영화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어제 본 이 영화, 본대로 처음 느낀대로 말 돌리지 않고 (맘 변하기 전에) 그대로 써 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