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어제 분명히 경고했다.
남의 글 그대로 베껴서 자기 글 처럼 올리지 말라고.
여기 글 올리시는 분들 전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기 이야기를 한다.
리퍼런스 참고하고 재정리하더라도 자기 말로 바꾸어 전달한다.
필요하면 참고문헌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링크를 단다.
이 분 처럼 문장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가져왔으면서 시치미 뚝떼고 자기 이야기인양 올리지 않는다.
그건 그 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첫째,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자기의 땀과 노력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둘째, 독자들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상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며.
셋째, 원글저자에게 쓸데없는 오해나 폐가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자기언어로 바꾸지 않은 채 남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오는 행위는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독자들을 기만할 뿐 아니라, 원글 저자에 대해 억울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은 노아홍수에 관한 새 글도 보란듯이 베껴 올렸다.
창조과학선교회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당장 같은 문장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번에는 글 뒤에 창조과학회 자료를 참고했다는 막연한 주를 달아놓았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참고한 게 아니라 베껴 온거다.
참고와 표절(또는 도용)은 분명히 다르다.
아마도 이 글은 어제 내가 올린 '하나님이 비를 무서워하는 이유'에 대한 반론같기도 한데,
잘못 읽으셨는지 반론의 주제를 잘못잡았다.
나는 그 글에서 홍수가 없었다고 한 적 없다.
빙하시대 직후 기온상승으로 인해 엄청난 홍수가 있었다.
어마무시한 양의 빙하와 빙산이 녹아내리고 증발하여 강을 범람시키고 비를 뿌려대는데 홍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홍수를 목격하고 신의 노여움을 풍자한 신화를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인류는 수메르인들로 알려졌다.
노아홍수신화는 아마도 자기들보다 1 천 년 전에 홍수를 신화형태로 기록한 수메르인들의 이야기를 유대교식으로 베꼈을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한 것이다.
이 분이 가져 온 글은 아마도 노아의 홍수이야기를 통해 진화론이 허구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쓴 글 같다.
요즘에도 진화론 창조론 이야기를 하나?
뜬금없이 웬 진화론 창조론 이야기?
나도 진화론에 대해 약간의 이야기를 한 나의 옛날 글을 하나 가져와 보겠다.
나의 글이지만 지금 새로 쓴 건 아니니까 나의 글이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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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오해가 하나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진화론은 창조신화와 논쟁하지 않는다.
과학의 사명은 사물을 관찰하고 물질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는데 있지 초월적인 존재를 연구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진화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없다.
자기 영역이 아니니 부정하고 말고 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과학은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연구동기가 발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가설이나 이론이 정립되면 거꾸로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과정 그 자체는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이어야 하고 또 지금까지 대체로 그래왔다.
비록 진화론이 개체 구조마다의 환원불가능해 보이는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반증이 불가능하다 해도 진화를 시사하는 압도적으로 많은 다른 증거들로 인해 과학계는 진화론을 이론으로 인정했다.
사실 인간 및 동 식물의 지놈(genome 영어권에서는 지놈이라고 발음한다)지도가 차례로 완성되면서 이를 토대로 유전자 변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중간 단계의 화석이 희귀한 상황에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종의 진화’(대진화)에 대해서는 설명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genome지도완성과 더불어, 생물체 전체의 모습이 크게 변화하는 데는 극히 적은 규모의 유전자 변이만이 필요하다는 이론이 확립됨으로써 새로운 종의 탄생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 진 것이다.
다세포 동식물은 세포분열과정에서 다양하고 극적인 외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에 필요한 유전자 변이 또는 돌연변이의 규모는 놀라우리만치 극소 하다는 것이다. (인간과 쥐의 유전자 80 %가 완전히 동일하고 나머지 중 99 %가 유사하다는 것이 이를 시사해 준다)
예를 들어 같은 조상에서 인간이 원숭이와 다른 종으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을 때 3 만 여 개의 유전자중 불과 수 십 개 정도의 변이에 의해 종의 분리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규명하게 된 것은 21 세기 과학의 쾌거라고 할 만 하다. 이렇게 유전자 변이에 의한 종의 분리 진화가 규명되면서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중간화석 따위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 복제를 통해 유전자의 개체 수가 늘어나면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만큼 그 엔트로피를 감당하는 시스템의 규모도 함께 증가해 진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옴으로써 진화론과 열역학 제 2 의 법칙(엔트로피 법칙: 외부의 영향이 작용할수록 시스템내의 카오스 레벨이 높아지면서 진화가 아닌 무질서의 증가를 수반한 퇴보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이 상호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문제는 과학의 문제이면서 언어 개념의 혼란에서 빚어진 문제이기도 한데 극소 단위인 양자나 거대 단위인 우주 모두에 적용되는 이 법칙은 사전적 의미로서의 진화와 유기체의 ‘진화’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개념적 혼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도 생각된다.
유기체의 진화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전자의 변이를 말하는 개념이므로 ‘생존을 위한 질서수립행위’ 가 굳이 물질운동의 항구적, 일반적 개념인 엔트로피 법칙과 모순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기체의 유전자는 계속 질서를 유지해 나가려는(생존하고 적응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무질서를 유발하는 외부환경과 끊임없이 투쟁함으로써 개체를 유지하고 번식한다. 열역학 제 2 의 법칙(The Second theory of Thermodynamic)은 특수한 자기생존투쟁을 수행하는 생명체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다!!!
이처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놀랍고 새로운 정보들이 속속 드러나자 크게 당황한 미국 창조과학회는 허둥지둥 세계 각국에 널려 있는 창조과학회 단체들에 공문을 보내 ‘종의 진화’ (인간이 있는데 원숭이가 왜 아직도 있느냐) 와 ‘열역학 제 2 의 법칙’(시간이 갈수록 퇴화한다)을 진화론에 대한 비판이론에서 제외시키도록 요청한 바 있다. (한국에는 이 공문을 돛단배 편으로 부쳤는지 아직도 도착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국 창조과학회 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그렇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진화론을 불신한다면 이 세상에 신뢰할 수 있는 가설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포퍼주의’가 신뢰의 척도를 재단하는 절대기준은 아니다.
생물학자들은 이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거나 존재했다가 멸종된 모든 종들의 기원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genome지도비교를 통해 진화상의 상관관계를 규명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유전자(DNA)를 집중연구 하는 분야인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은 다수의 연구자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동시에 많은 수의 유전자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변이 등 각종 생명현상을 전산 생물학기법으로 분석함으로써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새로이 전개되는 이 놀라운 사태 속에서 미국의 창조과학회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또 무슨 주장을 진화론 비판 목록에서 삭제해야 할 지 부지런히 눈을 굴리고 있는 중이다.
참, 그거 아는가?
미국 보수기독교는 적어도 빅뱅이론과 진화론을 거의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빅뱅이론은 우주기원론이 아닌 우주형성론으로, 창조론은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지적설계론(The Theory of Intelligent Design)으로 각각 표절, 각색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 문제는 진화론 창조론이 아니라, 지구상에 출현한 생명의 전제조건인 최초의 유기물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느냐를 규명하는 것인데,
사실 이 과제는 진화의 축을 다루는 생물학 분야가 아니라 화학(chemistry), 유기화학(organic chemistry) 그리고 생화학(bio-chemistry) 이 협력해서 해결해야 할 분야다.
진화생물학자도 분자유전학자도 우주물리학자도 이 분야에 까막눈인 것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나 역시 내일 당장 생명체 탄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순수한 과학자들이란 정치-종교적 논쟁에 익숙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연구실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핏대를 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연구란 주둥이나 패거리 의식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학자들의 연구실은 조용하기만 한데 기이하게도 그 연구실 바깥에서 온갖 종류의 건달 사기꾼들이 사상가니 종교가니 칼럼니스트니 논객이니 하는 타이틀을 저마다 하나씩 달고 나타나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삿대질을 해가며 소란스럽게 벌이고 있는 그 논쟁이라는 게 점입가경이다.
창조론자들이 하는 주장은 논쟁이라기 보다는 딴지와 시비라고 할 수 밖에는 없다.
지적설계론자들보다 더 기가 막힌 사람들은 Genesis 1 장을 펴 놓고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는 이른바 문자주의적 창조론자들인데 이들을 ‘물귀신’이라고 부른 이유는 이들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의 행동이 ‘막판에 상대방의 목을 끌어 앉고 저수지에 같이 빠져 죽자’고 덤비는 물귀신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면, 창조과학회 사이트라도 방문해서 그들의 주장을 관찰 해 보기 바란다.
자기 이야기는 거의 없고(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한 사변적 논증 이외에는) 거의 진화론에 대해 조목조목 딴지거는 내용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데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이 죽듯이 진화론이 하구로 판명되면 창조론 역시 살아남지 못할 것 같기에 하는 이야기다.
나는 ‘신데렐라’ 가 ‘시간과 유리구두’간의 우주물리학적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만들어 진 동화가 아니듯이, 성서가 과학을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문서가 아니라는 지극히 초보적인 상식을 더 거론하지도 않겠고, 이 자리에서 그 문자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창세기 1 장을 끄집어 내서 이런 저런 지루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내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 문자주의자들이 귀를 기울일 만 한 보수기독교 과학자 한 분의 기자회견 발언을 어렵사리 찾아내 모셔 왔으니 그 분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란다.
물리학자라 진화론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 ‘창조과학회’ 회원(한국 사람이다!)이었고 휘튼 대학(빌리 그레이엄이 나온 학교다!!)에서 신학도 공부한 사람이다. 지금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기독교세계관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단다. 물론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창조주가 누구시며, 그 분 앞에서 인간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창세기의 기록 목적은 창조 연대를 계산하고, 창세기를 과학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해석학적으로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는 문자주의적 입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창조의 증거와 창세기의 해석에 있어서 틀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꾸중 하시진 않으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 것은 크게 책망 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과 같이 대화가 단절되고, 의사 소통이 없는 상황들을 불식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 (양승훈 박사, 한국 창조과학회 창립멤버였다가 ‘오래된 지구론으로 전향한 뒤 동 단체를 떠남, 현재 캐나다 밴쿠버 거주)
이야기 끝내기 전에 한 가지 이 질문만은 꼭 하고 싶다.
‘진화론이 허구로 판명되면 창조론이 자동적으로 진리가 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진화론이 죽어주면 창조론이 살아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