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영혼불멸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인간의 몸과 영혼을 분리하여 창조한 창조주는 없다. 인간의 몸과 분리된 별개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이란 인간의 뇌의 작용이다. 현대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 즉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는 초등학교 수준에서부터 젊은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며, 오늘 주류 사회의 세계관이다. 인간 생물종은 6천 년 전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 완성품으로 출현하지 않았다.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태초에 우주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오직 미세한 화학적 입자들(우주먼지들)만이 떠돌아 다녔으며, 초자연적인 힘(하느님)과 미리 계획된 설계도 없었다. 138억 년 전 우연히 자연적으로 물리과학적인 반응에 의해 빅뱅이 일어나 우리의 우주가 출현했다. 그리고 130억 년 전에 첫 번째 은하계가 출현했고, 120억 년 전에 우주는 천억 개의 은하계를 형성했고, 45억 년 전 우리의 은하계에 태양계가 생기고 곧이어 지구가 출현했다. 40억 년 전 모든 생명체들의 조상인 최초의 단세포가 출현했고. 4억5천만 년 전까지 모든 생명체들은 바닷물 속에 있다가 카파네우스가 처음으로 육지로 올라왔다. 육지에서 포유동물들의 진화는 계속되었다. 2백 60만 년 전 최초의 인간 호모 하빌리스가 아프리카에 출현했고, 1백50만 년 전 호모 이렉투수가 사냥을 시작했다. 20만 년 전 자의식을 지닌 원시 호모 싸피엔스가 등장했고, 4만 년 전에 언어를 사용하는 현대 호모 싸피엔스가 등장했다. 우주진화 역사에서 인간과 영혼이 분리되어 등장했거나, 인간의 내부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없으며, 몸과 영혼의 이원론은 단지 부족적인 종교 내부에서만 주장하는 개인적인 계시이며 모든 인류에게 적용할 수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이원론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혼돈을 불러 일으킬뿐만 아니라 인류의 밝은 미래에 위험한 장애물이 된다.
인간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기적인 욕심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죽음 후에도 영원히 살고 싶은 꿈을 갖고, 몸은 죽더라고 영혼은 몸을 떠나 하늘 위 천국에 올라가 영원히 산다는 이원론을 상상했다. 여기에 덧붙여 몸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난다는 소위 부활론과 윤회론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몸과 영혼의 분리, 물질세계와 영적세계의 분리, 세속적인 세상과 거룩한 세상의 분리, 종교의 내부와 외부의 분리, 지옥과 천국의 분리, 현세와 내세의 분리 등을 종교적 교리와 믿음의 핵심으로 맹신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인류사에서 이러한 이분법적 이원론이 인종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의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교회기독교는 제국주의와 우월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성공주의와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었다. 주류 과학계는 우주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 불확실성을 못본체하고 거짓과 은폐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거부하기 보다,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에 있는 영원함을 살아낸다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이기적인 욕심을 떨쳐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두려움과 이기심 때문에 수동적으로 사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100%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사는 것이 참된 기독교인의 신앙이다.
또한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에 근거한 생명과 죽음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면 두려움과 불안과 욕심에서 자유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죽음 후의 내세에 대한 망상에서 해방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잘못도 하느님의 징벌도 아니다. 죽음은 자연의 법칙이며, 우주의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은 성스럽고 소중하고 경이롭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늘 위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맹신하는 교회기독교인들은 죽음과 생명에 대해 정직하지 못한 확신때문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죽음의 현실을 감추려고 한다. 더욱이 교회기독교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소위 이분법적 구원론과 부활론을 창작했다. 다시 말해,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입술로 시인해야만(믿어야만)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서 영생을 얻는다는 허위공식(교리)으로 사람들을 우롱했다. 원초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정신으로부터 탄생한 예수의 기독교는 인간의 몸과 영혼, 현세와 내세, 천국과 지옥, 영적세계와 물질세계를 따로따로 분리하는 이분법적 종교가 아니다. 더욱이 현대의 기독교는 이러한 이원론적 분리와 차별을 성서적으로 정당화하고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삼층 세계관적 종교도 아니다. 예수의 기독교는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영원함을 깨닫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통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인식하고 현세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생명과 삶의 종교이다.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시대에 육체와 분리된 영혼불멸이란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비실제적이며 단지 개인적이고 부족적인 꿈에 불과하다. 오늘날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이원론은 인류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으며, 인간의 밝은 미래에 큰 장애물이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현대 과학과 전통적인 고대 종교의 두 진영은 인간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와 해석을 내린다. 고대 종교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미리 설계한대로 세계와 생명체를 창조했으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나약하고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하느님없이 선할 수 없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138억 년 우주진화 이야기를 인식한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완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원초적으로 인간의 조상은 바다의 물고기였으며, 물고기가 진화하여 육상으로 올라와 동물이 되었고, 동물이 진화하여 원시 인간이 출현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물고기의 단순한 뇌에서 유래되어 원시적인 본능의 파충류뇌와 모성애의 본능을 지닌 고포유류와 신포유류의 뇌 그리고 가장 뒤늦게 호모싸피엔스 현생인류의 대뇌 (피질)로 진화되었다. 다시 말해, 뇌는 인간의 본성이다. 뇌에서 인간은 세계의 큰 그림을 그리고 만들었으며, 우주진화 역사를 인식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뇌는 우주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뇌를 6천 년 전에 완성품으로 창조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21세기의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몸(뇌)과 마음(영혼)은 분리될 수 없다. 또한 현대 철학과 사상은 인간의 몸과 마음은 하나이며, 완성품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화과정 중에 있는 인간의 측면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원론적이고 창조론적인 종교인들은 물질이란 소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결하고 오직 영혼만이 진실하며 불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실제적인 현실 세계와 분리되어 지나치게 고립되어 있다. 인류학에 따르면 원시인들은 육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일체임을 인정하였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몸도 영혼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마음은 몸을 통해 발견되고, 몸은 마음을 통해 발견된다. 몸과 마음은 모델로서는 인정될 수 있으나, 독립적인 실체는 분리될 수 없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듯이, 인간과 우주는 하나다. 다시 말해, 몸 자체가 이른바 마음(영혼)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몸 속에서 마음(영혼)을 발견할 별도의 공간은 없다. 인류가 찾아낸 최소 단위까지 몸을 해체하고 나면 그 세계는 정신의 세계와 통한다. 몸은 마음(정신, 영혼)의 세계 즉 영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마음은 몸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몸의 근원적인 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몸의 현상이다. 금세기 초에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계대전도 인간을 단순히 물질 혹은 자원, 화력 따위로 보았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현대에 문제가 되는 인종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아동학대는 사실상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인도주의(Humanism)가 결여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진화 과학과 고대 종교를 통합하여 새로운 인간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면서 환경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으며, 정체성이 형성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학문이다. 우리는 파충류뇌와 구포유류뇌와 신포유류뇌와 인간의 뇌의 심리적 유인(誘因)들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진화과정에서 유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과거에 완전하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니라, 장구한 세월 속에서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왔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고, 무능력하고, 자율성이 없고, 스스로 선할 수 없다 는 고대 믿음체계의 이분법적 신학이 잘못된 것을 입증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심리)을 진화론적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특히,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뇌가 많은 기능적 매커니즘을 포함한다고 강조하는데, 이 매커니즘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심리학적 적응 혹은 진화된 심리학적 기계작용 즉 진화된 심리기제(機制 –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작용이나 원리)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사례는 시각, 청각, 기억, 운동 제어 등이다. 진화심리학이 답을 알아내려고 추구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은 다음의 네가지가 있다: (1) 왜 마음은 이렇게 진화되었을까? 즉, 사람의 마음은 어떤 원인결과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지거나 빚어졌는가? (2) 어떻게 사람의 마음이 진화되었는가? 즉, 그 기제나 구성 요소는 어떤 것이며, 그것들은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3) 구성요소들의 기능과 조직 구조는 무엇인가? 즉, 마음은 어떤 일을 하도록 진화되었는가? (4) 현재 환경의 입력은 사람 마음의 진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관찰 가능한 행동을 낳는가?
따라서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환경으로 인해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다시 말해, 유전과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또한 인간의 마음은 타고난 뇌가 그 동안의 학습된 기억을 이용해 유전자로 인해 발현되는 본능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수렵-채집환경에 적응된 정신기관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마음을 스위스제 군용칼에 비유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 혹은 두뇌의 소프트웨어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자연 선택의 단위를 유전자로 규정하는 유전자 선택론과 자연 선택의 힘을 강조하는 적응주의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정신기관인 인간의 마음은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은 오랜 수렵-채집시기 동안 우리 조상들에게 끊임없이 부과됐던 적응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계산기관들의 체계이다.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류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유형의 적응 문제들에 직면했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진화된 마음을 가진 개체만이 진화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 마음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고 오히려 특정한 몇 가지 적응 문제들 즉 적절한 음식 가리기, 좋은 짝 고르기, 상대방의 마음 읽기, 동맹 만들기 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신체가 적응적인 여러 기관들(뇌, 심장, 눈, 다리, 등)로 구성되어 있듯이 뇌의 작용인 마음도 하나의 보편적인 적응 기관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마음을 정신기관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처리기관인 뇌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이 그리는 인간의 마음은 여러 모듈(module –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그 구성 인자들끼리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지만 다른 모듈의 구성원들과는 아주 미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그런 장치)들로 구성된 스위스제 군용칼과 같다. 스위스 군용칼에는 칼뿐만 아니라 병따개, 드라이버, 심지어 작은 톱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고유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독립된 도구들이 여러 개 매달려 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스위스 군용칼 비유는 인간의 마음이 준독립적인 여러 개의 모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기본 주장을 잘 반영한다.
진화는 문화와 종교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생존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로 굳어지거나 유발된 문화를 만들어냈다. 유발된 문화는 보편적인 심리기제(機制)가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사회문화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가리킨다. 생존을 위한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문화가 대표적이다. 당연히 보편적이고 유발된 문화는 전파된다. 또한 이민족, 타인종, 타종교를 기피하는 것도 결국 진화적 산물이고, 이는 문화적 양태를 낳았다. 즉 진화적 관점에서 전염성 병원체를 옮길지도 모르는 개체나 사물을 탐지해서 그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고 배척하는 것이 이민족과 인종과 종교에 대한 기피와 차별심리를 낳았다. 여기에서 집단주의 문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분하고 병원균을 퇴치하는 집단적 해결방안을 더 고려하다보니 집단의 권위와 전통에 대한 순종이 우선된다. 따라서 병원균이 많았던 지역에는 권위주의적인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진화론은 도덕이란 인간의 생존에 유용한 경험적 지식이 본능 영역에서 축적된 것이라고 본다. 즉 생존을 위한 본능적 연장들의 합이 도덕인 셈이다. 도덕성은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환경에서 인간의 조상들이 해결하려 했던 보편적인 심리기제의 산물이다. 예컨대, 배타성이 많을수록 생존의 확률이 높고, 은혜를 갚는 것은 협동적 상호성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단에 충성하는 것은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이며, 간음과 불륜의 금지도 결국 병에 대한 사회 문화적 방어기제이다. 장유유서의 원칙은 지략과 정보를 통한 생존 방식이 유리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진화심리학은 종교도 '우리'와 '너희'를 이분법적으로 엄격하게 구분하여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동맹심리가 종교를 부수적으로 낳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진화심리학의 이해는 고대 지혜와 현대 과학이 통합하는 길의 안내자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종교들의 믿음체계들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시각에서 인간이 어떻게 출현했으며, 자신들의 전통과 신앙이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하면 부족적이고 개인적인 계시에 머물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우주적인 공개적 계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며, 두려움과 욕심과 생존의 경계 넘어 자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