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기독교의 공식적인 경전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정경의 의미에 대해 모호하게 알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독교 교회사에서 성서가 기독교의 정경으로 채택된 공식적인 결정이 없었다. 다만 그냥 읽혀졌고, 무작정 믿으면서 세월이 흘러갔다. 거기에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번역판만이 정경이라고 우겨대는 몰상식하고 추악한 논쟁을 벌리고 있다. 물론 성서가 정경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즉 성서를 정경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 아니다.
성서는 문자적으로 기록한 책이 아니다. 성서는 신화적, 시적, 은유적으로 기록한 지혜서이다. 성서는 믿어야 하는 교리책이나, 문자적으로 읽어야 하는 역사책과 과학책과 도덕책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인류 전체에게 절대적인 권위라고 억지주장하는 것은 단지 부족적인 생존의 두려움에서 나온 배타주의와 우월주의의 부산물일 뿐이다. 성서는 많은 권위들 중에 하나이며, 현세에서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사는 길을 탐구하는 책이다. 성서는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고, 불치병에 걸리지 않고, 부자가 되고, 죽은 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마술책이 아니다. 성서는 지금 여기에서 고통과 불행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굳굳하게 행복하게 보람있게 사는 길을 참 사람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스스로 터득하는 책이다. 성서는 무작정 많이 읽고 암송하고 직역적으로 믿는 책이 아니다. 성서는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살아내는 싦의 길잡이다.
성서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축자영감설과 무오설과 문자주의의 모순은 신구약 성서의 형성과 발전 배경에서 그리고 기독교 초기 문서들의 정경화 논란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특별히 신약 성서의 역사적 예수가 로마제국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 아래에서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할 때와 제국의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에 대한 원초적인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면서 다양하게 변형되고 발전하여 유포되었다.
신약성서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예수가 죽은지 약 20년 후에 진짜 바울이 최초로 예수전승을 데살로니카전서로 기록하였고, 약 40년 후에 마가가 첫 번째 복음서를 기록했다. 신약성서 원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많은 필사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본들이 만들어졌고, 계속해서 수백년 동안 더 많은 사본들이 나왔다.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많은 사본들 중에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에 권위를 지닌 기독교 문서들을 선별하려는 노력에서 험난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치열한 정경화 과정은 길고도 복잡했다. 아직 경전이 없었던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배 중에 유대인 성서(히브리어 구약 성서)와 다양한 복음서들을 낭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문서들(성서 사본들)도 유대인 성서만큼 권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주후 2세기 중반에 마르시온(Marcion)이라는 탁원한 기독교인이 로마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마르시온은 자신의 주관적인 신학에 따라서 기독교 문서들(사본들)을 모아 자신의 정경을 만들어낸 최초의 기독교인이다. 마르시온의 정경은 복음서 한 권과 열 개의 바울 서신뿐이었으며, 신약 성서의 정경화 과정을 가속화시켰다. 다른 기독교인들이 정경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된 동기는 마르시온에 대한 반발로 신약성서에 포함되어야 할 문서들을 선별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즉 프랑스의 이레니우스(Irenaeus)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마르시온을 이단으로 논박하면서 어떤 문서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주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특히 하나의 복음서만 정경으로 채택하는 것에 반박하면서 땅에는 네 방위, 네 바람, 네 기둥들이 있으므로 당연히 네 복음서가 정경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2세기 말경에 마태복음서, 마가복음서, 누가복음서, 요한복음서, 4개의 복음서들만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이 생겼다. 기독교 문서들이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약 300년 후인 4세기 후반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자신의 신학으로 정확하게 27권의 문서들을 신약 성서로 주장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독교 교회의 공식적인 정경의 결정이 아니었으며 이후에도 정경화 논쟁은 수백 년 동안 더 계속되었다.
고대 사회의 문맹율은 98%이었으며,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 이후에나 가능했다. 다시 말해, 성서의 문자에 메어달리는 근본주의적 신앙은 기독교의 원초적인 신앙이 아니라 지난 100여년 동안의 일시적인 현대의 부산물이다. 초대 기독교 교회는 높은 문맹율과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서를 읽을 수 있거나 소유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성서 근본주의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설과 문자주의에 대해서 상상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신약 성서를 포함해 거의 모든 초기 기독교 문서들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당시의 그리스어를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과 글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대의 출판방식은 책의 사본 하나를 손에 쥔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필사본을 만들었다. 책을 베끼다 보면 부주의로 본문이 변경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필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삽입하여 고의적으로 본문을 바꾸었다.
또한 주후 2세기-3세기까지 전문 필사자가 없었고,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문서들을 필사했다. 따라서 사본들에 많은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필사자들은 다른 사본들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다. 좋은 실례로, 마르시온의 신학에 따르면, 바울은 구약 성서의 하느님을 참 하느님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사본들에서 자신의 신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삭제한 후에 그것을 정경으로 삼았다. 이것때문에 소위 정통 신학자라고 자칭한 이레니우스는 마르시온을 이단 신학자로 단정했다. 다시 말해, 모든 필사자들은 자신의 신학에 들어맞도록 적지 않게 본문을 변경시켰고, 자신의 사본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견해와 다른 것들은 무조건 이단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고대 사회는 활자를 사용하는 인쇄술과 저작권이 없었으며, 필사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문서의 본문을 변경시킬 수 있었기때문에 필사자들은 다른 필사자들의 고의적인 변개를 막을 길이 없었다. 기껏해야 저주하는 것이 고작이었고(요한계시록 22:18-19), 점잖케는 ‘이것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니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다’는 경고가 최선이었다. 또한 갈라디아서 사본(6:11)에는 어느 필사자가 바울의 입을 빌어서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고 하면서 다음 필사자에게 변개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갈라디아서는 원본이 아니며 파피루스사본 46 (파피루스 사본들 중에 46번째로 공식적인 사본목록에 등록된 것)이다. 이 사본은 주후 2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라면 바울이 편지를 쓴 때로부터 대략 150년 후이다. 즉 바울의 편지 원본은 150년 동안 필사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많은 사본들이 만들어졌다.
주후 4세기초에 이르러 기독교에 전문 필사자들이 등장했다. 또한 이후에 수도원에서 그리스어 성서의 필사를 담담하는 수도승들이 생겨났고, 필사작업은1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대다수의 현존하는 그리스어 신약 성서 사본들은 비잔틴제국(터기와 그리스 지역) 즉 동방지역에 살던 중세 기독교 필사자들이 만든 것들이다. 따라서 7세기 이후의 그리스어 사본들을 ‘비잔틴(Byzantine) 사본’이라고 부르며, 후기 사본에 속한다. 전문 필사자들의 덕분에 후기 사본들끼리는 본문이 대단히 유사하다. 그러나 초기 사본들은 자기들끼리는 물론 후기 사본들과 본문이 많이 다르다. 수많은 후기 사본들이 눈에 띌 정도로 서로 일치한다고 해서 이 사본들이 신약 성서의 원본을 증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한편, 4세기경에 서로마제국의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라틴어를 모국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교황 다마수스(Damasus)는 제롬(Jerome)에게 ‘공식적인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도록 지시했고, 주후 405년에 ‘불가타(공통) 성경’(Vulgate Bible)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것이 서방 교회의 공식 성서가 되었지만 라틴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었고, 이것이 기독교의 공식적인 정경화의 결정은 아니었다. 기독교 교회사에서 어느 특정한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정경을 결정한 때가 없었다. 다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사본들을 자연스럽게 정경으로 생각했고 이것이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중세를 거치면서 신약 성서 본문은 동방(그리스어 비잔틴 본문)과 서방(라틴어 불가타 성경) 양쪽 모두가 상당히 표준화 된 형태로 필사되었다. 그러나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가 인쇄술을 발명한 후부터 성서 출판에 지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필사자들의 우연한 변개 또는 고의적인 변개의 필사시대는 끝이 났다. 1450-1456년에 걸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출판한 최초의 작품은 라틴어 불가타 성서이었다. 에라스무스(Erasumus)는 1515년에 최초로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편집하고 인쇄했으며, 약 300년 이상 서구 유럽 사회의 성서 출판사들의 그리스어 신약 성서의 표준 본문이 되었다. 거의 한 세기 후에 출판된 영어번역 성서 킹제임스역(King James Version, 1611년)은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대본으로 삼아 번역된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것은 에라스무스의 성서는 후대의 열등한 한 두 가지 사본만을 가지고 만들어낸 오류투성의 본문이었다. 따라서 킹제임스역이 가장 정통 성서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 문서들의 치열한 정경화 논쟁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고 긴 세월이 걸렸다. 현재의 신약성서는 필사자들의 우연한 실수와 고의적인 변경으로 만들어진 사본들 중에서 극소수를 모아 편집하고 번역한 책이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의 계획도 아니며, 다만 호모싸피엔스 인간의 자아의식의 결과일뿐이다. 또한 성서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은 하느님이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성서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성서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사본들의 사본들만이 무수하게 유포되었고, 사본들 마저도 얼마나 원본에 가까운지 아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성서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하느님, 인간, 생명, 예수, 그리고 신앙의 의미를 크게 왜곡한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으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종교와 인종들을 분리시키고,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생태계가 죽어가는 것을 무시하거나 방관하게 된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서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성서 원본이 필사자들에 의해서 많은 사본들로 만들어졌고, 그 사본들이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수많은 사본들 중에 선별적으로 채택한 것을 성서로 읽게된 배경을 이해하면 축자영감설과 무오설과 문자주의를 주장할 수 없다. 성서는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창조론을 주장하는 과학책이 아니다. 성서는 지옥-천당 징벌-축복의 이분법적이고 내세적인 구원론의 책이 아니다. 성서는 역사책이나 과학책이나 도덕책이 아니다. 성서는 온 인류의 유일한 경전이 아니다. 다만 성서는 참 사람 예수의 정신대로 깨달음의 참 인간이 되는 길을 밝혀주는 지혜서이다. 현대인들은 은유적으로 기록된 고대성서를 21세기의 이야기로 전환해야 진실하고 거룩한 책이 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성서 근본주의에서 해방되어 깨달음의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 신앙과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왜냐하면 원초적인 기독교는 믿지 못할 것을 억지로 믿고 복종하는 교리적인 내세 종교가 아니다. 참된 기독교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을 깨닫고 스스로 몸과 마음으로 사는 현실적인 삶의 종교이다. 예수의 기독교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을 믿는 경전종교 즉 책의 종교가 아니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어야 하고, 전지전능하고 물질적이고 인격적인 하느님을 교리적으로 믿어야 하고, 창조론을 믿어야 하고,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으로 믿어야 죽은 후에 하늘 위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맹신하는 무당종교의 교회를 버려야 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역사적 예수의 정신에 따라 중개인없이 자율적으로 하느님의 의미를 깨달아 참된 인간으로 지금 여기에서 영원함을 몸과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