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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48] 이 세계와 분리된 별개의 종교적 영역은 없다. 하늘 위에 거룩한 성전도 없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2663 작성일 2020-01-02 05:26 조회수 2109

교회는 초자연주의계몽주의 이전야만적인 신학 도덕을 버려야 한다. 교회의 신학과 도덕이 단순하고, 지적이고,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변화되면 솔직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교회 기독교의 거대한 도그마, 성육신 삼위일체 교리와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몸의 부활 그리고 예수의 재림 등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주류 신학계와 종교계와 과학계에서 이성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인 교리와 믿음은 예수의 정신에 크게 위배되기 때문에 성서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약성서의 전체적인 신학을 신중하게 살펴보면, 가장 후대에 기록된 요한복음서 저자만이 성육신에 대해 언급할 뿐, 신약성서의 어느 저자도 예수가 하늘 위의 하느님과 완전히 동등한 신성을 지닌다는 교리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성육신 교리는 예수가 하느님께 기도했던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분명히 모순되며, 그가 기도했던 하느님과 동등성을 주장했다면 그것은 비상식적이며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도 허구이다. 오늘날 목회자를 훈련시키는 신학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들이 더 이상 성서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정직하게 가르친다면, 교인들의 정신 건강과 참된 인간됨과 온전함을 위하여 목회자들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믿도록 강요하거나,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이며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변호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성서비평에 근거해서 교리들에 대한 수정이 긴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하다.

 

교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진리는 하느님에 의해 계시된 진리로서, 사람에 의해 수정할 수 없다는 망상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지난 200년 동안 교리사(敎理史)비판적 연구에 따르면, 도그마(신조(信條), 교조(敎條))의 발전과정은 매우 인간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 교리의 각각의 항목을 사람들이 작성하고 승인했으며, 4세기나 5세기에 사람들에게 좋게 보였던 교리적 논증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좋은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과거의 사람들이 만든 것을, 후대 사람들이 다시 평가하거나 다시 바꿀 수 있으며, 심지어 폐기할 수도 있다. 신학교의 젊은 목회자 후보생들이 졸업과 함께 안수를 받은 후, 전문목회를 실시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교리들이 하늘로부터 완성되어 떨어졌기 때문에 결코 다시 생각해보거나 심지어 의문시해서도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고수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더욱이 이렇게 잘못된 믿음을 평생 동안 설교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교회 기독교가 죽어가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목회자들의 이러한 무지함과 무식함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가 비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믿음에 집착함으로써 교회 자체를 불구자로 만들고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은 항상 재검토하여 수정하고 새롭게 함으로써 교회를 개혁해 가야 한다. 비단 심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일이다. 교회는 세상과 분리하여 고립되기 보다 외부의 문화적 변화에 대해 솔직하고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대중들에게 시대적 변화에 대해 분명하게 신학적 해석을 설득력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세속적인 세상에서 통용될 수 있는 존경받을 만한 종교적 언어를 창조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어리석은 종교적 언어는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 오늘 교회 내부에서 들리는 언어는 외부에서 듣기에 컬트(사이비 종교) 언어 또는 은어이다. 교회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새로운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성속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어 버려야 한다.

 

138억 년의 우주진화 세계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죽었다. 현상과 실재 사이의 구분도 죽었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질서 즉 영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고 우리에게 중개된다는 초자연적인 유신론적 신학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그 누구도 이제 더 이상 낡은 이원론 즉 우리의 삶이 막후의 보이지 않는 실재에 의해 적극적으로 형성된다는 낡은 두 세계의 이원론의 관점에서  세계관과 가치관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실천적으로 탈형이상학적 시대의 사람들이며 즉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있을 뿐, 다른 세계의 막후는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전통적인 유신론적 종교는 신들의 실재와 대행자, 영들, 신의 은혜, 분리된 영혼 등, 보이지 않는 존재와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에 속박되어 있다. 이것들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탈기독교인의 여정을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은 반지성주의의 벽을 높이 쌓았다. 그들은 비판 이론을 거부하며, 그들의 언어가 부족적인 작은 종파의 은밀한 언어처럼 들린다. 그들은 내부적 은어들에 대해 정말로 경험한 것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우겨대지만, 단지 내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인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만 경험할 수 있으니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라는 비상식적인 말을 서슴치 않는다. 여전히 교회의 기독교인들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무작정 믿으라고 우겨댄다. 그러나 21세기의 종교의 언어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 없이 우주적이고 통합적이어야 한다.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 깨끗한 영역과 더러운 영역,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의 분리는 참된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경계를 넘어서고, 즉 분리의 장벽들을 허물어버리고, 모든 것들을 품어 안고서 넘어서는 포월(包越)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우주진화 세계관을 살아가는 포스트모던 기독교인들은 형이상학의 종말이 이미 왔다고 인식하며, 신학과 신앙의 의미는 실재론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들에게 종교적 관념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세계를 건설하며, 그 세계를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들은 인간 세계에 충실하려는 종교적 인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탈교회적 하느님 나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성서근본주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종교내부인들에게만 허락되는 경험에 의해 증명되기 때문에 컬트(사이비 종교)처럼 작용하는 모순을 모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종교적 세계와 세속적인 포스트모던 세계를 분리하는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 흔히 그들은 복음의 의미를 왜곡하며, 복음을 큰 소리로 단언하여, 이것은 나의 간증이다. 나는 여기에 목숨을 건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교회 기독교는 과거의 패러다임의 교리적 선언들을 포기해야 한다. 이 시대의 문화인도주의하느님 나라세속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오늘의 문화종교적 기원과 가능성이 되어야 한다. 교회 개혁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 원인은, 교회는 내적 권력구조와 집단 역학이 결합되어, 교회가 역사의 흐름과 문화의 변화를 거부하고 비극적 종말에 이르기까지 개혁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16세기 초에 종교개혁을 위한 대의명분이 발동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북유럽의 많은 제후들이 교회개혁을 통해 자신들이 중대한 정치적 이득을 볼 것으로 생각하여 신속하게 루터의 편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처럼 교회개혁을 위한 외부의 정치적 후원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교회는 심지어 그 자체의 죽음에 이르러서도, 개혁자들을 잔인하게 추방하고 있다. 교회개혁이 불가능한 또다른 이유는, 교회 내부에서 신학의 지적인 몰락이 너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교적 믿음의 핵심을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로 설명할 능력을 상실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가치 생활방식을 창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신앙이 세상에서 세속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인류역사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개입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이 잘못되었던 잘되었던 역사의 주체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급진적 기독교가 유럽의 역사에 뿌리 박고 있는 동기는 순수한 종교적 자유와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비전을 꿈꾸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참 사람 예수하느님 나라 건설의 꿈이 새롭게 점점 더 지구촌화 되어 가는 세계 문화 속에서 세속적으로 성취되어 가고 있다.

 

교회 기독교 신자들새로운 문화를 그냥 미워하면서, 그것을 허무주의적이고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바라보는 염세적 종교적 보수주의의 무리들이다. 그들은 잘못되었다. 그들은 성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참 사람 예수를 배반하고, 심지어 그를 변질시켰으며,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할 현실적이고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고 반대했다. 더욱이 하느님 나라를 죽음 후에로 연기하고, 하늘 위의 천국으로 착각하고 맹신하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서 존재하기를 중단해야 한다. 하느님은 믿어야 하는 교리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방식이며 표현이다. 따라서 이 세상과 분리된 종교적 영역이란 없으며, 하늘 위에 거룩한 성전이란 없다. 따라서 세상과 분리되거가 격리된 교회는 무용지물이 되어 죽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중심적 사고에서 세속적인 하느님 나라 중심적 사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교회의 시대는 끝이 났고,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가부장적인 기독교적 혼인은 효력을 잃었다. 하느님 나라 종교에서는 전통적인 혼인이 설득력이 없다. 혼인교회의 시대의 부산물일뿐이다.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남자가 여자를 소유할 수 없다. 오늘날 이것이 일어나고 있다. 낡은 가부장적인 체계는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가부장적 혼인은 필수적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하나의 징표이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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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20-01-0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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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책을 읽겠다고 서가에 있는 책 중에 아무 책이나 집었는데 무신예찬(無神禮讚). 요즘 읽고 있는데 불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걸 하늘에서 굽어보는 사랑이 가득하고 전지전능하고 인간사를 심판해 상벌을 주는 그런 신은 없지만 세상이 돌아가고 유지되는 원칙, 자연선택의 원칙이 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봄  |  2020-01-05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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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신(god)이란 인간이 꿈꾸는 온전한 삶의 방식과 그것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실재론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이름도 아닙니다. 신을 믿으면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신 없이도 행복하게 의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신이란 말이 필요하다면 신의 의미는 인간들이 서로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공정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과 세상입니다. 예수의 하느님은 이런 신이었으며, 예수는 그런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긴급하게 건설하자고 외쳤습니다.

신을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기고, 믿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거짓말은 제도적인 종교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만든 상업적인 술책입니다. 그런 신을 팔아먹는 교회 사찰 회당 성당 등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 당장 떠나는 것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위해 현명합니다.

지난 2세기 동안 초자연적인 신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그 대안으로 인도주의(Humanism)와 자연주의(Naturalism)가 주류 사상이 되었습니다.

Nature  |  2020-01-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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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지전능의 존재이신 '신'(God), 인도주의와(Humanism), 자연의 법칙을(Naturalism) 다 종합적으로 인정하고 가르치는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전 제 종교에서 통제, 착취와 상업적인 술책으로 피해를 받기보다는, 많은 인생의 가르침, 지도 및 정말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을 때, 실질적인 영적, 세속적및 물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종교와 종교 기관과 그 안에 계신 분들에 따라, 다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저의 무지함과 순진함과 인간적인 약점으로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별력이 부족했던 때가 있었다는 개인적인 책임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제가 다니는 종교의 한 지도자님께서 하신 말씀중 하나인, "교회는 위대한 성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아픈 병자들이 모여서 조금이나마 치료받기 위한 곳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모든것과 같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저에게 위안을 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제 저는 조금이나마 어느정도 나이와 인생의 경험이 쌓이며, 인간생활에서는(인생에서는) 영적인것, 신체적 건강, 물질적인면 다 균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늘봄님께서 말씀하신, "신의 의미는 인간들이 서로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공정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과 세상입니다." 에 동의합니다.

늘봄  |  2020-01-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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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님의 소중한 경험과 깨달음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Nature  |  2020-01-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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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가 제 신앙의 기관에서 여러 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저도 그만큼 돌려드리려고 여러 면으로 많은 노력, 봉사, 헌금을 해 왔습니다.

더 많이는 돌려드리지 못했다고 해도, 제 가슴에서 최소한 제가 받은 만큼은 돌려 드렸다고 개인적으로 위안해 보는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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