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다 - 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시를 읽는다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행복을 여는 작은 비밀번호
일상의 풍요로움은 욕심 그릇을 비워서 채우고
자신의 부족함은 차고 매운 가슴으로 다스리되
타인의 허물은 바람처럼 선들선들 흐르게 하라.
생각은 늘 희망으로 깨어있게 손질하고
어떤 경우도 환경을 탓하지 말며
결코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미움은 불과 같아 스스로 파멸케하니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면 조용히 침묵하라.
악한 일엔 눈과 귀와 입을 함부로 내몰지 말고
선한 일엔 몸과 마음을 어김없이 탕진하여 삶의 은혜로움을
깊고 깊은 사랑으로 완성하라.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말 할 수 없이 간단히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헬렌 니어링' 소박한 밥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