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 일정 중 하나가 인왕산 등산이었다. 일행 2명을 경복궁 역에서 만났다. 8년만에 경복궁 역 1번 출구에서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허그 하고 볼 키스하고. 60년대 태어난 여자들이다.
나는 60년대 태어난 여자들 하고 잘 어울린다. 내가 사교적 성격이 전혀 아닌 재미없는 사람이다. 에드몬톤에도 몇 명 있고 서울에도 몇 명 있다. 남녀를 초월하여 가끔 만나 커피 마시고 식사도 하며 세상사는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이 두 여자 하고 안지가 꽤 오래되었다. 8년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느낌이 드는 사람들. 그 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하며 사직공원 쪽으로 해서 인왕산을 올랐다. 활터 앞에서 잠깐 서서 활터를 보았다. 조선시대 한량들이 모여 활 연습하던 곳이다.
인왕산이 높이 300미터가 조금 넘는 산이지만 산이 갖춰야 하는 모든 것을 갖췄다. 숲이 있고 각양각색의 식물이 자라고, 바위도 있고 급경사도 있고 바위틈을 올라가기도 하고, 개울도 건너고 다리도 건넌다. 로키는 로키대로 인왕산은 인왕산대로 매력이 있다. 전에는 성벽이 없었는데 군인들이 철수한 후로 새로 쌓은 듯하다.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많다. 호랑이 발톱 바위는 인왕산 포토존이다. 거기서 사진 찍느라고 사람들이 몰려 있다.
정상에서 물 한 모금씩 마시고 내려갈 때는 세검정 방향을 택했다. 너무 바뀌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표지판을 따라 갔다. 윤동주 문학관이 나오고 좀더 내려가니 낯 익은 동상이 보인다. 최규식 경무관 동상. 동상을 보니 어디로 내려왔는지 알겠다.
그 당시 방첩부대장이 윤필용이었는데 “너 여기 왜 왔어?” 하니 억센 북한 사투리로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 그때 대부분 사살당했고 한 명이 살아서 휴전선 넘어갔고 포로는 김신조 한 명이다.
청운 중학교 쪽으로 내려오다 버스를 탔다. 북악산 기슭에 단풍이 곱게도 들었다. 한국의 가을은 세계 최고다. 늦은 점심 먹으러 대학로에 갔다. 셋이 점심을 먹고 “커피 마시러 가야지?” “어디로 갈까?” “학림 다방 가자.” “아니, 아직도 다방이 있어?” “이 아줌마들, 학림 다방 몰라?” 둘 다 학림다방을 모른단다. 양구가 모른다는 건 그래도 이해하겠는데 정혜가 모른다는 건 충격이다. “서울 살아봐, 알던 것도 잊어버리는데.”
나무계단을 타고 이층에 올라가니 앉을 자리가 없고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한 다방이라니 구경이라도 하자” 두 여자가 다방 안을 돌아보고 나온다.
할 수없이 길 건너 스타벅스로 갔다. 셋이 이층에 앉아 늦은 가을 햇살을 받으며 창밖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수북이 쌓인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을 따라 보도 위를 뒹군다. 좋은 사람들 만나 천천히 나누는 세상 이야기, 이런 게 바로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