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는 다리가 많이 있다. 안 세어봐서 몇 개 인지는 모르나 하여튼 많다. 수많은 다리 중에 가장 먼저 가본 다리는 퐁네프(pont neuf)다. 우연히 가다보니 퐁네프에 온거지 특별한 뜻은 없다. 퐁(pont)이 다리다.가장 가보고 싶었던 다리는 퐁 미라보, 미라보 다리였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 때문은 아니다.
퐁네프
미라보 다리 밑에서 밀어는 나누는 연인들
미라보 백작, 그는 귀족이나 평민의 이익을 위해 혁명에 앞장섰다. 혁명의 공로를 인정받아 팡데옹에 1호로 안장되는 영광을 얻었으나 그 후 루이16세와 비밀거래가 탄로나 팡데옹에서 이장되어 공동묘지로 직행했다. 혁명과 민중을 배반했으니 당연한
조치다.
그래도 미라보는 다리라도 하나 얻어 걸렸으나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것조차 없다. 로베스피에르
지하철 역은 있더라.
수많은 다리 중에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퐁 알렉상드르 3세다. 그는 러시아 황제로 프랑스와 공조를 성사시킨 공적을 인정받아 다리 한 개 얻어 걸렸다. 알렉상드르3세 다리 건너로 황금색 돔을 머리에 인 건물이 있다. 앵발리드(Invalides)다.
퐁 알렉상드로3세, 오른쪽으로 보이는 돔이 앵발리드.
앵발리드는 군사박물관 겸 군인으로 공적을 세운 인물들을 지하에 모셔 놓았다. 나폴레옹 묘도 있다. 앵발리드는 루이 14가 세운 군 병원으로 상이군인들 치료,요양을 담당했다. 지금도 건물의 일부는 군 요양시설로 사용된다.
앵발리드 청동 대포, 일차대전 종전 기념식에 축포를 쏜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앵발리드 처음 갈 때 마침 나폴레옹 특별전시기간이었다.
앵발리드는 프랑스 대혁명 때 군중들이 몰려가 무기를 탈취해 무장을 한 곳이다. 무장한
군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 시켜 전제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이런 봉기의 전통이 있어 지금도 앵발리드 부근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단골 시위장소다.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부근에는 이렇게 근사한 오페라 하우스가 생겼다.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세웠다.
작년 5월 부르키나파소에서 테러단체에 억류된 인질을 구출하다 전사한 위베르 특공대원들의
장례식도 앨발리드에서 거행되었다. 1차대전 종전 기념일 행사도 앵발리드에서 열린다.
앵발리드에는 나폴레옹이 잠들고 있다. 영국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귀양살이하다
죽은 나폴레옹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 시신 돌려주면 지지자들이 무덤 앞에 모여 무슨 짓을 할지 뻔하기 때문이다.죽은 지 21년만에 시신이 돌아왔다. 루이
필립왕이 영국과 교섭 끝에 시신을 돌려받기로 했다.
히틀러가 파리 점령후 존경하는 나폴레옹 묘 앞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지냈다고 전해진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묻혀 있는 나폴레옹 아들의 시신도 돌려주었다.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곳
황제의 시신이 특별 제작된 범선에 실려 세느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 늙어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이 근위병 복장을 차려
입고 이날만큼은 허리를 꽂꽂히 세우고 강변에 도열해 황제를 맞이했다. 황제의 시신은 에뜨왈 광장(지금은 샤르르 드골 광장이라 부른다)의 개선문을 통과해 샹드리제 거리를 지나 앵발리드에 안장되었다.
개선문 앞에서 칼바도스를 들고. 나폴레옹 시신이 개선문을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