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 정국희
건조한 바지가
절뚝거리며 내 옆을 걸어간다
날카로운 공기에
시선을 집중시킨 채
보폭은 무겁게 혹은, 흔들흔들
긴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발 닳는 자리마다
점점이 떨어졌을 먹먹한 통증
다독다독 다스리며 걸어 다녔을까
간혹 다른 느낌으로
두 다리 성한 듯 걸어도 보았을까
죄의 곁에도 안 가본 것이
단지 태어났다는 원죄만으로
짜부러진 생 절뚝절뚝 싣고 다녔을
어긋진 두 다리
저 두 다리에
눈치없는 눈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을 때마다
짧은 한 쪽 다리 무시로 늘려 보았을
내 동생의 뼈아픈 통증이
가슴을 세게 후려친다
<創造文學>으로 등단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 시부문 입상
미주 시문학회 회원
<시와 사람들> 同人
미주 한국문인협회 이사
詩集으로, <맨살나무 숲에서>
현재 美 L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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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그리고 한 생각> 저는 믿는 종교도 없으면서, '原罪' 하면... 우선은 그것의 사(赦)함을 위한 예수님의 고난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분의 보혈(寶血)도... 보행 장애자의 절뚝거리는 걸음을 통해서 문득, 환기(喚起)되는 원죄에 관한 상념이 과장되지 않은 어조(語調)로 잔잔하게 펼쳐지네요. 결국, 그런 아픈 시선(視線)은 흘러간 세월을 딛고 보행 장애를 지녔던 동생의 아픔에 머무네요. 어쩌면, 그런 동생 때문에 창피감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자신에 대한 뼈저린 회한(悔恨)과 함께 말이죠. 사실, 원죄라는 건 불구(不具)한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천형(天刑)과도 같지요. 어쩌겠어요. 우린 모두 그 원죄를 갖고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다만, 어떤 이들에겐 영혼의 몫에 더불어 육신의 몫까지 더 해서 짊어지고 나오는 것을. 즉, 원죄는 피할 수 없는 [원천적인 아픔]인 거죠. 일찌기, 예술과 인간가치를 말했던[멜빈 레이더 Melvin Rader] 같은 이는 인간생활을 일러서 <관심의 체계(體系)>라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시에 있어서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이치인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삶을 관심으로 바라보고( = 통찰洞察) 발언하는 [시인의 갈앉은 목소리]에서 (하늘의 그분 사랑을 통한) 삶의 근원적 고통과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삶이 드리우는 원죄의 아픔을 직시(直視)하는, 詩心에 빈곤한 내 영혼도 깊은 느낌으로 머물다 갑니다. - 희선,
Road
* 시를 감상하니, 하늘나라 먼저 간 동생들 생각도 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