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 밤에는 어둠 속의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 나는 그 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메리 프라이,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오>(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6년 전, 서해바다에서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오늘까지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날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 250명(교사 14명)의 죽음이다. 그들의 죽음으로 부모형제들의 가슴은 지금도 찢어지는듯한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세월호 침몰 사건을 회상하면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 하려고 한다. 또한 어린 학생들의 죽음과 함께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인간의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 보려고 한다.
예수의 부활은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천국)로 이주해 거기에서 영원히 산다는 영혼 불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셀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광활한 밤하늘을 보자! 우리의 우주 안에 수천억개의 은하계와 각 은하계 안에 수천억 개의 별이 있다.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광대하다. 우주세계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며, 상중하 층도 없다. 또한 우주는 어떤 모양인지조차 알 수 없다. 우리의 우주세계 안에 전통적인 종교들이 맹신하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에 경계는 없다. 인간이 속해 있는 별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크기는 시속 수만km로 비행하는 우주선이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수십년이 걸릴 정도로 크다. 또한 우리의 태양계는 마치 돔모양의 실내 야구장같은 은하계 안에서 작은 먼지 정도밖에 안된다. 다시 말해, 우주 세계의 규모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지구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 이 세계 지구를 떠나 다른 세계로 이주해 가서 거기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은 우주세계에 대해 무지했던 삼층 세계관의 고대인들이 죽음의 공포와 생존의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꿈꾸었던 초자연적인 신화에 불과하다.
성서가 밝히는 예수 부활의 메시지는 초자연적이거나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믿어야만 하는 교리도 아니다. 우주진화 세계관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며 살아가는21세기의 현대인들은 예수 부활의 이야기를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1) 인간은 우주먼지에서 출현했으며,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계획한대로 창조한 생물종이 아니다. (2) 죽음은 인간의 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최종적이다.
(1): 인간은 우주먼지에서 출현했다!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계획한대로 창조한 생물종이 아니다!
우리의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출현했다. 태초에 우주 공간을 떠돌아 다니던 미세먼지(원소)들이 고압과 고열에서 응집했다가 거대한 폭발(빅뱅)이 일어나 별들이 탄생했다. 장구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일어나는 별들의 폭발(죽음)로 새로운 별들이 등장했다. 수천억 개의 별들이 하나의 은하계를 이루었고, 우주진화 과정을 통해 수천 억개의 은하계가 등장했다. 45억5천만 년 전, 우리의 은하계에 태양계가 출현했으며, 여기에 45억년 전 지구가 등장했다. 우주진화 과정은 계속되었으며 인간의 조상 현대 호모싸이엔스 인간은 20-30만년 전 지구에 등장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빅뱅 없이 출현할 수 없었으며, 인간의 기원은 우주먼지이다. 인간의 몸에는 138억 년의 우주 DNA가 있다. 지난 138억 년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육체적인 부활이란 없었으며 또한 내세의 다른 세계라는 것도 없었으며, 이런 것들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주 진화적 세계관에 따르면, 고대 종교들이 상상했던 하늘 밖 다른 세계에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하느님/야훼/알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인들이 믿었던 삼층 세계관의 하느님은 지난 2-3백년 동안 과학이 발견한 우주 이야기 즉 공개적 계시의 현실에 적합하지 않으며, 더욱이 부족적인 특정 종교의 하느님은 수천억 개의 별들을 포함하고 있는 은하계와 수천억 개의 은하계를 포함하고 있는 광대한 우주를 포용하기에 너무 부족적이고 협소하고 편협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느님은 오직 기독교인만, 회교도인만, 유대교인만 구원하는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우주진화 세계관에 따른 하느님의 의미는 생명과 죽음, 구원과 징벌, 거룩과 세속, 흑과 백 그리고 더럽고 깨끗함의 차별, 종교차별, 인종차별, 남여차별, 성적본능차별,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의 차별, 등등 인간들이 쌓아놓은 생존의 경계들을 넘어 모든 것을 너그럽게 우주적으로 포용하고 통합한다.
칼 세강(Carl Sagan)이 <코스모스>(Cosmos)라는 도큐멘터리를 텔레비젼에서 방영했을 때에 어느 여성은 우주의 출현을 보면서 자신의 생애가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나는 우주와 만물과 모든 생명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우주먼지로 만들어졌고, 죽은 후에 다시 우주먼지로 돌아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생애를 변화시켰습니다.” 138억년 전 빅뱅 이후에 시작된 핵융합이 없었더라면 복합적인 원자들과 분자들과 세포들과 지구상의 지층들과 생물들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과학의 공개적 계시없이, 별들은 아주 멀리 떨어진 태양들이고 유한하며, 오래 전에 죽은 별들은 우리 자신들의 조상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주먼지에서 만들어졌다는 우리의 혈통적인 뿌리에 대한 과학적인 이야기를 이해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족보가 138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고 있다. 과학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우주와 생명의 출현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우주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인류 공통의 창조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우주먼지에서 왔고, 우주먼지로 돌아간다는 공개적 계시는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우주적으로 이해하도록 요청한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삼층 세계관의 고대인들이 성서에 기록한 예수 부활의 이야기를,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이주해가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2) 죽음은 인간의 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최종적인 것이다!
생명은 본능적으로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고 성숙해지려고 용솟음친다. 그러나 생명은 더 성숙한 단계로 발전할때에 댓가를 치른다. 예를 들자면, 단세포 생명체에서 다세포 생명체의 단계로 진화할때에 죽음이란 댓가가 따른다. 생명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신경조직의 진화의 댓가이다. 또한 인간의 두려움과 욕심은 인식력의 댓가이다. 이러한 진화과정 속에서 2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자아의식을 지닌 특이한 생물종이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고,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해 염려하고 준비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인간은 생존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운다. 무엇보다 인간은 제한적인 수명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 즉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하늘 위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신들의 세계를 상상하고 동경하며 삼층 세계관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138억 년의 우주진화를 발견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바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이 속해 있는 우주세계는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했으며,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팽창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21세기의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종교의 기능은 죽음 후의 내세적인 다른 세계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어떻게 사는냐에 촛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종교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교리와 믿음을 강제적으로 주입시키기 보다는, 생명과 죽음의 참 의미를 바르게 일깨워주고,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야 한다.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인간의 죽음은 전통적인 교회기독교의 믿음체계가 만든 원죄-회개-대속의 구원론과 아무 상관이 없다. 죽음은 우주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우주진화 세계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을 정직하게 자유하게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은 삼층 세계관적 신앙의 부산물인 천당과 지옥, 죄와 징벌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진화론이 발표되기 전까지만해도 생물학자들은 맘모스같은 생물종들이 멸종한 것도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착각했다. 다시 말해, 왜 생물종이 멸종했는지에 대해 옳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무도 생명체의 죽음에 대해 만족할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직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던 한계는 하느님이 미리 설계한대로 생명을 창조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1859년에 찰스 다윈이 생물종의 죽음은 생명의 진화에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해답을 찾았다. 다윈은 자신의 <종의 기원>이란 책에서 생명체들이 장구한 세월 속에서 연속성과 다양성과 복잡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생명체의 죽음이라는 진화론을 발표했다.
개체 생명의 발생으로부터 형태 형성을 연구하는 발생학(embryology)에 의하면 생명체의 성장은 세포의 죽음없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세포들의 죽음은 우리의 건강한 몸은 물론 암예방의 필수적이다. 또한 생태학은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한 개체의 죽음은 다른 개체들의 새로운 생명을 위한 기초가 된다.
생태학에 따르면 생명과 죽음은 함께 공존하는 우주의 법칙이다. 우주 전체는 탄생과 죽음이 균형을 이루어 존재할 수 있다. 삼층 세계관에서 기록된 기독교 신약성서에 “한 사람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온 것같이 사람들이 모두 죄를 범하였음으로 죽음이 온 인류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12)라고 말하지만,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느님이 죽음을 만들어 세상에 넣어 준 것으로 된다. 그러나 우주에 죽음이 생겨난 원인은 인간의 죄 때문도 아니고, 하느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다만 우주가 출현하면서부터 생겨난 자연적이고 창조적인 현상일뿐이다. 삼층 세계관의 종교에서 죽음을 하느님의 예정된 설계 또는 하느님의 징벌 또는 최후의 심판으로 믿는 것은 21세기에 비상식적인 일이다. 우주 진화 세계관에서 생명은 죽음없이 존재할 수 없고, 계속될 수도 없다. 죽음은 생명에게 소중한 선물이며 축복이고, 자연스럽고 성스러운 우주의 법칙이다.
우리의 조상인 태초의 별들이 죽지 않았다면,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집 지구는 존재할 수 없었다.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우주의 실제적인 현실이다. 또한 죽은 후에 댜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나의 죽음이 있어야 다른 생명의 시작이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면 다른 생명의 시작이 불가능하다. 나의 생명은 우주 전체를 위해 최종적이다.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죽지 않으면 우주세계는 혼돈과 파멸에 이른다. 기독교인들은 성서에 기록된 예수 부활 이야기를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산다는 거짓말로 왜곡시킨 믿음체계의 상업적인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죽음의 의미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자연적이고 창조적이다. 고대 종교들이 이해하던 윤회론 또는 몸의 부활은 우주진화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론이다. 하나의 생명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한 생명의 죽음은 전체 생명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개체의 죽음은 전체의 생명을 위한 우주의 창조적인 법칙이다. 죽음은 생명의 순환의 중요한 부분이며, 성스러운 자연 현상이다. 두려움과 욕심을 내려놓자!
인간의 본성과 생명의 출현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더 넓게 확장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은 광대한 우주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우주라는 하나의 생명의 망의 개체들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가 다른 가정에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어느 날 자신의 정체성과 고향이 어딘지를 발견한 것과 같다. 인간은 우주먼지에서 만들어졌다는 우주적 혈통을 인식하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은 새롭게 변화되며, 죽음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에서 자유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 현대 기독교인들이 깨달아 알아야 하는 예수 부활의 메시지이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