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간) 최소 16명이 사망한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한 곳인 노바스코샤 주(州)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캐나다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또한 ‘빨간 머리 앤’의 무대이기도 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가 1904년에 펴낸 소설이자, 일본 후지TV가 1979년에 만들고 한국에도 1980~90년대에 방영됐으며, 최근엔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진 고전이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가사를 알고 있는 ‘빨간 머리 앤’의 팬이라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실제로 앤이 살았던 프린스 에드워드 섬부터 노바스코샤의 곳곳은 ‘빨간 머리 앤’ 성지 순례 코스로,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 ‘평화로운 전원’의 상징으로 통하는 이곳에서 총기 난사가 발생한 배경은 뭘까.
캐나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가브리엘 워트먼(51)을 지목했다. 그는 노바스코샤 주에 등록된 치과 기공사다. 현지 경찰은 AP통신에 “2014년 틀니 관련 방송 인터뷰에 등장했던 인물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워트먼은 범행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주유소에서 체포됐으며, 그 역시 사망했다. 경찰과 대치 과정에서 숨진 것인지 자살한 것인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경찰 제복 차림이었으며 순찰차처럼 보이는 은색 쉐보레 SUV를 몰았으나 이는 워트먼 자신이 개조한 것이라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범행을 위해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한 셈이다.
범행 동기는 아직 조사 중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첫 신고는 18일 오후 10시 30분께라고 한다. “총기를 소지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이후 12시간에 걸쳐 연쇄 총기 사건이 발생하며 최소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령으로 사람들이 거리에 적은 편이었기에 피해가 막대하지는 않았다는 아이로니컬한 분석도 나온다. 노바스코샤 주의 신종 코로나 감염자 확진자 수는 20일 현재 675명, 사망자는 9명이다.
총기 소지를 허용한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도 북미권과 영국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캐나다 전역에서 3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집단 살인”이라고 전했다. AP통신 역시 “캐나다에선 대규모 총격 사건은 드물다”며 “1989년 에콜 폴리테크닉대에서 15명이 사망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총기 규제법이 강화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리사 매컬리와 자매지간인 제니 키어스테드는 페이스북에 “리사가 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은 찢어진다”며 “이번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모든 유족에게 위로를 전한다. 너무도 힘든 날이다”라고 적었다.
이번 사건으로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23년의 경력을 가진 여성 경찰관 하이디 스티븐슨에 대한 추모 열기도 뜨겁다. 스티븐슨 경관은 두 아이의 엄마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스티븐슨은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RCMP) 소속이다. 캐나다 교민 사이먼 김 씨에 따르면 RCMP는 캐나다 내에서 두루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이번 사건의 충격파가 더 큰 이유다.
한편 노바스코샤는 라틴어로 ‘새로운 스코틀랜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허핑턴 포스트에 따르면 영어와 프랑스어를 병용하는 캐나다에 영국인과 스코틀랜드인들이 이주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추정된다는 설이 있다.
평화로운 전원이지만 그만큼 인구 유출과 고령화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고장이기도 했다. 이곳이 캐나다의 여러 지방 정부 중에서도 난민에 대해 열린 정책을 펴온 배경이기도 하다. 인구는 100만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난민 정책과 연결하는 것은 성급한 것으로 보인다. 워트먼의 범행 동기에 대한 현지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 워트먼은 난민 정착민이 아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끔찍한 상황”이라며 “모든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