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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67] 지구촌의 팬데믹 위기에서 “교회와 하느님”은 무용지물의 해로운 존재가 되었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3208 작성일 2020-04-23 10:17 조회수 2217

CBS422일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한겨레 신문이 보도했다. “개신교인 26%가 본인 또는 가족이 전도 등의 명목으로 신천지 교회와 접촉을 한 경험이 있으며, 7.6%는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신천지 교인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국민들이 인지하고 있지만, 신천지 교회는 전국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19 감염 확산의 중심지이며, 바이러스 감염을 무시하고 여전히 일요일 예배를 고집하는 개신교 교회와 이 교회에 동조하는 보수 정치인들은 한국사회의 밝은 미래에 걸림돌이 되는 해로운 존재이다. 또한 그들이 맹신하는 하늘 위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아무 쓸데없는 무용지물이다.       

 

의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19 팬데믹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린 아이들로부터 노연층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으며, 감염추세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종교 정치의 지도자들은 솔직하고 이성적인 지혜의 말로 국민들이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동적이고 보수적인 교회들과 정치인들은 오히려 국민들을 혼돈에 빠트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결과적으로 팬데믹의 위험을 가증시키고 있다.

 

특히 내세지향적인  중보교회들은 이 세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적인 협력을 무시한체 사람들에게 예배집회를 강요하고 있다. 그런 교회와 하느님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아무 쓸모가 없을뿐만 아니라 해롭다. 종교 기능하느님객체적인 존재로 맹신하거나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오직 인간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고취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은 교회와 하느님 보다 훨씬 더 힘이 있고 소중하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종교의미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잘못된 종교적 개념으로 세뇌된 교회들은 마치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을 바라는 무당집 정도로 전락했고, 예수가 경고한대로 거짓 위선 은폐로 뒤덮힌 회칠한 무덤이 되었다.

 

21세기의 참 종교의 의미와 기능은 다음과 같다: 종교의 목적은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한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부자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불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종교의 기능은 거룩한 교인과 벌레만도 못한 죄인,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분리하는 교리적인 도덕이 아니며, 성속의 경계를 초월하는 삶의 방식이다; 종교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형편과 상황에 처하더라도 참 인간됨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종교는 내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영원함을 추구하는 현세적인 삶의 길이다; 종교는 불확실성의 우주에서 내가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에 있고, 어떻게 사느냐의 지혜를 탐구하는 것이다; 종교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기 보다, 모든 개체들의 우주적인 통합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종교타자 또는 중개인이 만든 공식과 교리와 형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거나,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자신의 깨달음과 체험을 통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단 또는 회의주의라고 정죄하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평범한 삶의 언어 행위이다. 종교는 특정 교리와 전통에 순종하고 믿는 것이 아니다. Religion이란 말이 최초로 동양에 들어왔을 때 번역하기가 대단히 힘들었으며, 결국 종교(宗敎)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번역이 못된다. Religion이란 말의 어원은 relationship(관계)이다. 종교는 두려움과 편견과 우월주의와 배타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개체들이 통합하여 전체를 이루어 온전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종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다시 말해 전체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인간의 성숙한 삶을 위한 지혜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종교이다. 특히 종교는 타율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율적인 깨달음이다.

 

종교는 교회나 성전이나 사찰을 찾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세속적인 세상에서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행위로부터 자신의 신앙을, 또한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자신의 믿음을 분리시킬 수 없다. 하느님을 위한 시간과 나 자신을 위한 시간과 내 이웃을 위한 시간을 따로따로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경계 넘어 숨쉬고 움직이고 사는 모든 것이 종교이다. 다시 말해, 생각하고 창조적이고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호모싸피엔즈 인간은 종교적인 생물종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난 1세기 동안에 인류사회는 엄청난 격동 변혁을 가져왔다. 첨단과학의 발달은 물론 신학, 철학, 예술, 문화의 분야가 초고속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이 거대한 지구촌이 이제는 하루 생활권이 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지난년 동안에 수없이 많은 전쟁테러 사건들이 있었다. 큰 전쟁들만 열거해도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발칸반도전쟁, 걸프전쟁, 이락과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으로 수 천만 명이 죽었으며, 아흐슈비츠 포로수용소 대학살과 9/11 뉴욕의 테러사건과 북아일랜드, 아프리카,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등 세계 도처에서의 테러들로 인해서 무고한 생명들이 수 백만 명 살해되었다. 대부분의 전쟁과 테러는 종교적 분쟁들이었다. 

 

더욱이 생명체들과 자연이 공존하는 인류의 집 지구생태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경고하기를 이대로 가면 지구는 멸망한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오직 유일하게 지구뿐인 데 지구가 죽으면 갈데올데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경고다. 지구는 땅과 물과 공기와 불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인간과 동물과 식물과 광물의 생명줄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개체가 죽으면 전체가 죽는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인간 만이 홀로 생존할 수 없다. 이 세계는 심판받아 멸망할 세상이라고 못본체 하거나, 버려두고 다른 세계로 이주해 갈 수 없다. 이 세계는 최종적이며, 이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다.    

 

미국의 종교철학자 로열 루(Loyal Rue)는 자신의 저서 <Religion Is Not About God>에서, 종교는 인간에 대한 것이지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다시 말해, 종교인간과 다른 생명들이 살고있는 자연세계를 존중하고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이지, 하늘 밖의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성스러운 인간세계 자연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하느님을 살아내는 것이다. 하느님이란 믿어야만 하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방식이고 표현이다. 하느님 따로 있고, 인간세계 따로 있고, 자연세계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종교 하느님인간의 온전함을 위해 있다. 수세기 동안 인간을 통제했던 하느님에 대한 신학인간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을 위한 학문이 되어야 하고, 인간의 본성에 근거해야 한다. 따라서 참 종교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쳐서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깨닫고, 정의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종교의 기능은 마치 바이올린의 활처럼 인간의 본성이라는 줄들 위를 오가며 사람들과 사회와 자연이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종교는 항상 이러한 상호작용인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경고하기를, 다른 세계에 대한 망상을 떨쳐버리고 이 세계에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라고 도전한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제도경제적인 구조에 대해 민감하고 심사숙고하기를 요청한다. 예수의 정신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평등 사회에 도전하고 있다. 예수는 억울하게 피해를 받는 순진한 사람과 교묘하게 이익을 챙기는 약싹빠른 사람이 활개치는 불공평한 사회에 엄중하게 경고한다. 예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겨서 이것을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경고한다. 예수는 멕시코와 남미와 중국의 농장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루에 버는 임금에 비해서 북미의 기업들은 엄청난 수익을 챙기고 있는 불공정한 시장구조에 경고한다. 예수는 기독교 정복자들과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은 물론 전 세계 도처에서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거나 교묘하게 헐값에 사들이고 정복한 후에, 하느님이 축복하신 땅이라고 그리고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자랑하는 기독교인들의 오만과 편견에 신랄하게 경고한다. 우리는 곧잘 대기업들의 CEO들과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을 비난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는 남미와 아시아와 동유럽나라들의 나이 어린 직공들이 하루에 1불도 안되는 임금으로 만든 수 백 불짜리를 걸치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이 어린 직공들은 불공평한 경제구조에 대해서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기독교하느님을 위한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인 종교가 아니다. 예수의 기독교는 땅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과 생명들을 위한 생명의 종교이다. 기독교믿음의 종교가 아니다. 특별히 예수는 하느님과 교리와 성전과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자신이 몸소 살아냈다. 중보교회가 만든 차별적이고 우월적인 교회기독교 지난 1700년 동안 교회와 하느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비기독교인들을 야만인과 이방인과 악마로 규정하고 그들들 탄압하고 착취하고 무수히 살해했다. 오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진심으로 예수를 따른다면 자신의 신앙과 교회와 심지어는 하느님을 포기하더라도 인간과 모든 생명들의 존엄성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과 삶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위기에서 하느님의미가 무엇이며, 언제 어디에서 하느님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나? 하느님의 징표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생명들과 자연 사이에 생명의 망이라는 깊은 관계가 살아있는 것이다. 인종 종교경계 넘어 사람들 사이에 이기심과 사심 없는 연민의 사랑관계가 없으면 하느님무용지물이 되어 죽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상호의존관계가 없는 교회와 종교하느님은 이미 죽은 송장과 같다. 특히 전세계가 바이러스 범지구적인 유행으로 최악의 위기에 빠져있는 때에 인간의 생명 존엄성 교회 예배하느님 중에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종교하느님정치 경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되면 거짓 은폐통제 착취 전쟁테러가 일어난다. 불평등한 인종차별 종교차별 성차별 빈부차별에 대한 항거가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역사적 예수하느님 나라 운동과 한국 근대사에서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일어났다. 1860최제우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을 품고,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므로 모든 사람은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의 사상을 전개하여 신흥종교 동학(東學)을 창건했다. 인내천의 원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지상천국의 이념이며,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자는 비전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과 평등사상이다.

 

역사적 예수성전종교로마제국의 혹독한 탄압착취에 항거하여 인내천 천심즉인심하느님 나라 운동의 핵심으로 삼았다. 예수는 하느님과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정확히 공평하게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정신에 기초한 기독교는 내세적인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하고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정직과 양심과 공정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현실적이며 현세적인 종교이며, 조건없는 포용과 사심없는 사랑을 살아내는 삶의 종교이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19 팬데믹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종교는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종교의 기능 인간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존중하고, 사람들이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돕는 것이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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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ata  |  2020-04-2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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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

현대 문명과 과학을 잘 융화하신 글입니다.
좀 쉽게 안들어 오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목사님이 이런글을 쓰신거에 놀랍습니다.

그럼 제가 과학을 융화하신 점에서,
한가지 골치 아픈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나는 내일 죄를 더 짓는 나로 살수도 있고,
또는 내일 회계하는 나로 살수가 있습니다.

정확한 과학으론 고차원에서는 두계가 아니 더 많은
내가 실제적으로 존제할 겁니다.

더 쉽게 말하면, 오늘의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또 착한 사람이 되는 양면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럼, 지금 나는 아무리 회계를 해도 악행을 하는
내가 미래에 엄현히 존재합니다.

다른말론, 하나님의 벌또는 상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바꿀수 없는 거고,

그중 상받은 나와, 벌받는 내가
지금 동시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르게 설명을 하면, 오늘의 나는 과거가 정해져 있듯이,
미래도 다양하게 정해져 있고,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는게 아니라,
그 수많은 경우의 수중

하나에 미래의 나로
그냥 필연으로 가게 된다는 겁니다.

즉 거기에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영향을 끼칠순 없고,
오늘이 내일을 바꿀수 없다는 가정하에,
신의 존재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신의 존재는 우릴 끈임없이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라고
가르칩니다만, 미래를 바꾸길...

현 과학적으로만, 보면,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를 바꿀수 없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미래의 모습중 하나로 갈뿐입니다.

즉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쁜사람과 좋은 사람이 동시에
정해진 겁니다.

마치 사다기 타기 처럼,
나에게 사다리는 다 결정되엇고,
그중에 어떤걸 택해도 이미 결과가 정해졌단 말이죠.
물론 어떤 사다리를 타냐는 결정은
또 과거에서 보면 그냥 경우의 수중 하나가 되지요.

즉 우린 개인이 실모습은 수많은 나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 까진 과학이고,

그럼 질문은 과학적으로 무엇을 바꿀수 있나요?
종교의 가치는 삶을 하루 하루 좋게 바꾸는건데요?
현재의 나는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미래와 함께 정해져 있는데요?


하지만, 신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은 안되지많요.
뷴명 제 경험엔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논리가 성립될수 잇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Utata  |  2020-04-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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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게 해드린것 같습니다.
참어려운 질문을 드렸습니다.

많은 의문이 종교에 있을수 있습니다. 기독교도 포함해서요.

다만,

그걸 현대의 과학으로 연결 해서 비과학적이라고 비판을 하면,
사실 제가 올려드린 윗글에 대한 과학적인 답이 나올수 없습니다.

아마 제글에 답을 명확하게 다시면, 대단한 일이기도 합니다.

전 여기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싶습니다.

엄마나 아빠의 사랑이 과학으로 과연 어떻게 설명이 될까 싶습니다.
과학으로 보이지도 존재하지 않는 사링을 말이죠.

신의 사랑은 우리 맘속엔 너무나 선명하게 있습니다.
그게 우릴 나쁜일을 못하게 계속 막는 힘이기도 합니다.

과학하고 영의 세계는 불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쩜 현 과학을 넘는 세로운 지식일진 몰라도 말입니다.

불쾌하시진 않으셧으면, 아직도 명쾌한 답을 들어본적이 없으니까요.

물론 주제넘었습니다.

늘봄  |  2020-04-24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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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분리 또는 통합에 대해서 2015년에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씨엔드림 종이 신문에 종교칼럼으로 상세하게 글을 올렸습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세뇌되어 있는 적어도 2천년의 삼층 세계관을 1년에 걸친 칼럼으로 바꾸어 놓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저의 칼럼을 다시 읽어 주시면 오늘 여기에 올린 저의 생각을 좀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통적인 종교, 제도적인 종교, 삼층 세계관의 종교, 과학과 철저하게 분리된 종교는 쉽게 말해서 마치 복권을 산 기분과 비슷합니다. 즉 낡은 종교는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수천만분의 일 정도의 확률을 갖는 복권당첨에 크게 기대를 겁니다. 복권을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마치 복권에 당첨된듯한 망상에 젖어듭니다. 인습적인 종교는 마치 마약에 취했거나 복권을 산듯한 기분에 젖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의 참된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과학이 인간의 온전한 삶을 위한 절대적인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대단히 과학적인 생물종입니다. 즉 이성적이고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동물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과학을 살아가고 인간의 본성이 과학입니다. 과학은 인간의 정체성입니다.

종교는 과학의 기초 위에서 생각되어야 설득력과 효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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