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왼쪽 둘째)이 27일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콜롬비아주 대법원의 재판을 받은 뒤 나오고 있다. 그의 왼쪽 발목에 위치추적기가 달려 있다. 밴쿠버/로이터 연합뉴스
멍완저우(48) 화웨이 부회장의 미국 송환을 판단하는 재판에서 멍 부회장이 불리한 판단을 받았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어긴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멍 부회장의 고국행은 기약을 할 수 없게 됐다. 중국과 캐나다의 관계도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 “멍 부회장 행위, 캐나다서도 범죄될 수도”…쌍방 가벌성 인정
<에이피>(AP) 통신 등에 따르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대법원의 헤더 홈즈 부대법원장은 27일(현지시각) 멍 부회장의 범죄인 인도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에서, 미국에서 기소된 멍 부회장의 혐의가 캐나다에서도 범죄가 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범죄인 인도가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의 핵심 쟁점은 멍 부회장의 행위가 ‘쌍방 가벌성’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쌍방 가벌성은 범죄인 인도를 청구한 청구국과 피청구국 모두에서 범죄가 성립해야 신병 인도가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멍 부회장의 행위를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도 범죄 혐의로 봐야 멍 부회장을 미국에 넘길 수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멍 부회장이 이란과의 사업을 위해 에이치에스비시(HSBC) 은행을 속이는 금융 사기를 저질렀다며 이는 캐나다에서도 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멍 부회장 쪽은 캐나다에는 이란 제재가 없어, 이 상황에서는 어떤 사기 범죄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쌍방 가벌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캐나다 법원은 이란 제재 법안과 상관없이 멍 부회장이 은행을 속인 것 자체가 사기에 해당하며 이는 캐나다에서도 범죄가 된다고 판단했다. 헤더 홈즈 부대법원장은 “멍 부회장 쪽 주장은 사기와 다른 경제적 범죄와 관련한 범죄인 인도에서 캐나다의 국제적 의무 이행 능력을 심각히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왼쪽 발목에 위치추적기를 찬 채 재판에 참여한 멍 부회장은 재판부 판단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웨이 쪽은 법원 결정이 실망스럽다면서도 캐나다 사법 체계가 궁극적으로 멍 부회장의 결백을 증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멍 부회장은 범죄인 인도 재판에서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앞으로 캐나다 법원은 2단계 심리로 넘어가, 캐나다 당국이 멍 부회장 체포 당시 법을 위반해 그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판단하게 된다. 이 재판은 다음달 재개될 예정이며, 최종 변론은 오는 9월 말이나 10월초로 예상된다.
■ “캐나다는 미국 동업자”…중국-캐나다 관계 더 악화할 듯
이번 결정으로 캐나다와 중국 간 관계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오타와에 있는 중국 대사관은 이날 “캐나다는 화웨이와 중국 첨단 기업을 망치려는 미국의 동업자로 행동해 왔다”며 “더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말고 멍 부회장을 즉시 석방하라”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멍 부회장이 체포된 뒤 캐나다 전직 외교관 2명을 구속했고, 카놀라유 씨앗 등 캐나다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런정페이 회장의 딸로 ’화웨이 공주’라 불리는 멍 부회장은 지난 2018년 12월 벤쿠버에서 미국의 요청을 받은 캐나다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미국 검찰은 멍 부회장이 홍콩의 위장회사를 활용해 이란에 장비를 수출하는 등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그가 체포된 지 한달여 만인 지난해 1월 멍 부회장 외에 화웨이와 관계사 2곳 등을 사기, 기술 절취, 사법 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고, 캐나다 쪽에 범죄인 인도를 요구했다.
멍 부회장은 체포된지 10여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캐나다 내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미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제기된 혐의도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