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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교회동창회 81] 잘해야 문제 투성이고, 못하면 우스개 소리 밖에 안되는 “하느님의 말씀”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3615 작성일 2020-07-12 06:51 조회수 2005

성서에 따르면 노예로 파는 것은 허용이 되지만(출애굽기 21:7) 아들을 노예로 팔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또한 이웃 나라로부터 온 노예만 소유할 수 있는데(레위기 25:44) 그렇다면 캐나다인은 미국과 멕시코에서만 노예를 데려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서에서 사형집행이 가능한 죄목들은 안식일을 어기거나(출애굽기 35:2), 저주를 하거나(레위기 24:13-14), 불경스러운 경우(레위기 24:16)인데 그렇다면 교도소의 사형집행관들은 매일 초과 근무를 해야 할 것이다. 레위기에 돼지 가죽으로 만든 것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으니 구기 종목의 운동선수들은 사형에 해당된다. 성서에는 고집 불통이고 부모 말을 안따르는 아이들은 성문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한다.(신명기 21:18-21) 이런 괴상하고 말이 되지 않는 구절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구절들이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 있나?

 

구약성서모세모세 5,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모세 5경이 처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모세가 죽은 후 300년이 지난 후였다. 모세 5경은 적어도 500년 동안 여러 자료를 수집해서 작성한 것이며, 특히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과 장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어느 저자도 자신의 죽음 순간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 없다. 또한 다윗시편 저자가 아니다. 성서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밝히기를, 시편의 대부분은 유대 역사상 기원전 596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함께 시작되어 기원전 4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바빌론의 포로 기간에 작성되었다. 즉 다윗 왕이 죽은 후 400년에서 600년 사이의 기간에 해당된다.

 

성서에서 간질병 정신병이 모두 귀신들림으로 생기고, 벙어리라고 부르는 심한 귀머거리는 악령이 혀를 묶어 놓아서 생긴다고 주장하는 구절들을 하느님의 말씀권위를 가졌다거나 혹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믿는 것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다시 말해, 그런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수백 년 전에 폐기된  낡은 지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물 위를 걷거나 폭풍우를 잠재우고 물을 포도주로 변형시키는 등 기적을 행하는 초인으로 나타난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하느님은 기원후 1세기에 우주의 자연의 법칙들을 모두 일시 정지시켜 예수가 신적인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도록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예수의 삶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일 뿐이다. 왜냐하면 성서전체적으로 깔려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심층적인 의미는 문자적인 기록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가슴과 머리에서 깨달아 알게 된 우주적이고 통합적 삶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바울 서신들에서 바울은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신적 갈등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성서에 기록된 바울의 말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가당치도 않다. 바울하느님을 혼동할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말과 하느님의 말씀을 구별 못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성서에서 바울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그가 신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바울의 편지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예배시간에 여인들은 머리에 무엇을 쓰라고 한 충고나, 아담과 하와의 고대 히브리 전설이 여성에 대한 남성 우월성을 증명한다는 바울의 말들이 있다(고린도전서 11:2-16). 바울이나 그의 제자가 여인남편에게 복종하고, 은 그 주인에게 복종하고, 아이부모에게 복종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영원한 하느님의 말씀이 절대로 될 수 없다. 이것은 가치 없는 문화적 성차별주의, 인간에 대한 부도덕한 억압, 좋은 부모의 개념에 대한 오류만을 나타낼 뿐이다. 하느님이 이런 무가치한 개념으로 인식된다면 그런 하느님은 분명 제대로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주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대로, 복음서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 주후70년경에 마가복음서가 가장 먼저 기록되었고, 20-40년 후에 기록된 마태복음서누가복음서는 마가복음서를 대폭 인용한 것이다. 마태누가는 마가복음서의 내용을 임의로 바꾸고, 확장하고, 심지어 누락시킨 후에도, 성서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억측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방식은 결코 하느님의 말씀또는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작성된 것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마태누가가 주기적으로 마가의 서술과 의견을 달리했고, 심지어는 정반대의 기술을 했다. 특히 누가 마가의 기록을 멋대로 다루었으며 문법적 오류까지 편집할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마가 16:8)로 끝냈지만, 누가는 이를 빼버렸다(누가 24:1-12). 마가복음서 3:7-10누가복음서 6:17-18을 비교해보면, 누가마가의 본문을 마음대로 뜯어고쳤는지를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복음서 저자들은 분명히 그들이 쓰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복음서 저자들은 그들의 히브리 맥락으로부터 성경적 이야기를 엮어 내어, 예수가 예언자들의 예언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신구약 성서원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늘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성서는 수백년에 걸쳐 수많은 필사가들이 사본에서 사본으로 수없이 복사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본들 중에 극소수를 수집하고 편집한 것이다. 물론 복음서의 원저자가 누구인지 조차 알 수 없다. 마가, 마태, 누가, 요한은 원저자의 이름이 아니며 어느 필사가가 이렇게 복음서의 제목을 달았을 뿐이다. 또한 이 이름들의 사람들은 예수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다. 필사가들은 자신들이 수집한 자료를 멋대로 변개하고 삭제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삽입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사본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성서는 앞뒤가 맞지 않으며 오류와 모순 투성이기에 하느님의 뜻또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진리를 기록했다고 할 수 없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태가 이런 짓을 제일 많이 했다. 예를 들자면,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구약성서의 이사야서(7:14)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구약 본문을 번역하면서 동정녀가 잉태하여”(마태 1:23)라고 했는데, 이사야서에는 동정녀”(virgin)라는 말을 쓰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젊은 여인이 아이가 있어라고 기록하고 있다. 21세기에 젊은 여인이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동정녀가 아니다. 또한 마태는 구약성서에서 한 거룩한 사람을 나실인(nazirite)이라고 지칭한 부분(사사기 13:5)이나 가지”(branch)를 뜻하는 나시르(nasir)라는 말을 사용한 부분(사사기 11:1) 중 하나를 조작하여 히브리(구약) 성서가 수세기 전에 예수가 나사렛(Nazareth)이라는 마을에서 자라게 될 것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복음서 저자라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한 말장난이다.

 

예수가 죽은 후에 그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대 교회에서 기독교 신학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후대에 교부(敎父)라고 칭했다. 이들은 누구도 성서를  반박할 수 없는 가설을 창안하기를 성서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불안한 가설의 기초 위에 기독교 신조, 교리, 도그마를 만들어,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했다. 따라서 신조와 교리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예수 승천이 포함되었는데, 오늘날 세계적인 성서학자들 중에 이 두 이야기가 글자 그대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예수가 행한 일을 예언자들이 예언했다고 믿는 학자도 없다. 이는 모두 성서에 대한 엄청난 왜곡일 뿐이다. 초대 교회에서 예수의 신성에 대한 논쟁은 교부들이 만든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는 예수가 죽은 후 40-70년이 지나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히브리 성서와 서로 일치하도록 기록되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함에 따라 현대 기독교 교회의 많은 교리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성서문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전통적인 주장은 잘해야 문제 투성이고, 못하면 우스개 소리 밖에 안된다. 이런 주장에 의존하는 성서의 권위와 그 문자적인 기록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주장하는 한 기독교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성서 비평학에 기초한 성서에 대한 분명한 진실을 신경질적으로 부정하는 복음주의 개신교보수 가톨릭 같은 우익 교회들은 정말로 희망이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런 교회에 권위와 확신을 갈망하는 수천 명의 신자들이 모여들어 대형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의 내부적 질병의 또 다른 증상일 뿐이며, 교회 밖 세속적인 세상의 현실을 인정하기 싫거나 도피하는 비겁함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불행하게도 2천년 전 이 땅 위에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이고 제도적인 종교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하게 공평하게 정의롭게 조건없는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자고 외쳤던 역사적 예수가 잔혹하게 당했던 것처럼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 우주적이고 통합적 메시지를 선포하면 이 메시지를 거부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성서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에 의해 촉발된 가장 큰 비극교회 기독교에 임박한 몰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비참한 비극성서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고통과 만행에 대한 도덕적 갈등에 있다. 오늘 기독교 교회는 인류 역사에서 성서 악용에 대한 책임을 고백하고 스스로 개혁할 때이다.

 

제도적인 교회 기독교는 지금까지 성서에 대한 근본주의적 주장에 근거하여 권력 권위를 추구하느라 참된 인간의 의미와 생명의 의미와 하느님의 의미를 깨달아 알지 못했다. 예수가 성전을 향해 도전했던 것처럼, 기독교가 지금까지 이 참된 의미들을 숨기는 데 사용해왔던 성서교리교회전통이라는 우상은 철저하게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이것들이 파괴되면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 솔직할 수 있고, 참된 인간으로 모든 사람들이 더욱 공평하게 풍성하게 살고,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참된 인간이 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들을 축소시키고 제한하는 인종차별과 종교차별과 성차별과 성적본능차별과 빈부차별을 철저하게 거부해야 한다.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와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성서의 죄악들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과 인간과 자연과 세계를 보고,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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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  |  2020-07-1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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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최씨는 다른 복음을 전하느라 수고가 많다.
마태가 본 예수님, 마가가 본 예수님, 누가가 본 예수님인데
성경 (두루마리) 분량이 틀리다고.. 빠진게 있다는등 오류투성이라는 등 억지를 부린다.

지금 어느 목사가 설교를 하고 3명의 장로들이 다음날 생각나는 데로 적는다고 치자. 물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중요한 말씀은 일치를 하겠지만 어느 장로는 더 쓰고 어느 장로는 생략하고 적는 것이다.
생략은 이 정도로도 복음을 전달하는데 지장이 없겠다 싶어 한 것일 뿐
생략한게 짜집기고 오류 투성이라는 후대에 이해못한다는 "최씨" 보고 적은 것이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마찬가지로 성육신도 신비입니다. 우리가 믿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성령님의 도움으로, : 믿어서가 아님) 믿음에 이른 것이다
신약이라 해서 신비가 없어야 한다라는 최씨는 여전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이다.

성경에는 2930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1551곳의 지리적 장소가 나옵니다.
즉 어느 머리좋은 소설가 몇명이 적은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신약에서는 사도행전이 역사서라고 하고요 저자는 누가 입니다.
누가복음,사도행전 저자는 누가이고
사도행전에 인물,도시가 자세히 나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성지순례를 가지요)
즉 최씨가 주장하는데로 누가가 신비적으로 적었다가 역사로 바꾼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한통으로 누가~사도행전까지라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지가 엉터리로 공부하여 지 생각대로 믿으니 쯧쯧쯧
참 불쌍할 따름입니다.



늘봄  |  2020-07-1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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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들이 나를 무신론자 사탄 마귀라고 한다. 또한 이단이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나를 팔단이라고 한다. 나의 칼럼이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분노가 들끌어 올라서 온갖 엄악한 말로 위협한다. 그러나 나도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댈 정도로 분노를 터뜨렸었다.

왜냐하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성서를 신중하게 읽지 않았고, 인류의 문명발달사와 진화과학의 뇌과학과 진화심리학 등의 현대과학을 건성 듣고 수학공식 암기하듯이 대했으며 가슴 속에서 새로운 삶의 철학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것들은 철천지 원수처럼 대했다. 나는 나름대로 대단히 용감하고 씩씩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과거의 패러다임은 여지없이 폭망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구체적으로 살아내기 시작했다.

음치에 3대 원칙이 있다: (1) 박자 무시, (2) 군중 무시, (3) 자아 도취.

재미있는 것은 성서문자주의 광신자들에게도 3대 원칙이 있는데 음치의 원칙과 대단히 흡사하다:

(1) 신자들은 시대의 흐름 즉 시대의 박자를 무시하고 잘못되었거나 무지함과 무식함의 과거에 머물러 우주의 법칙인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을 역행한다. 예를 들자면, 2-3천 년 전에 성서가 기록될 때에 성서 보다 1000년 앞에 이미 창조주 하느님, 홍수 이야기, 동정녀 탄생 이야기, 부활과 승천 등등의 신화들이 두루 퍼져 있었다. 신화는 고대의 문학형식으로 이것없이 이야기를 기록할 수도 없었으며, 표현할 수도 없었다. 심하게 말해서, 유대인들의 성서는 신화를 표절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미 존재했던 신화들을 자신들의 이야기로 전환했다. 물론 어떤 부분은 숨길 수 없이 적나나하게 표절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따라서 현대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무작정 믿은 것은 음치의 박자 무시와 마찬가지다. 이것이 지난 2-3세기 동안 설득력과 효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교회가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이다. 21세기의 세계관은 우주진화 세계관이며, 성서의 세계관은 삼층천의 세계관이다. 성서의 세계관을 오늘의 세계관으로 전환해서 현대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면, 박자 무시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

(2) 성서문자주의 신자들은 교회 밖의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즉 군중을 무시하고 홀로 고고하게 거룩하게 사는 것이 마치 좋은 믿음이라는 망상에 빠져있다. 군중 무시의 원인은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너무나 심해서 자신만이 살아남으려는 이기적인 욕심의 현상이다. 예수는 원수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어찌 나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가? 나와 다른 인종, 종교, 성, 성적본능, 출신, 가정을 위해 나의 신앙과 믿음을 희생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군중 즉 세속적인 세상을 무시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행위이다.

(3)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자들은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자아 도취에 빠져있다. 나도 과거에 성서근본주의에 세뇌되어 헤어나지 못했다. 주위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옴짝달짝하지 못하는 나의 자아 도취는 너무나 견고했다. 그러나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다. 마치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되었듯이, 신학교 첫 일년이 나에게 다메섹의 경험이었다. 오래 세월 빠져있던 자아 도취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몇 개월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신학교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인내하고 3년의 과정을 마치고 안수 후에 목회지로 위임받을 때에는 그야말로 새 사람이 되어,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예배와 교육에서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의 칼럼을 읽고 심기가 대단히 불편해지고, 분노가 일어나는 신자들께서는 지난 7년 동안 CN드림 신문과 자유게시판과 문학란에 소개된 저의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간 낭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눈, 새로운 렌즈로 교체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ross  |  2020-07-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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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기승전 다른 복음의 끝판 왕이다.
공부를 많이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면 뭐 하나?
저 같은 평신도 보다도 못하는데

성서와 신화가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성서 기자가 표절인가?
그 반대가 아닌가?
그 당시 인터넷이 있나? 신화 전집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최씨는 일제 강정기 있었나?
예수님 세대에 있었나?
2020년이 지나서 지가 마태가 어쩌구 저쩌구 한다.
마태 짓거리라 했는데,,,최씨 짓거리는 어떠한가?


최씨는 오늘도 뜬 구름 잡기만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적으시란 말이다.

신약 사본이 3000쯤 된다. 거기엔 거의 일치를 한다. 몇 구절은 있고 없고 뭐 그 정도고 보편적 복음엔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외경이 있는 것은 최씨 말대로 팩트다.
그러나 최씨는 아무 구체적 말이 없다.
외경에 무슨 구절이 중요한데 이 구절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하다.
뭐 이런 내용 말이다.

신화도 마찬가지다. 뭐 비슷한게 있겠지
예를들어 어느 역사책에
마태,마가, 누가는 어느 당에서 어느 신화책에 심취에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최씨) 거기서 인용해서
뭐 이런것 말이다
그냥 뇌피셜로 카더라 하면
와 그러네요 하는 성도들이 많은가보다.

늘봄  |  2020-07-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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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던간에, 예수와 공자와 노자와 소크라테스가 무엇이라고 말했던간에, 교회 목사와 성당의 신부와 사찰의 스님이 무엇이라고 말했던간에 오늘 21세기에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차별과 분리없이 화목하게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역사적 예수는 그렇게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진리를 말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교회에서 만들어진 예수는 교회 다니는 사람만 그리고 예수를 하느님으로 믿는 사람만 구원받고 잘산다는 보상관계를 설정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새로운 의식에 깨어나서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을 인식하기 때문에 개신교인들만, 가톨릭교인만, 자기들의 교파 사람들만, 불교-회교도-힌두교인들만 구원받는다는 추악하고 비상식적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만일에 천국이 있다면 (사실은 없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갈 것입니다. 만일에 지옥이 있다면 (사실상 이것도 없지만) 모든 인간들은 거기에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는 천국에 가고, 누구는 못간다는 얄팍한 술책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속이는 종교적 장사는 더 이상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아예 일찌감치 업종을 변경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ross  |  2020-07-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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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이만희도 통일교 문선명도 아니 다른이단들도 최소한 하나님 말씀(성경)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다른 해석을 하고 있지요
아니 타 종교인들도 최소한의 예의정도는 지키지요
(혹시나 맞을지 모를까바)
그런데 이처럼 대놓고 아니라는 사람은 처음봤습니다.
아니, 안믿는것 까지는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글도 참 어이가 없습니다.
최씨의 글을 요약하자면
비슷한 신화가 나오니 성경저자가 듣고 따라한것이다.
신약은 책들 중에 그냥 모아서 짜집기 한것이다.
여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책이라면 소개를 시켜주고 거기서 무엇은 구절,장이 들어가야 하고 빼야하는지 구체적 내용이 없습니다
그냥 개인 뇌피셜로 끝입니다.

자 다시 묻습니다.
모세,마태,누가가 어느 신화책을 따라한 것입니까?
마태,누가 말을 믿어야 할까요?
2020년이 지난 뜸금없이 주장하는 동네 아저씨 말을 믿어야 할까요?
비상식적인 거짓말이면
본인만 안믿으면 되지요. 굳이 24시간 하나님말씀을 파괴하려고만 할까요?
그것이 참 궁금합니다.










늘봄  |  2020-07-1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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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초자연적 유신론적 내세적인 삼층천의 하느님은 2천-3천 년 전에 기록된 고대 성서의 문자들 속에나 존재했습니다. 오늘 21세기에 우주진화 세계관이 사회의 모든 영역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런 하느님이 지금 당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존재하는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야 하고,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하고, 부자가 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초자연적인 하느님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가다 1억분의 1로 희귀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연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자유게시판에 유신론적 하느님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듣기 쉽게 칼럼을 올렸는데 부디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오늘 그런 하느님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단지 교회 내부에서만 통용이 되는 하느님일 뿐이며, 76억 인류 세계에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하느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 시대에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실상 역사적 예수가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하느님의 의미를 가르치고 자신이 몸소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믿는 상대적 객체가 아니라,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깨닫는 궁극적인 진리, 사랑, 정의, 평화, 평등입니다. 즉 하느님이란 믿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표현입니다. 참된 인간이 되어 사람답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존재론이 아니라, 관계론입니다.

ross  |  2020-07-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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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주간에 거쳐 모세,마태,누가가 어느 신화책에 영향을 받았는지 물었건만
그냥 또 뭉트그려진 답변입니다.
이 쉬운질문에 답변을 못하시면 당신은 거짓 이야기,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 많은 외경과 신화가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걸 뜸금없이 성경저자와 연관시키는지 최씨는 참 궁금합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이런식으로 해석합니다.
동쪽이라니깐 에덴이 한국이라하고
보혜사라니깐 본인이라하고
뭐 막~ 갖다 부칩니다.
그러니 그냥 동네아저씨 뇌피셜입니다.

홍수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도 나오면 성경 저자가 카피한 것입니까?
세계 공통적으로 나오니 성경이 진실이 아닙니까?
먼저 적는자가 임자입니까?
동네 지나가는 인도사람들도 이런 주장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이런 억지 주장으로 신도들을 설득할려고 하다니.

자 다시한번 본인이 주구장창 주장해온 쉬운 질문에 답변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약은 수많은 외경, 책 중에 짜집기를 해 왔다고 주장을 하시는데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어떤 책이 빠져서 아쉽다고 하는 것입니까?

ross  |  2020-07-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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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주장
성경은 많은 책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은유다
이런사람들 때문에 역사서가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신약의 역사서는 당연 사도행전이다
최씨의 주장 : 누가는 신화적,, 은유로 적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는 하는 산으로 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 이것도 은유인가?
바울의 전도여행도 은유이고 신화인가?
누가는 신화적, 은유로 적었다가 다시 역사적,문자적으로 적었다가 역사적에서 바울이 주님을 만났을때 잠시 신화적으로 적었다가 다시 역사적으로 적었다가 뱀에 물리는 장면은 다시 신화적으로 적었다가,,

최씨가 잘 정리해서 해설해 주길 바란다.
사람 영생이 걸린 문제인데 그냥 지나치지는 않겠지,,,

늘봄  |  2020-07-16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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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성서는 역사책이나 자서전이 아닙니다. 애당초 그렇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성서저자들은 자신들의 시대 속에서 지나간 역사를 회상하면서 그 기억된 역사를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성서는 역사가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신앙 고백이 아니라, 지난 2-3세기 동안에 성서학자들이 성서비평을 통해 발견한 사실입니다.

성서비평학자들은 성서 한 권을 놓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언어들, 고고학, 지질학, 세계사, 인류학, 의학, 생물학, 천체학, 고대 문명사, 등등에 관한 학문들을 동원해서 성서가 언제 어떻게 누가 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물론 성서의 저자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1000여년에 걸쳐 40여명의 저자들이 기록한 사람들의 책입니다. 성서는 서사시 신화 기도문 신앙고백 등의 은유적인 즉 픽션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억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 역사 기록들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성서의 핵심은 인간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입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지난 7년 동안 CN드림 신문과 자유게시판에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이것들을 다시 말하기엔 너무 분량이 방대합니다. 여기에 간단히 몇 권의 책들을 소개합니다.

<성서가 된 신화> (게리 그린버그),
<성경 새롭게 다시 읽기> (마커스 보그)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 (버나드 브랜든 스캇)
<잃어버린 복음서> (버튼 맥)
<성경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예수는 신화다> (티모시 프리크, 피터 캔디)
<성경을 해방시켜라> (존 쉘비 스퐁)
<기독교 성서의 이해> (김용옥)
<예수에게 솔직히> (로버트 펑크)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 중에 극히 일부를 소개했습니다. 책을 읽기 어려우면 구굴에서 가령 "성서의 신화들"이라고 치면 다양한 정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히 유익하고 흥미로운 자료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Cheers to Myths of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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