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동성애를 징벌로 내린다는 괴상한 성서 기록이 로마서 (1:21, 26-27)에 있다. 이 구절은 신약성서에서 동성애 혐오에 대해 가장 공공연하고도 대단히 추악한 비난이다. 이것은 특히 여성 동성애에 관해 언급한 성서의 유일한 곳이며, 동성애 혐오증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성서구절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차별금지법”을 신경질적으로 반대하는 성서문자근본주의자들은 성서를 한 폭의 큰 그림으로 즉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편견와 혐오에 맞추어 극소수의 구절들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문자적으로 맹신한다. 따라서 성서의 분명하고 심층적인 의미를 단순히 무시하고 있으며 또한 그 의미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동성애는 하느님께 바로 예배드리지 못한 자들에게 내려진 징벌이라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은 현대의 성서문자근본주의자들처럼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질병이나 인간의 욕정적인 선택으로 말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동성애는 하느님에 대한 적절한 예배의 순서와 관행을 지키지 못한 죄에 대한 징벌이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성애적 욕망이 주입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괴상한 논리이며 동시에 근거없는 주장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느님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들의 성적인 욕구를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로부터 바꾸어 동성에게 정욕을 불태우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몰상식하고 옹졸한 행위이다. 만일 하느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거나 하게 된다면, 그런 하느님은 신뢰할 필요도 없고, 종교인들은 그 하느님에게 영광과 존경을 돌릴 필요조차 없다. 그런 하느님은 도깨비나 악마나 혹은 그보다 더 사악하고 추악한 것이며, 그런 하느님은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종교차별의 사회악의 근원이다. 바울은 실제로 그런 짓을 믿을 수 있었을까? 바울과 같은 사람이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도록 자극한 경험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바울이 말한 이상야릇한 성서구절이 과연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이 성서구절들이 동성애자들을 저주하거나 억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고금을 막론하고 과연 합리적인가? 분명하게 말해서, 21세기에 이 성서구절을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용납하는 것은 예수의 정신을 배반하는 적그리스도적인 행위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성서의 명백한 의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과 보지 않으려는 고의성 때문에 굴절된 시각으로 성서를 읽는다. 성서는 문자에 직역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심층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고대인들이 지극히 제한적인 어휘로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은유적인 신화의 문학형식을 빌리는 것 뿐이다. 또한 성서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그 그림을 그린 예술가의 깊은 속 뜻을 헤아릴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책이다. 만일에 그림의 한 쪽 구석 작은 부분에만 시선을 집중하면 그 그림 전체에 담겨있는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성서는 신중하게 사심없이 솔직하게 전체적으로 읽고 이해해야만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듯이 심층적인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서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에게 성서비평은 필수적이며, 성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며, 바른 신학과 신앙에 절실히 필요하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내용의 로마서 1장을 기록한 바울은 당시의 다른 유대인 도덕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가 나쁜 것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연스럽지 못한’(unnatural)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전통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의 전통에서도, 성적 본능은 생물학, 몸, 생식기에 의해 선택적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과학이 발견한 성적 본능은 화학, 두뇌, 호르몬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대답해야 하는 질문에 결코 직면했던 적이 없었다. 물론 성적인 행동은 성적 본능을 따르지만, 무엇에 의해 그리고 누구에 의해 성적 본능이 결정되는가? 그리고 만일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물론 바울과 그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고린도전서(11:14-15)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고 여자가 머리를 짧게 하는 것이 ‘자연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판단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서, 지역적으로 문화에 의해 조건지어지는 것이지, 보편적으로 자연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은 성서 무오설을 맹신하고, 교회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광신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로마서 1장에 기록된 바울의 장광설에 드러나고 있다. 바울은 다메스쿠스 도상에서의 회심 이전에 예수 추종자들을 색출해서 사형에 처하는 일에 광분했을 당시에 유대교 성전의 하느님에 대해 올바른 예배를 철저하게 강요했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일에 ‘하느님의 말씀’을 억압의 무기로 사용했다. 이렇게 과거에 바울이 예수 추종자들을 혐오했던 것처럼 오늘 성서문자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 혐오와 편견에 대해 로마서 1장을 악용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바울의 말이 더 이상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지 않게 방지해야 한다.
바울의 편지들과 바울의 이름을 빌린 가짜 바울의 문서들에는 동성애자들을 박해하는 데 인용된 다른 구절들이 있다. 고린도전서(5:10, 6:9)에서 바울은 ‘말레코스’라는 고대 그리스어 말을 쓰는데 이것은 ‘부드러운’ 또는 ‘자기 통제의 결핍’을 뜻하는 것이고, 또한 ‘아르세노코이디스’라는 말은 ‘누운 남자’라는 뜻으로 남창(男娼)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이 말들은 보통 ‘성도착자’라고 번역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동성애자로 생각한다. 참고로, 남창(男娼)이란 남자는 물론 여자와도 성행위를 한다. 신약성서 학계에서는 이 번역의 정확성에 대해 논란이 많다.
동성애를 반대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항상 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성경의 분명한 교훈’이라고 주장하는 세 개의 구절이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디모데전서(1:10)는 바울의 이름을 빌린 가짜 바울이 기록한 것인데, 전세계적으로 주류 신학계의 학자들은 디모데전후서의 저자는 바울이 아닌 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 디모데전서에서 ‘아르세노코이티스’란 고대 그리스어가 다시 한 번 사용된다. 이 말은 모든 한글 성서에서 ‘남색하는 자’로 번역되었으며, 영어 개정표준역(RSV)에는 ‘남색자들’로, 흠정역(KJV)에는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로 번역되었다. 물론 성행위가 동성애적이건 혹은 이성애적이건 간에 약탈적이고 강압적인 강간과 윤간과 근친상간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약탈적이며 강압적인 행태를 모든 동성애적 관계에 대한 정의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또다른 두 개의 성서구절은 유다서(1:7)와 베드로후서(2:6)에 있다. 이 구절들은 동성애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성서 인용자들에 의해 자주 이용된다. 이 두 구절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베드로후서의 구절은 유다서에 의존하고 있다. 두 구절은 모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관계되어 있고, 모두 믿지 않는 자들(유다서)과 이단을 가르치는 자들(베드로후서)을 하느님이 어떻게 멸망시킬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 구절들은 동성애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주하기 위해 인용된다.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자들이 동성애 혐오와 저주를 정당화하려는 소위 ‘성서의 분명한 교훈’이란 너무나 빈약하며, 어떤 변호사도 이렇게 빈약한 증거를 가지고 법정에서 승소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동성애를 증오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참회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징벌을 면치 못한다는 거짓주장을 문자적인 성서 인용으로 정당화하려고 안감힘을 다하지만 더 이상 설득력과 효력이 없다. 오늘날 급속도로 성숙해져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의식으로 인해 동성애에 대한 종교적 증오와 동성애자들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박해하는 비상식적인 만행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인간의 새로운 의식은 결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의 주류 기독교 교단들은 새로운 의식에 눈이 뜨여지면서 과거의 편에 서기 보다 미래의 편에 서기 원했으며, 동성애자 안수와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물론 세속적인 사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주도하고 있는 윤리관은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경계 넘어(No Boundary, Beyond Belief)의 윤리이다. 물론 우주적인 윤리관은 역사적 예수 정신에 따른 것이다. 21세기에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의 윤리는 현대 과학이 발견하고 밝힌 공개적 계시 즉 우주진화 세계관에 기초해야 한다. 138억 년의 우주 이아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 과정은 물론 종교와 정치와 경제의 기초가 되고 있다. 태초로부터 우주의 출현은 원자의 하부입자들 즉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우주는 외부의 초능력적인 존재의 간섭없이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개체와 전체를 이루어왔다. 우주의 이러한 근본적인 특성을 홀론이라고 한다. 또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는 홀론들이며, 내재하는 창조성은 생명체의 출현의 근원일뿐만 아니라, 전체와 개체의 통합적이고 계속적인 창조의 근원이다. 우리 인간은 이 창조의 대역사의 개체들이며 동시에 작은 전체들이다. 우리의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실제(實際 Reality)인 진화하는 우주는 오직 하나의 유일한 세계(전체)이며, 이 세계(현세) 이외에 다른 세계(내세)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우주 세계에서 인간의 출현과 인간의 생명과 성(性)과 성적 본능(sexuality)은 모두가 창조적인 우주진화의 법칙에 따른다. 특히 인간의 성적 본능은 초능력적인 하느님의 간섭과 징벌의 결과가 아니라, 지극히 우연적이고 창조적인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자연적인 개체들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성서의 어떤 구절도 우주의 법칙을 거부하거나 왜곡할 수 없다. 성서는 창조적이고 자연적인 우주의 개체인 인간의 성적 본능에 대해 편견을 주장할 수 없으며, 동성애 혐오증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 특히 인간이 동료 인간에 대한 혐오와 차별과 편견과 폭력은 어떠한 형태와 동기와 목적으로라도 비인륜적이고 추악한 일이며, 더욱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인용하여 정당화할 수 없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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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의 생각들은 이 책들에서 나왔으며, 오늘 이 세계의 교육, 종교, 과학, 철학, 정치, 사상을 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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