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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102 A] 미국인들이 한반도에 가져온 “퇴행적인 속물”들을 언제까지 움켜쥐고 있을 것인가?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4135 작성일 2020-11-22 04:59 조회수 2847

100여년 전 미국개신교 선교사들은 성서문자근본주의 속물들을 가지고 한반도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한국에 최초로 개신교를 소개한 후 지난 1세기 동안 미국 주류 기독교계는 꾸준히 급진적인 신학(Radical Theology) 발전시켜왔다. 미국 기독교는 끊임없이 산고를 거치며 새로운 시대새로운 교회로 성숙해져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를 소개한 미국 기독교계는 사회적으로는 물론 종교적으로도 진보화되었지만 한국 교회들은 100여년 전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않고 전혀 변화되지 못한 미성숙한 교회로 남아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성서문자근본주의 속물들을 마치 하느님이 주신 축복으로 착각하고, 퇴행물들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잔뜩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는 초기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근본주의 속물들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야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된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가져온 퇴행적속물들은 다음과 같다: (1) 백인 기독교인만이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 (2) 과학을 반대하는 반지성주의; (3) 타문화와 종교와 인종을 멸시하는 차별적배타주의; (4) 물질적인 부는 하느님의 축복이고 가난은 하느님의 징벌이라는 황금만능주의 자본주의. 이것들은 하느님이 한국인들에게 보내준 영원한 은혜가 아니다. 이것들은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기만의 수단이었다.

 
1.
선민사상 (기독교인만 선택받았다는 차별적이고 이분법적인 우월주의로 교회가 사회와 분리됨)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미국의 선민사상을 세계 중심으로 보고 국제 정세를 통제하려는 제국주의 신학을 한반도에 가져왔다. 원초적으로 선민사상은 예수 당시에 유대교의 핵심 신학이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오직 유대교인만을 선택했고, 그들만 축복하고 구원한다는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인 신앙이다. 미국 개신교는 유대교의 선민사상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전유물로 둔갑시켰으며, 1세기 전 미국 백인 개신교인들은 하느님이 세계 근대화와 기독교 전파에 자신들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미국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선민사상을 한국인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시키고, 한국인의 고유 문화와 전통과 정신을 이방인의 야만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말살했다.  


미국 선민사상은 미국을 세계 중심으로 보고모든 국제 정세를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며 오늘날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불량신학 국제정치를 수호신으로 착각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세뇌된 한국 개신교는 한국 고유 문화 정신을 버리고 미국의 시녀노릇을 자처했다. 또한 한국 개신교는 자신들만이 옳다고 하며 다른 종교들을 배척하고 있다. 미국 선민사상을 잘못 받아들인 한국 개신교의 교단들은 각기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정통이고 다른 것들은 이단이라는 억측으로 오늘 수백개의 교단들로 분열되어 난립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반지성주의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이성과 지성을 폄하하기 때문에 진화론을 반대하고 왜곡한다.)

 

선교사들이 한국 근대화와 고등교육 발전에  토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 청교도주의자 선교사들은 비성서적 지성 절대 금기하는 종교적 차원의 반지성주의 

표방했다. 그들은 성서 기록을 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는 것을 절대화하고, 성서 내용에 대한 해석 이성 지성 부정적인 것으로 정죄했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과 교육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그 결과 창조과학 지적 설계론 유신진화론과 같은 사이비 과학 사이비 종교가 한국 개신교에서 환영받고 자리잡게 되었다.

반지성주의 종교적 측면을 넘어서서 정치사회적으로도 나타난다이는 유럽에서  대륙으로 

건너와 식민지를 개척한 계층들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목숨을 내걸었던 항해로 척박한 미대륙 광야를 개척하며 살아야 했던 초기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박해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유럽에서 상류 엘리트층의 고상한 지성에 억눌려 살았던 이들은 지성에 대해 깊은 반감이 있었으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미국반지성주의로 표출됬다. 그 현상은 오늘도 미국 정치계에서 과학을 폄하하고 기후위기를 무시하며, 여성낙태 금지 동성애차별의 증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미국식 반지성주의 종교적 측면에서 성서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는 성서문자근본주의가 미국 보수 교회들의 신학과 신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것이 선교사들에 의해 한반도에 도입되었다. 반지성주의 근본주의는 오늘까지 한국과 미국 개신교에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를 분란에 몰아넣고 있다.

 

3. 문화적 배타주의 (한국의 고유한 종교와 전통적인 문화와 정신을 말살했다.)

 

미국 주류 개신교 내부 깊숙이 자리한 문화적 배타주의 선교사들이 가져온 속물들 중에 하나이다. 온전히 자신들 문화만 옳은 것이라는 우월적 분리주의에 사로잡힌 미국 백인들 한국인 전통적인 문화정신을 이해하지 못했고, 야만인 행위로 치부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만행은 한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원주민들에게도 저질렀다. 선교사들은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더불어 함께 살면서가 아니라 한국인들로부터 분리된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서 보여주려고 했다. 예수를 믿지 않고 한국의 전통의식과 풍습을 지키는 한국인은 선교사들에게 야만인이었다.

미국 선교사들은 오직 교회당에서 행하는 예배만이 종교라고 우겨댔다. 원주민과 철저히 분리된 삶을  지키고자 했던 미국 백인 선교사들은 한국문화 한국인의 시선에 맞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과  안에 감금했다. 이러한 그들의 분리주의는 오늘까지 한국 개신교 교회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비기독교적인 교회 밖 사회는 징벌받아 마땅한 더러운 세상이고, 교회 안은 선택받고 구원받은 깨끗한 곳이라는 분리주의가 믿음의 핵심이다. 한국 개신교가 한국인의 전통과 정신을 경멸하고 정죄하는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우월적 배타주의에 아부하는 비굴한 사대주의의 소치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외롭고 낯선 환경 속에서도조선인이라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랑을 전하는  애썼을 것이라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생각은 막연한 환상이다미국 백인 선교사들은 사실상 조선인들과는 철저히 분리된 삶을 지키고자 했다. 선교사들에게 비기독교인 조선인들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고 야만인이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선교는 단지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한국인들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한국인들로부터 분리된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한국인들에게 조상 생각하고 추모하는 제사행위 자체는 하나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전통이다. 미국 선교사들은 오직 교회당에서 행하는 예배만이 종교라고 강요했다. 원주민과 철저히 분리된 삶을  지키고자 했던 미국 백인 선교사들은 한국문화 한국의 시선에 맞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과 틀안에서 봤다이러한 그들의 분리주의 당연히 우리 문화에 대해 편견과 오만과 멸시로 대했다. 결과적으로 제사와 조상들 앞에 무릎꿇고 하는 한국인의 고유 전통에 대해 철저히 금지시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사는 예와 효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고유한 문화이다. 조상들을 추모하며 나의 뿌리를 생각하고, 나의 존재가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겸손의 문화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시초를 찾아가는 것은 성스러운 종교의식이다.

 

4. 황금만능주의의 자본주의 (물질적인 성공은 하느님의 축복이고 가난은 징벌이라는 기만)

 

미국 선교사들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또 다른 속물은 자본주의 가치관이었다. 미국식 자본주의적 개신교를 그대로 복사하는 한국 개신교회들은 오늘도 일반 기업체들의 운영방식으로 각종 선동주의와 물질주의적 홍보를 통해 교인 수를 늘리고 교회 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19세기 미국 개신교인의 특징 중 하나는 자본주의 가치관이었다. 개신교인들이 경제적 활동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현상에 대해 연구한  하나는 막스 베버의 <프로데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언급한대로, 돈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성서를 경전으로 믿는 개신교인들이  어떻게 돈을 벌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열심히 중상류층으로 자리 잡은 것을 성서의 가르침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한마디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 온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직간접적으로 무수한 상행위를 통해 재정적으로 큰 이익을 챙겨 떠났다.

이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적 개신교 보고 받아들인 한국의 개신교회는오늘날 여느 기업들과 다를  없이 각종 포퓰리즘과 물질주의적 홍보를 통해 교인 수를 늘리고 교회를 크게 성장하게  자식에게 세습하기에 이르렀다미국도 여전하다유명 가수들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각종 찬양설교 집회의 미국 전역 투어를 통해 돈을 모으고 교회를 키운다한국과 미국의 개신교가 믿는 사랑의 예수와 하느님은 찾아보기 어렵다. 돈과 부와 성공이라는 황금만능주의자본주의가 그들의 신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교회들은 미국 선교사들이 파놓은 캄캄하고 좁은 우물 안에서 나와야 한다. 과학시대새로운 눈으로 광활한 우주세계를 새롭게 보아야 한다. 스스로 세상과 분리하여 안일한 온실에 안주하지 말고 담대하게 온실 밖에 척박한 광야로 나가야 한다.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 때문에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에게 의존하던 수동적이고 부족적이고 차별적이고 우월적인 이분법적 교리믿음에서 자율적인 깨달음에 나아가야 한다. 종교인이 되기 보다 먼저 참된 인간이 되어 사람답게 사는 길을 탐구해야 한다. 성전의 하느님을 떠나 보내고,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지금 성서문자근본주의라는 신앙의 우물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어둡고 좁은 우물 안에서나 가능한 폐쇄적인 신앙적 독단으로 인해 교회는 이미 사회와 소통부재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 또한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극복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국가적 현안들을 무시하고, 근본주의 믿음과 내세적인 천국의 망상에 안주하는 한국교회는 비만증 환자가 되어 이제 질병 저항력이 약해져 무균실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병약한 기독교인들이 머무는 온실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바람 한 점 없는, 도전과 비전도 없는, 생기도 없는 우물 안으로부터 새로운 생명과 삶을 위해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세속적인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건강하고 참된 인간의 삶을 위해 온실 바깥에 척박한 광야로 나가야 한다. 광야와 같은 세속적인 세상이 기독교인들의 성전이고 교회이다. 오직 그곳에서만 하느님과 생명과 인간과 세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21세기에 기독교인들의 경전138억년의 우주 이야기이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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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  |  2020-11-22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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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분은 한 줄을 적으시고
바로 다음줄에 맞지도 않는 말을 적으십니다...참 습관적인것 같습니다.

.. 한국 개신교는 초기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근본주의 속물들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야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된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가져온 퇴행적인 속물들은 다음과 같다: (1) 백인 기독교인만이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 ...


백인 기독교인만이 선택받았다며,,,한국 개신교 초기 미국 선교자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백인 기독교인이,백인들만 선택 받았다는 사상을 가졌는다는데 한국 선교를 왜 옵니까?
어느 백인 선교사들이 백인 기독교인만 선택받았다고 주장하고 한국에 왔는지 이름들을 대어보셔요. 본인 뇌피셜 아닙니까?
참 어이없고 영혼에도 없는 글입니다. 한 두번도 아니고요
좀 본인이 방향을 설정하시고 정리를 하시고 꼼꼼히 살피고 글을 올리셔야 할텐데요 ㅠㅠ

philby  |  2020-11-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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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은제국주의 앞잡이로서 식민지 사냥꾼 노릇을 톡톡히 했지요. 처음에 와서는 병원 지어지고 학교 지어주고 착한 척하다가 빨대 대고 쪽 빨아먹는겁니다. 다 그랬다는 건 아니고 그중에는 예외적으로 스코필드 박사 같은 훌륭한 분들도있지만요.

늘봄  |  2020-11-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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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인데,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 미국은 식민지 쟁탈전에서 교묘하게 선교사들을 먼저 파송해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 다음 순서는 군함을 보내고 군사력으로 식민지를 겁탈했습니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라 역사책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100여년 전에 기독교 국가들의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아시아의 나라들이 인간답게 사람답게 온전히 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예수를 잘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의 정신을 말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하느님의 축복과 보호와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은 선교사들을 위한 이기적이고 상업적인 거짓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아도취와 자기기만에서 자신들이 "만든 상업적인 예수"의 복음을 교묘하게 팔아먹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땅 끝까지 예수의 복음을 선교한다고 말은 그럴듯하지만 선교사들이 세계곳곳에서 한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원주민들을 죄인과 야만인 취급하면서 그들을 악용해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일찍이 이 사실을 이성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자신을 구원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종교인들과 인종들을 구원한다는 오만과 편견 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기독교의 선교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교회들은 신자 수를 늘리는 일을 중단하고 자신들을 먼저 구원해야 합니다.

몇 일후에 "신은 이렇게 죽었다"는 칼럼을 소개할 것입니다. 나는 기독교 가정의 모태신앙으로 성장했고, 안수목사로 일하고 정년퇴임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와 졸업 후 목회지에서 일할 때와 은퇴 후의 나의 신학과 철학은 각 단계들을 거칠 때에 놀랍게 변화되고 성숙해졌습니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신론자 목사입니다." 내 나이가 73세인데 앞으로 몇 년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책을 읽고 새로운 정보를 터득하면서 나의 삶의 철학과 사상이 시들시들 죽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죽는 순간에 나의 사상은 오늘과는 퍽이나 다를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는 죽은 후에 하늘 위 천국에 올라가는 것이 나의 신학과 신앙의 목표가 아닙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의미있게 자유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예수가 나에게 가르쳐주고 자신이 몸소 보여준 삶의 방식과 비전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계속해서 나가기를 원한다면 오늘의 교회를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가 왜 성전을 허물어 버리라고 도전했는지 그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워 몸과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살아내라는 도전이었습니다.

ross  |  2020-11-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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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만 선택받았다는 사상으로 한국엔 왜 선교를 했냐 하니깐 엉뚱한 답변들을 하시는군요

늘봄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디 끌려가셔서 억지로 성경 암송에 당하고
백인 선교사님들에게 착취당하고 일생을 억울하게 사신 분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신교(선교사님들),천주교(신부,수녀)님들 도움을 받은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요 대부분 공감합니다.

왜 수백년전 착취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네요. 착취로 따진다면 중국과 우리나라 선비들이 더 하면 더했었지요.
아니 지금도 외국인들보다(백인들) 나은게 있습니까?
해외 동남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배운 제일 많이 쓰는 용어가 "빨리빨리" "사장님 나빠요"가 아닙니까?

내사랑아프리카  |  2020-11-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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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은 참 흥미로운 분이에요. 제 질문에는 답변을 항상 회피하고 다른 분들에게는 쪼르륵 달려와 답변하고 자랑만 늘어놓고… 님은 self-righteous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약간 사케스틱한 표현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 개신교 주장은 어떤 자료에 근거하시는 건가요? 답변 부탁합니다. 자료 증거가 없는 글은 비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겁함을 감추는데 아주 유용합니다만. 제가 볼 때 위의 글은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1차 자료를 전혀 써베이하지 않은 글이에요. 대부분 위험한 글들은 1차 자료는 전혀 참조하지 않고 2, 3차 자료 (secondary and tertiary sources)를 배끼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역사 자료를 해석할 때 지금의 신학적 입장보다는 그 당시에 한국 선교사들이 어떤 일을 했고 그들의 기능이 어떠했는지를 살피는데 있습니다.

한국초기선교사들의 첫 선교적 입장을 이해하려면,

첫채, 5권으로 된 방대한 [Korean Repository]를 제대로 써베이 해야 해요. 이 자료는 한국의 종교, 문화, 언어를 이해하려는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종교학이나 역사학적 훈련이 안되었고 또 선교적 열정이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 면은 있지만, 이 자료는 한국 에 온 선교사들의 한국 종교문화에 대한 초기의 태도와 입장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보고 중의 보고입니다. 온라인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으니 한 번 보시와요. 저는 이 자료를 옛날에 interlibrary loan을 통해서 받은 microfiche로 복사하느라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을 이해하는 정말 훌륭한 자룝니다. 이 자료를 비켜나서 한국 선교사를 말하면 간첩입니다.

둘째, 이러한 초기의 입장을 넘어서서 선교사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선교보고잡지인 [Korea Mission Field] 역시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 위의 자료보다 더 방대해요. 이 자료 역시 interlibrary loan을 빌려 서 복사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 60만원인가 정도로 영인해서 팔더군요.

마지막으로, 종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자기 신학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paranoid 될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모르고 부정한다고 한탄해서 마치 기성 종교가 다 망한다는 종말론적 사고를 하기 전에 종교사회학, 종교인류학, 종교사, 종교심리학, 종교인지과학 등 종교에 대한 폭넓은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제가 막스 베버를 좀 알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결과가 이렇습니다.
“19세기 미국 개신교인의 특징 중 하나는 자본주의 가치관이었다. 개신교인들이 경제적 활동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현상에 대해 연구한 하나는 막스 베버의 에서 언급한대로, 돈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성서를 경전으로 믿는 개신교인들이 어떻게 돈을 벌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열심히 중상류층으로 자리 잡은 것을 성서의 가르침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한마디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 온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직간접적으로 무수한 상행위를 통해 재정적으로 큰 이익을 챙겨 떠났다.”

도대체 앞뒤 안맞는 이 주장, 웃다가 갑니다. 에그머니나~

내사랑아프리카  |  2020-11-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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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너스로 하나 더 드립니다.

늘봄님, 曰~
“예수가 왜 성전을 허물어 버리라고 도전했는지 그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전에도 늘봄님은 이런 류의 글을 길게 쓰셨지만, 이 한 줄에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한 늘봄님의 무지가 듬뿝듬뿍 묻어납니다. 당시 사제 계급의 핵심인 사두개인들은 토라만 믿었기 때문에 내세나 부활을믿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이른바 토라 (창출레민신)에는 영혼불명 사상이 없었기 때문에 토라만 믿고 구전 토라를 믿지 않은 사두개인들이 영혼불멸사상을 믿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이 아주 진보적인 것 같지만, 이들은 로마 제국과 결탁했을 뿐 아니라 성전종교의 핵심을 차지 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자 역설적이게도 친로마파에다가 성전종교의 핵이었던 사두개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와 달리 일부 사제 계급도 있었지만 주로 평신도 계급인 바리새파와 예수는 구전토라를 믿었습니다. 성전이 허물어지자 살아남은 종교집단은 현대 유대교의 근간이 된 바리새인들의 Rabbinic Judaism과 유대교의 한 일파인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와 예수는 서로 교류하면서도 상반된 의견을 가졌지만, 모두 살아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꾸~자꾸 ~ 기독교의 독특성을 강조하지만,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유대교라는 것이죠.

제 주장은 아주 간단해요. 역사는 과거와 현대의 대화라고 하지만 현대의 나의 입장에서 마구~마구 ~조작질 하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 자료를 쪼르르 신학적 정당화에 사용하다보면 역사왜곡과 곡해는 소이연입니다. 그래서 제가 별로 신뢰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보적이다 보수적이다 하여 역사적 실재나 현대의 종교현상을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신학은 인문학을 수용하는 좋은 태도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신학은 인문학도 아니며 사회과학도 아니며 자연과학은 더욱 더 아닙니다.

ojing  |  2020-11-2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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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흐름이 바다 같네요. 앞에 끝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20-11-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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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적인 속물”들 척결하기 위해서 빅토리안 시대와 그 이후 사회진화론을 이용해서 인종주의를 이론화 한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아니라 인류학자나 제국주의의 주구들이었습니다. 즉 과학의 이름으로 인종주의 이론을 확립한 것, 즉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 더 무섭죠. 심지어 그들은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은 백인 "종"에 속하지 않은 다른 진화가지의 결과물이라고요. 반면에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창조론은 다 아담과 이브에게서 인류가 나왔다고 믿었기 때문에 과학으로서의 인종주의는 기독교 선교사들에겐 없었다는 말씀이죠.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죠.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가 진실이고 도식은 왜곡입니다.

또 뽀너스를 하나 더 드리자면, 한국에서 이른바 신사참배에 반대한 보수기독교인들은 보수 신앙에 입각해서 신사참배에 반대해서 일제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고 반대로 느슨한 기독교인들은 다들 신사참배를 감행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보수 기독교인들이 깊은 민족주의에 사로 잡혀 신사참배에 반대했다고 하면 역사적 왜곡이죠. 동기는 종교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한 셈이죠. 그러므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이 역사는 도식적으로 보기보다는 인과성을 기본적으로 따져 봐야 해요. 예수는 무신론자였다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안하시는 것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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