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외식산업을 대표하는 전국적 비영리단체 '레스토랑 캐나다'는 지난 16일 '레스토랑 없는 삶을 상상해보세요(Picture life without restaurants)'라는 제목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외식산업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다. 팬데믹이 시작된 3월 이후 1만여 개의 캐나다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으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거의 절반가량의 레스토랑이 폐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포장과 배달, 혹은 기프트 카드 구입을 통해 지역 레스토랑 지원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캠페인의 목적은 소비자들의 지원이 없다면 레스토랑의 폐업은 계속될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와 시민들의 삶에 커다란 구멍을 남길 것임을 일깨우는 데 있다. '레스토랑 캐나다' 회장 토드 바클래이는 말한다.
"정말로 온 마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외식산업과 서비스산업 -레스토랑과 바에서부터 농부들과 식음료 업체에 이르기까지-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레스토랑을 통해 힘을 얻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식당이 버티지 못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그렇다. 그는 외식산업만이 아닌 서비스산업까지를 언급했다. 코로나 1차 유행 당시 팬데믹이 선언되고 봉쇄령이 내려지자 각국의 외식산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고, 그에 따라 레스토랑에 식자재를 공급하던 농장 및 식품공급업체들 또한 연달아 무너지는 상황을 이미 곳곳에서 목격한 바 있다. 갈 곳 잃은 엄청난 양의 감자가 버려져 산을 이루고, 폐기 처분을 위해 쏟아져 내린 우유가 마치 흰색 강과도 같아 보이던 일을 기억한다.
당시 감자 수출대국인 벨기에에서는 이동제한, 영업제한령이 내려진 후 감자 75만 톤이 창고에 쌓이자 감자튀김을 일주일에 두 번씩 먹자고 호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냉동창고에 쌓인 가공식품의 폐기를 막기 위해 홈메이드보다는 냉동 감자튀김을 이용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벨기에뿐 아니라 감자 소비가 많은 이곳 캐나다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여름,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식재료 3조 원어치가 시장에 유통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자연의 생태계가 그러하듯 한 업계의 타격은 곧이어 또다른 업계의 타격으로 이어져 전체 경제 체계가 흔들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레스토랑 없는 삶을 상상해보세요' 캠페인은 TV 방송용 1분짜리 공익광고 영상과 #RestaurantsAreFamily 해시태그 달기 운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상에서는 반지를 쥔 여성의 손이 보이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곳에서 당신은 그녀와 첫 데이트를 했고, 그녀는 당신의 프로포즈에 '예스'라 답했습니다. 아이들의 행사를 열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스프로 위로받고, 당신이 이룬 작은 성취들을 축하하던 바로 그곳. 잃고 싶지 않은 순간들입니다. 행동하세요. 레스토랑이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이제 당신이 레스토랑에 힘을 주세요."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다소 감정적으로 만들어진 감이 없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사실이 그렇다. 기억 속에서 두고두고 꺼내 보게 되는 삶의 많은 순간들이 음식점을 배경 삼고 있다.
'생존 모드'로 버티는 가게들을 지켜내려면
종로의 어느 좁은 골목, 꽤 많은 계단 저 끝에 있던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남편과 나는 첫 데이트를 했다. 갈색 코듀로이 재킷을 말끔히 차려입고 미소짓던 남편의 얼굴과 그때의 설레임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단골 외식장소였던 태릉의 숯불갈비집. 배밭을 끼고 있던 그곳에선 싱그러운 공기 내음이 났다. 뭐가 그리 우스워 배를 부여잡고 웃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린 나와 동생의 웃음소리는 들리는 듯하다. 추억 때문이었을까.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집의 숯불갈비였다.
다니던 고등학교 정문 앞의 분식집도 빼놓을 수 없다. 가게 이름처럼 얼굴도 예뻤던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우리들 시원하게 먹으라고 늘 단무지통에 차갑게 얼린 물병을 함께 넣어두셨다. 짜장을 넣어 갈색빛을 띤 쫄볶이와 야들야들한 유부가 듬뿍 든 칼국수 맛은 일품이었다. 내가 그리운 건 그 음식맛일까, 아줌마 아저씨의 친절함과 농담일까, 아니면 풋풋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일까. 아마 그 모두일 것이다.
이곳 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작은 마을인지라 레스토랑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자주 뵙다 보니 늘 주문하는 음식이나 커피 취향 등을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
토스트는 통밀빵으로, 달걀은 스크램블, 양파는 조금만, 햄버거에 토마토를 넣지 말 것, 커피는 블랙, 물에 얼음은 빼고 등등. 한 할아버지는 농담으로 아내가 자꾸 스프를 훔쳐먹는다며 숟가락을 하나 더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걸 기억하고는 다음에 오셨을 때도 숟가락 두 개를 놓아 드렸더니 품도 들지 않은 그 작은 친절을 너무나 기뻐하시는 거였다.
팬데믹 이후 그 레스토랑은 포장과 배달서비스만 해오고 있다. 매일 오전 같은 시간대에 오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끔 생각난다. 그곳에서 일상을 나누는 게 낙인 분들이신데 그 시간을 요즘엔 어떻게 보내시는지, 점심을 늘 그곳에서 해결하던 할아버지는 혼자 사시는데 점심은 어떻게 드시는지.
영상 속 내레이션이 맞았다. 레스토랑은 때로 우리의 삶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잃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런 레스토랑이 코로나19로 인해 위기에 처해있다. 어디 레스토랑뿐일까. 모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그야말로 버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나고 있다.
가능한 곳에서는 온라인 판매와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가게 앞에서 받는 것)을 중심으로 사업체를 꾸리고 있지만 '생존 모드'로 버티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봉쇄만은 막아보려 안간힘을 써오던 온타리오 주 정부는 결국 지난 21일 봉쇄령을 발표했다. 26일부터 시행되는데 이 날짜가 또한 절묘하다. '박싱데이(Boxing Day)'라 불리는 12월 26일은 본래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박스에 담아 준비하던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빅세일이 이루어지는 날, 즉 쇼핑하는 날로 변모했다.
26일뿐 아니라 그 전후로 '박싱 위크(Boxing Week)'라는 이름을 달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상품 할인이 이루어진다. 예년대로라면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수익이 폭등하는 시기다. 평소 눈여겨오던 고가의 물건들도 대폭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인지라 이때가 되면 새벽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연말연시를 지나며 선물준비와 파티, 박싱 위크 쇼핑 등으로 지갑이 가벼워진 사람들은 1월에 긴축 재정에 돌입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연말 박싱 위크에 벌어들인 수익으로 1월이라는 침체기를 견뎌낸다. 그런데, 봉쇄령이 내려짐으로써 1월을 대비해 곳간을 가득 채워야 할 이 박싱 위크를 날려버리게 된 것이다.
9개월여를 버텨오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박싱 위크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참 가혹한 연말연시다. 다운타운의 한 옷가게 주인은 봄이 된다 하더라도 가게를 다시 오픈할 수 있을 때 박싱 위크를 열겠다고 하던데, 그 시기가 너무 늦어지지 않기를, 그때까지 잘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05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