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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민님이 올린 평범한 글들에 반대가 많아 무슨 일일까 싶어서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저는 혹시 제가 지난 주 올린 미국시민님의 게시판 매너에 관한 글 때문에 그런가 해서 조금 걱정을 했습니다만, 문제는 그 글 때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야 복합적이지만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찾아냈는데, 지금부터 제 의견을 이야기 해 드릴테니 미국시민님께서는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님께서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자신을 미국시민이라고 소개해 왔습니다.
그 이상한 셀프국적소개가 모든 문제의 발단인 것 같습니다.
님께서는 ‘내가 미국시민이라 미국시민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실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모든 말이나 글에는 맥락과 소통대상 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국인/한국계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미국에 대해 약간의 충고나 비판을 하는 누구에게나 나타나서 ‘나 미국시민인데’ 하고 윽박지르니 우스꽝 스럽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저는 캐나다 시민입니다.
캐나다에서 출생한 생득적 캐내디언이 아니라 a naturalized citizen 입니다.
그런 제가 캐나다에서 같은 동포들을 상대로 참정권 행사권유나 소수계 권익을 위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시민으로서의 당당한 자부심을 가져달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같은 집단에서 공감의 이득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이 자스민은 필리핀 계 한국시민 입니다.
그가 한국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나는 비록 출생한 나라는 다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고 이야기한다면, 그의 이야기에 시비를 걸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박수를 칠 것이고, 이 자스민의 고국인 필리핀에서 그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도 그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런데 이 자스민이 필리핀인들이 정보를 나누는 사이트에 들어와서 누군가가 ‘소나타는 캠리보다 성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라고 써 놓은 글을 보고나서 뜬금없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고 칩시다.
“oo님은 대한민국에 대해 좀 부정적이신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시민이라 좀 상처가 되네요..”
이 댓글에 대한 필리핀 커뮤니티의 반응은 ‘꼴값을 떨고 있군’ 이 딱 이 한 가지 뿐 일 것 입니다.
혹자는 필리핀 커뮤니티의 그런 반응이 질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혐오스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공감의 이득을 공유하지 않는 집단’에 와서 그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에 갔을 때 한국을 이유없이 깎아내리는 아줌마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7 ~ 80 년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와서 정착한 사람들인데, 한국이 아직도 70 년 대 한국이고 미국이 아직도 70 년대 미국인 듯이 이야기합니다. 미국시민님처럼 자기가 미국시민임을 시도때도없이 슬쩍슬쩍 내비추면서 말이지요.
그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좌절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들도 경제적으로야 성공했지만, 지난 수 십 년 동안 승승장구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자기 동기나 친구들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자기들보다 훨씬 나은 사회적 위치와 삶의 질을 향유하며 살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에 대한 거부감이 그런 심리적 죄절감으로 표현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미국시민님보다는 미국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유타나 하와이, 아이다호가 아닌, 좀 더 미국적으로 알려진 대도시에서 나름의 커리어를 가지고 40 년 이상 살아 온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미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해 솔직한 통찰을 가지고 자기들끼리는 걱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더 이상 예전처럼 대단한 나라가 아니며, 여전히 기형적으로 막강한 군사력과 기축통화 발권력, 식량과 에너지를 동시에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천혜의 조건으로 제국의 지위를 연명하고 있을 뿐, 내부적으로는 갈수록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해지며 붕괴해 가고 있는 위험한 공동체라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한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서는 여전히 ‘미국을 대단하게 여기는 척, 한국을 우습게 보는 척’ 할 뿐 입니다.
앞으로 여기에서 혹시 누가 미국의 어떤 면에 대해 비판을 했을 때 거기에 대해 반론을 하는 건 좋습니다.
다만 ‘내가 미국시민인데’ 이런 토는 더 이상 달지 마세요.
미국시민도 아닌, 듣는 옆나라 캐나다 시민이 덩달아 쪽팔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