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 B 장로 교회에서 창조과학회 사람을 초청해 뭔가를 했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접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말로만 들었지 대면해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미리 알았더라면 호기심에서라도 무슨 소리를 하나 들으러 캘거리까지 갔을 겁니다.
10 월 초 한국에 갔을 때 교보문고에 갔다가 베스트셀러 섹션에 산더미처럼 싸여 있는 책을 하나 발견하고 2 만 5 천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기억이 납니다. 옥스포드 대 교수인 Richard Dawkins 가 쓴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이었는데 과학과 종교 양쪽 모두에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적설계론자들을 포함해서 창조과학자들이란 현대 과학에 나 있는 틈새(gaps)를 열심히 찾아 다니며 틈새를 발견하는 즉시 그 자리에다가 집달리가 빨간 딱지 붙이듯 하나님 딱지를 붙이는 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또한 썩은 고기를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나 빛의 틈새를 찾아 몸을 숨겨야 하는 영화 ‘I Am Legend’ 의 흡혈괴물들의 생리를 연상시킵니다.
저자는 ‘사려 깊은 신학자’ 본훼퍼의 표현을 빌어 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 자들의 논리에 하나님을 맡겨 두었다간 과학이 발전할수록 틈새가 줄어들 것이 분명한데, 결국 할 일이 없어져 하나님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박사건 박사 할애비건 그런 게 별 의미가 없는 이유는 이들이 사물을 해석하는 방법자체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작년에 한국의 어떤 목사님과 온라인 토론을 하면서 개진했던 제 의견의 일부를 참고로 다시 올립니다.
종교적 믿음과 인식론적 반성은 무엇이 우선이냐 또는 어떤 관련이 있느냐 하는 문제라기 보다는 별개의 사고현상이라는 것이 아직까지의 제 생각입니다. 종교적 믿음은 사실여부의 검증(verification)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사실검증을 필요로 한다면 이 땅 위에 있는 대부분의 종교는 성립자체가 불가능 할 것입니다. 반면 인간 자신과 자신을 둘러 싼 환경을 인식하는 도구인 과학은 검증의 엄밀성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합니다.
‘성서가 비과학적이므로 무용하다’는 일부 안티기독교의 주장이나 ‘성서에 이러이러한 말씀이 있으므로 무신론은 잘못됐다’는 열성신자의 전도가 똑같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부 안티기독교나 기독교 근본주의나 종교적 고백과 과학적 검증을 혼동하고 서로에게 적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사고를 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 활동을 하시는 분들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증명을 과학적 검증을 통해 하겠다는 것이 이 분들의 목적인 듯 한데, 아직까지는 주로 진화론의 허점을 파헤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설령 진화론이 폐기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증명으로 연결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의 존재증명은 과학의 사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 중 적어도 과학자들이라면 종교적 신념을 빙자해 스스로 학문적 기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여기에 대해 죄책감이 없는 것은 그분들의 종교적 신념이 과학자의 윤리적 기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과 지식의 구별은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지 상태를 못 견뎌 하고 조심스럽게 의심하고 탐구해서 새로운 앎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런 본성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최선의 상태로 생존해 나가는 것인데, 오히려 무지(틈새)를 기뻐하고 탐구를 가로막고 있으니 창조과학자들이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분들은 한 마디로 종교와 과학을 동시에 천박하고 유치한 쓰레기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저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웬만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를 함부로 폄훼하거나 비난하지 못하는데 ‘창조과학자’니 ‘지적설계론자’니 하는 말들이 나오니까 이런 속어를 안 떠 올릴 수가 없군요.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훌륭한 글을 올려주신 ‘내 사랑 아프리카’ 님과 좋은 참고자료 링크를 안내해 주신 토마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히브리 경전의 창세기적 진술이 서양문화사와 과학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주제로 한 ‘내 사랑 아프리카’ 님의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