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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The Economist 가 있다면 미국에는 Foreign Policy 가 있다. 중립적이면서 무게있는 심층보도와 절제된 시각이 돋보이는 고급정론지로 정평이 나있는 매체다. 약칭은 FP로 쓴다. 파이낸셜 타임스를 나타내는 약칭인 FT와 혼동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지난 주말, Foreign Policy 에 실린 한국대선 평론은 타이틀부터가 파격적이면서도 도발적이다.
Misogyny and Real Estate Tax Produced Conservative Victory in South Korea
기사내용의 핵심은 윤석열 당선의 양대 견인차를 여성혐오와 서울 부동산 보유자들로 정확하게 꿰뜷어 짚어내고 있다.
Misogyny 라는 단어는 단순한 여성혐오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차별과 존재부정을 의미하는 중세기적 여성비하를 나타내는 단어다.
중립매체에서 기사타이틀로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FP 의 윤석열 핵심지지세력에 대한 경멸적 시각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Misogyny 라는 단어를 사용한 주요매체는 FP 만이 아니다. 대선직후 영국 BBC 도 한국대선결과를 다루는 기사 타이틀로 이 단어를 선택했다.
문제는 해외매체들이 지적하는 K-Trump 비유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는 것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자신의 극우포퓰리즘 발언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이 폭탄선언을 연거퍼 발표하고 있다.
마치 자기가 이미 대통령이라도 된듯, 여성가족부 폐지와 한국판 어퍼머티브 액션인 지역안배, 성별안배 폐지를 양보하지 않고 밀어부치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정부 부서 하나를 없애는 의미를 넘어, 젠더이슈와 관련한 모든 시민단체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차단하여 반성차별운동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의지나 다름없다.
새 정부가 주도할 혐오와 차별의 광풍은 국내 젠더이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 거주하는 다문화 외국계 주민들은 물론 재외동포로까지 표적의 화살이 확산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당선자는 이미 후보시절부터 다문화와 외국계 주민들에 대한 혐오감정을 노출하는 표현을 감추지 않았다. 의료보험과 관련하여 잘못된 통계를 들먹이며 마치 한국인들이 피땀흘려 노력해서 만든 의료보험체계에 외국계 주민들이 숟가락만 가져와 의료수익을 도둑질해가고 있다는 식으로 막말을 했었다.
여성혐오로 20-30 대 남성지지자들을 선동해서 결집시켰다면, 외국인혐오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성별을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극우포퓰리스트들에게는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정치적 자양분이다.
분명히 말한다.
2022 년 5 월 10 일 출범할 한국의 새 정부는 과거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와 본질적으로 다른 정치집단이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친미보수정부였으되 그들의 유전자에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광기는 없었다.
두 보수정부 모두 한국 국내의 다문화집단을 어느정도 배려했고, 특히 재외동포들에게는 매우 관대한 정책을 구사했다. 65 세 이상 재외동포에 대한 조건부 다중국적인정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 년 부터 실행했고, 외국국적 재외동포에게 내국인에 준하는 입국대우를 하는 Overseas Koreans 입국매뉴얼을 실행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 년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재외동포들을 전혀 다르게 대우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FP 가 K-Trump 라는 별명을 얻은 윤석열 당선자에 대해서 말한 것 처럼,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광기를 부채질 하는 것이 트럼프와 닮았다고 하여 그를 트럼프에 단순하게 비유하는 것은 오산이기는 하다.
트럼프에게는 그를 절대지지하는 광신도들이 있었고, 그 자신에게 사교집단의 교주와 같은 커리즈마가 있었지만 윤석열에게는 그게 없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 대 남성유권자들의 ‘감정상태’와 지난 20 년 동안 집값상승으로 갑자기 부자가 된 서울 주택보유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0.73 퍼센테이지 포인츠라는 대한민국 대선사상 최소의 표차로 승리했다.
적절한 인문지식이 없는 그에게 사회와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양심과 체계적인 비전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누가 앞으로 그를 로보트처럼 움직일까?
재벌, 검찰, 친미보수 이데올로그들, 그리고 소수에 대한 증오를 살포하여 머리가 빈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의 주류에 속하는 애국자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만들어 그 오합지졸들의 아우성을 방패로 기득권집단을 보위해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프로파겐더들이 앞으로 5 년 동안 그를 가꾸어 나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여성, 노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무주택자, 그리고 재외동포(특히 중국동포)들이 갈라치기와 증오, 차별의 희생양이 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압도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