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그냥 농담입니다>
자본가 계급의 등장
민주주의의 도입
자본주의
자본의 속성
자본주의 침공
산업혁명이 촉발한 사회구조변화는 혁명적이었다. 도시화로 인구가 몰려들고 빈민가가 형성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전문 분업화로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졌다. 증기기관, 방적기, 전신기등의 발달로 생산기반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아동, 여성 등이 하루 14-16시간의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도시에 밀집된 빈민가와 고아원, 보육원 등에서 값싼 노동력이 계속 공급됐다.
프롤레타리아는 항구적으로 가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근로로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없었으며 이는 소비 침체로 이어졌다. 결국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산품을 소비해줄 시장이 부족해졌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브루주아는 시장의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들은 아직 봉건전제군주제에 머물러 있는 제3세계에 눈을 돌렸다. 저곳에 가면 자기들의 생산품을 사줄 시장이 있을 것이었다. 또한 보다 값싼 원료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브루주아는 식민지가 필요했다.
법인 또는 회사라는 조직은 브루주아의 욕망을 수행하는 전위조직이다. 브루주아 단독 혹은 여러 브루주아가 합동으로 회사를 조직할 수 있다. 개인회사, 합자회사, 주식회사등 여러 형태가 있으며 이 조직은 오로지 자본증식만을 목적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수행한다. 회사는 브루주아의 브루주아에 의한 부르주아를 위한 조직이다. 식민지 개척을 위한 회사들이 만들어졌다.
영국의 브루주아들은 인도를 식민화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를 이용했다. 브루주아의 영향력하에 있는 정부조직을 움직여 동인도 회사에 징집권과 교전권을 부여했다. 군대를 소유한 회사가 인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여러개의 봉건전제왕조로 이루어진 인도의 여러 왕국들은 군대조직을 가진 효율적인 민간회사를 당해낼 수 없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도 아대륙이 일개 브루주아 회사에 의해 통일되었다. 인도는 값싼 원료의 공급처이자 생산 과다상태의 영국산 소비재의 소비시장이 되었다. 무력을 가진 회사조직과 자본의 속성으로 인도는 철저히 착취당했다.
물론 모든 인도인이 손놓고 당하고만 있었던건 아니다. 브루주아의 목적과 본성을 꿰뚫어본 마하트마 간디는 동인도 회사의 이익 추구를 분쇄할 목적으로 직접 물레를 돌리며 영국산 직물의 불매 운동을 벌였다. 효과는 미약했고 결국 양 차에 걸친 세계대전(각국의 브루주아간의 식민지 이해관계가 충돌한 큰 전쟁. 전쟁중에도 브루주아는 큰 이익을 봤다. 패전국의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은 전범으로서 처벌받았다. 그러나 패전국의 브루주아는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이는 또다른 큰 이야기이므로 여기에선 생략하고 넘어간다) 이후, 브루주아가 더이상 이익을 보기 힘들어 자발적으로 물러난 이후에야 인도는 독립될 수 있었다.
한편 저 멀리 조선 반도에서는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일본계 회사가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조선인들도 이에 대항하여 물산장려운동이라는 불매운동으로 저항하곤 했다. 알고보면 NO JAPAN 운동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처럼 브루주아는 자국의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데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인민들을 착취하였다. 이들은 더이상 식민지에서 이익을 거둘 수 없어졌을 때에야 겨우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는 황폐화된 신생 독립국들이 남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이런 나라들은 아직도 극빈국으로 남아있다.
대부분 강대국이 약소국들을 식민화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자본주의 나라에 살고있는 자본가들의 회사가 철저히 자본 증식을 목적으로 타 지역을 침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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