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서는 최초로 나토 사이버방위센터 정회원국이 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한국 국내매체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그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되어 한국의 나토가입 신호탄이라고 할만한 사건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의 나토가입추진은 2019 년 2 월 말 이후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다각적 안보구상의 일환으로 그 대장정의 막이 올랐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통해 그 해 7 월 CCDOE 가입신청을 했는데, 국가정보원을 대표기관으로 등록했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2019 년은 한국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전환과 관련해 중대한 터닝포인트가 된 해였다. 그 해 문재인 정부는 한국군 군사력 증강을 위한 특별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추진하기 시작했다.
동북아 가상적국들의 잠수함전력에 대응할 4 천 톤급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의 허락을 받아내기 위해 당시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 2 차장을 대통령 특사로 미국에 파견해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계획을 밝히고 핵잠가동을 위한 핵연료를 공급해 줄 것을 타진했다가 미국측으로부터 거절당한 것도 이 해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5 일 CCDCOE 정회원국 정식가입식을 가진 나라는 캐나다, 룩셈부르크, 한국이다. 이 중 캐나다와 룩셈부르크는 나토회원국이지만, 한국은 나토회원국도 아닐 뿐 아니라, 나토 권역에 포함된 나라도 아니다. 바로 이 점이 중국과 러시아 등 반서방진영의 주목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이 신속한 절차진행으로 현 정부의 임기종료를 불과 5 일 앞두고 한국의 CCDOE 공식가입을 완료하도록 조치한 의도역시 주목대상이다. 비록 형식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정보-안보라인이 한국의 물러가는 정부와 새로 들어 올 정부를 어떻게 차별하여 대우하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이 한국의 물러가는 정부와 새로 들어 올 정부를 차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새로 들어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저토록 지속적인 냉대와 불신의 신호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지만, 오늘은 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송별하는 자리이니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다)
바이든 행정부의 윤석열 당선인 (내일부터는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인 냉대와 무시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졌다.
우선 박진 씨를 단장으로 하는 한미정책협의회가 사실상의 당선인 특사단 자격으로 DC를 방문했을때 바이든 대통령은 그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박진 씨가 2008 년 당시 한국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이어서, 같은 시기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조세프 바이든 상원의원과 서로 카운터파트이기도 했던 점을 고려하면 더 괴이한 일이다.
통상 상대국 국가원수 또는 대통령 당선인의 친서를 소지한 특사는 대통령이 만나주는 것이 외교관례다. 그 관례를 지키기위해 양국 실무진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회동일정을 정해 서로 합의하는 게 당연한 절차다.
만일 대통령이 질병 사고 등으로 사전에 약속된 회동일정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나 롼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대리하여 상대국 특사단을 만나 영접하고 친서를 수령해야 한다. 그런데 그 날 그들을 만나줘야 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았다. 개뚱딴지같이 대통령을 대리하는 외교의전서열계통에 있지도 않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나타나 대신 친서를 수령받았다.
윤석열 당선자의 특사단을 만나주지 않은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20 일 2 박 3 일 일정으로 방한하여 그 시점이면 이미 퇴임해 있을 문재인 전임 대통령을 만나는 외교적 파격행보를 보일 예정이다. 나는 지난 달 어느 날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농담이거나 오보인 줄 알았는데, 백악관측 보도자료를 인용한 미국매체들의 보도를 보고서야 사실임을 확인하고 놀란 적이 있다.
미국측이 한국측에 통보한 방한 일정을 보면,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신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방한한다기 보다는, 문재인 전임 대통령을 만나고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하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는 것이 이번 방한의 주요목적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할만큼 이례적이다.
미국측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이 윤석열 신임정부의 입장에서보면 기절초풍을 할만큼 모욕적이지만, 일단 그들은 왜 미국측이 자신들을 이렇게 취급하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한국의 어느 보수논객은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전임 대통령을 만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친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은 것이 고작이고, 진보논객은 ‘윤석열의 무지하고 감정적인 대북강경책을 지도하면서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게 전부다.
그러나 미국측의 한국 신임정부에 대한 과격할 정도로 비외교적인 이상행동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수집한 어떤 명확한 정보’에 근거한 심각하고도 총제적인 불신에서 비롯된 계획적인 행동들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