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거품 경제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을 때 한일합작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한국인 임원이나 간부들이 한국생산성본부 출신이 많았다. 당시에는 언론이나 교과서 등에서 한국이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떠들어대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사의 임원이나 간부들에게 생산성을 높이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당시 나는 헤비스모커 였는데 괜히 담배 피는 시간만큼 나의 노동생산성을 낮추고 있는거 같아서 괜히 죄책감이 들곤 했었다. 한국 노동자들은 게으른 건가? 왜 노동생산성이 낮을까? 열심히 일해야지! 따위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일본에 파견 나갔을 때 후지산 근처 하코네에 있는 일본 생산성본부 연수원에서 1박 2일간 회사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양국 생산성 본부간의 뭔가의 커넥션이었겠지. 그때 일본 생산성본부의 사람이 일본과 한국의 노동생산성 차이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강연을 했다. 요지는 일본을 본받아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생산성이라는게 노동자에 의해 결정되는게 아니라는걸 안다. 10명의 인부가 아무리 삽질을 해봤자 포크레인 한대를 이기지 못한다. 네팔 카트만두 와 포카라 사이에는 200여 km 정도의 고속도로(?)가 깔려 있다. 말이 고속도로지 여기를 주파는 데는 6시간이 걸린다. 네팔 고속버스 운전사들의 노동생산성이 낮아서 그런가? 아니다! 도로가 그만큼 형편없기 때문이다.
즉 노동생산성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결정하는게 아니다. 국가의 사회 인프라와 과학기술 수준이 결정한다. 산업계의 자동화와 무인화가 결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노동자 탓을 하며 사기를 쳐댔다. 한때 출근 후 담배 꼬시르면서 죄책감 들던 시절이 괜히 억울하다.
2018년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일본을 추월했다. 그때 한국을 얒잡아 보며 생산성 운운했던 그 일본인 강사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강연이 끝나고 그날 밤에 조별로 모여서 '회사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분임토의를 하고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같은 성격의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다.
요상하게도 우리 조는 나같은 빨갱이들이 많았다. 해서 분임토의 내용과 발표 자료들이 산으로 가면서 '회사 발전을 위해서 이런 걸 하자'가 아니라 '직원을 위해서 이런 걸 해 주쇼' 라고 회사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돼버렸다.
어찌됐건 내용은 회사 임원진에게 밉보이기 딱 좋았는데 누가 발표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조원 중에 똘똘하면서 초절정 미녀가 있었다. 조원들의 푸쉬에 위해서 그녀가 발표자가 되었다.
여튼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고 일본은 그 최전성기의 마지막 불꽃을 누리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참으로 생산성 없는 일이었다.
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큰 성취 계기가 된 일이기도 했다. 그 똘망똘망하게 발표하던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지.